공공부문 정규직화 넘어야할 산 많아
공공부문 정규직화 넘어야할 산 많아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8.14 10:52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회사·무기계약직 방안 둘러싸고 회의론도
[리포트]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②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특별 실태조사를 통해 8월까지 각 기관의 비정규직 현황을 파악한다. 또한 오는 9월 로드맵을 마련하고, 직접고용 기간제 노동자의 경우 연내 정규직 전환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파견·용역 노동자는 현재 소속된 업체와 기관의 계약기간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마무리한다.

가이드라인 발표… 정규직화 속력 붙나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상은 가이드라인이 발표되면서 구체화되고 있다. 우선 정부는 ▲상시·지속적 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 ▲충분한 노사협의를 통한 자율적 추진 ▲고용안정, 차별 개선, 일자리 질 개선의 단계적 추진 ▲국민 부담의 최소화와 정규직의 연대 ▲국민의 공감대 형성으로 지속 가능한 방향 추구 등 5대 기본원칙을 제시했다. 이에 기초하여 정부는 매년 실태조사를 통해 비정규직 현황이 파악된 852개 기관을 1단계로 추진하고, 자치단체 출연기관과 공기업 자회사, 민간위탁기관 등은 2·3단계에 걸쳐 추진한다.

정규직 전환 기준 역시 새롭게 제시됐다. 정부는 상시·지속적 업무의 범주를 ▲연중 9개월 이상 계속되고 ▲향후 2년 이상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업무로 개편했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 논란이 이어졌던, 생명·안전 업무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방안도 이번 가이드라인에 포함됐다. 다만 정부는 60세 이상 고령자나 특정 사업의 완료 또는 기관의 존속 기간이 명확한 경우는 예외로 했다. 또 휴직자를 대체해 근무하거나 복지 차원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에 종사할 경우, 기간제 교사 등도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편 공공기관이 직접 고용한 기간제 노동자는 해당 기관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원칙으로 하되, 파견·용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는 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방식도 포함됐다. 어떤 형태가 됐든 노사 및 전문가 참여를 통해 자율적으로 추진된다.

정부의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공공기관별 정규직 전환을 지원할 컨설팅팀이 만들어지면서 후속조치가 발 빠르게 이루어지는 모양새다. 고용노동부는 가이드라인 발표 하루 만인 7월 21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중앙 컨설팅팀을 발족했다. 24일에는 세종에서 권역별 컨설팅팀 워크숍이 개최돼 중앙을 비롯해 서울·부산 등 전국 8개 권역에서 정규직 전환 지원체계가 마련됐다.

노동 내부에서의 반발, 어떻게 극복하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틀은 갖춰가고 있지만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 볼 수만은 없다. 당장 현장에서 마주하게 될 과제는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이다. 이들의 반발은 ‘상실감’ 또는 ‘역차별’로 표현된다.

단적인 사례는 교육공무직 채용 및 처우에 관한 법률안(이하 ‘교육공무직법’)을 둘러싼 논란이다.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교육공무직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교사자격증을 가진 학교 내 교육공무직 노동자를 정규직 교사로 채용토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물론 기존 정규직 교사들도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의 심리는 수십, 수백 대 일의 경쟁력을 뚫고 임용되었거나, 이를 준비하고 있는데 어떻게 별다른 임용절차를 거치지 않은 비정규직이 교사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유은혜 의원실에는 항의전화가 폭주했다. 교육공무직 채용에도 공정한 시험이 필요하며, 교원 또는 공무원에 준하여 보수를 지급해서는 안 된다는 게 주된 요지였다. 유은혜 의원 측은 후에 몇 차례에 걸쳐 이 같은 의견에 대한 답변서를 발표했으나, 끝내 해당 법안 제출을 철회해야 했다.

