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임금체불, 이대로 괜찮은가?
심각한 임금체불, 이대로 괜찮은가?
  • 고관혁 기자
  • 승인 2017.09.0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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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임금체불 구제 제도와 개선방안
[리포트]심각한 임금체불

   
▲ 지난 6년간 임금체불 당한 노동자 수 ⓒ 고용노동부

2016년 임금체불액이 1조 4천286억원을 기록했다. 사상 최대치이다. 임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노동자는 32만5천430명에 달한다. 이는 신고 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통계다. 신고 되지 못한 ‘숨어있는 체불액’까지 합쳐지면 실제 수치는 그 이상일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임금체불액은 2014년 기준 옆 나라 일본의 약 10배이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의 3분의 1수준임을 감안해볼 때 사실상 30배가량 차이가 난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임금체불은 사회적으로 빈곤층을 양산하고, 노사갈등을 유발하며 국가경제에도 위협이 된다. 또한 노동자 개인적으로 생계를 흔들리게 하며 가정을 파괴할 위험이 있다. 우리나라 임금체불을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이유이다.

현행 임금체불 구제 제도

노동자가 임금체불을 당했다면 현재 취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형사적 구제와 민사적 구제다. 가장 통상적인 방법은 노동부에 신고를 하는 방법으로 이는 형사적 구제에 속한다. 근로감독관이 체불사실을 확인하면 사업주에게 일정기간 이내에 지급하도록 시정지시를 내린다. 만약 사업주가 시정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면 입건하고 검찰에 송치한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사업주가 ‘임금체불을 한 사실’에 대한 처벌만 가능할 뿐, 노동자의 체불임금을 받아주진 않는다. 노동자가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서는 별도의 민사소송을 거쳐야 한다.

노동자의 민사소송은 임금청구소송을 말한다. 하지만 노동자에게 민사소송은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민사재판 성격상 판결까지 기간이 길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노동자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정부는 2005년부터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위탁해 ‘무료법률구조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노동자의 임금채권을 보전하기 위한 여러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 무료법률구조산업은 지난 10년간 많은 성장을 보였다.

2005년 7천여 개였던 이용건수가 2015년에는 7만 3천여 개로 약 10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변호사 등 전문인력 부족, 이용자에 대한 홍보 부족, 완전한 피해구제를 위한 업무체계 부족 등 아직 개선할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무량에 눌린 근로감독관

2016년 전국의 근로감독관은 1,282명이다. 5년 전과 비교해 봤을 때 약 3.2% 늘어났다. 하지만 지난해 근로감독관리대상 사업장은 약 186만 개로 같은 기간 22.4%나 증가했다. 즉 근로감독관 한 명이 담당해야할 사업장은 1,450곳이다. 그리고 금로감독관 한명이 연 평균 283건의 신고사건도 처리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업장을 관리 감독하여 임금체불을 예방해야 하는 임무를 가진 근로감독관들은 신고된 사건 처리에만 급급한 실정이다. 2015년 한국노동연구원의 근로감독관 면접조사결과에 의하면 근로감독관들은 사건처리에 총 업무시간 중 60%이상 할당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예방위주 근로감독업무에는 단 20%정도만 사용하고 있었다.

솜방망이 형사처벌

근로기준법 109조에 따르면 임금체불을 한 사용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현행 형사처벌의 수준은 징역형이 아닌 대부분 체불금액의 10~20%의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문제는 형사처벌을 받아 벌금을 내도 노동자에게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별도의 이야기다. 때문에 처벌을 피하기 위해 노동자와 합의해 임금을 주기보다 차라리 벌금을 납부하는 것이 사업주에겐 경제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에선 사용자가 노동자와 합의만 한다면 처벌을 받지 않는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에게 소를 취하하면 체불액을 지급하겠다고 말하고 나중에 주지 않는 등 이를 악용하는 사업주의 사례가 늘고 있다.

▲ ⓒ 안치현 노무사

체당금제도 강화해야

그렇다면 임금체불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한국노사관계진흥원 대표이자 현장에서 많은 임금체불 사건을 경험한 안치현 노무사는 ‘체당금제도’에서 그 답을 찾는다. 안 노무사는 임금체불이 발생하는 원인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장에서 볼 때 지불능력이 있음에도 악의적으로 임금체불하는 사업주는 소수이다. 대부분은 회사가 힘들거나 망해 지불능력이 없는 사업주”라며 “이런 상황에서 처벌만 강화하자는 주장은 실효성이 떨어져 보인다”고 말했다. 회사가 갑자기 영업을 중단하거나 폐업