현재 정규직화 작업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인천공항의 경우에도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분위기다. 한재영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대변인은 “기존 정규직의 반발을 이해한다”면서도 “총액인건비제와 경영평가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손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정규직들의 공포를 누그러뜨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둘러싼 현장의 정서는 ‘내 몫을 빼앗지 않는 정규직화’를 원하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서 “고용승계와 공정채용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이해관계자와의 협의를 통해 채용방식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정규직 전환 대상을 현재 해당 기관 또는 외주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로 한정하고, 제한경쟁과 공개경쟁을 적절히 채택함으로써 청년 구직자들과의 역차별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정규직, 그리고 교사·공무원·공기업 취업준비생들의 뿌리 깊은 정서를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갈등만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간접고용 전환 사례가 주는 교훈

31만 명에 달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이뿐만이 아니다. 파견·용역 형태로 간접 고용된 노동자들의 숫자는 12만 명에 이르는데, 이들은 대부분 상시·지속적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중앙정부, 지자체, 공기업 할 것 없이 인건비를 줄이고 경영을 효율화 할 목적으로 이른바 ‘비핵심업무’를 외부에 위탁해 왔다. 환경미화, 경비 등의 업무가 외주화의 주된 대상이었으나 기관에 따라서는 핵심과 비핵심의 경계가 희미한 업무까지도 위탁하고 있다.

도시철도 사업장에서 승강장 안전문 및 전동차 정비 업무를 외주화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서울시의 양대 도시철도 운영기관이었던 옛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는 이들 업무를 외부에 맡기고 있었다. 서울메트로는 전동차 경정비와 승강장 안전문 수리를 민간업체에 위탁하고 있었는데, 해당 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지난해 구의역 사고 이후 직접고용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 오세훈 시장 재임 당시 공기업 혁신안에 따라 서울도시철도공사 인력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전동차 중정비 업무가 외주화 됐다.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지분 100%를 출자한 자회사인 서울도시철도엔지니어링(ENG)은 모회사 소속 정규직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과 열악한 처우로 문제가 됐던 사업장이기도 했다. 이곳 역시 구의역 사고 이후 생명·안전 업무의 직접고용 원칙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서울도시철도공사 소속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서울시 두 도시철도 사업장의 직접고용 무기계약직 전환 사례는 외주화를 철회했다는 측면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다. 서울시는 이들에 대해 안전업무직이라는 별도의 직군을 신설하고, 기존 정규직과 다른 임금·직급체계를 도입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밑그림과 비슷해 보인다.

양 공사가 서울교통공사로 통합한 후 지금까지 안전업무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정작 당사자들은 서울시 두 도시철도 사업장의 사례를 온전한 정규직화로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과거 용역업체에 속해 있을 때에는 불법파견의 우려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직접적인 지휘·감독 체계가 드러나지 않았다. 반면 같은 소속의 정규직과 안전업무직 관계로 바뀌면서 기존 정규직의 관리자 역할이 표면에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교통공사의 한 안전업무직 노동자는 “용역업체 시절에 비해서 많은 부분이 개선됐지만, 정비공장 내 분위기나 임금 측면에서는 아직 개선할 점이 많다”고 전했다.

‘무늬만 정규직화’ 우려 극복하려면

현 정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에는 기간제·파견·용역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 하는 방안으로 자회사 설립, 무기계약직 전환 등에 무게가 쏠려 있다. 서울시 도시철도 사업장의 안전업무직 전환 사례가 보여주듯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가령 특정 공기업이 환경미화·시설관리 부문 자회사를 만들더라도 또 다른 형태의 용역업체가 되지 않도록 체계적인 사후 관리·감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점에 관해 이미 일각에서는 ‘무늬만 정규직화’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정부는 일단 고용안정에 무게를 두고 향후 TF팀 운용을 통해 구체적인 처우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비판을 염두에 둔 탓인지 정부는 직접고용 무기계약직 전환 후 각 직무에 따른 명칭을 부여하고, 복리후생 성격의 금품을 차별 없이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교한 임금체계의 설계가 요구된다. 가이드라인에 언급된 ‘직종별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취지를 반영하려면 각직종에 알맞은 임금수준을 산출해야 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20년 가까이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임은 분명하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전문가의 면밀한 검토나 이해당사자와의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무늬만 정규직화’ 상태에서 멈출지도 모른다. 현 정부가 단순히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인 것 이상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한 걸음씩 차근차근 내딛는 여유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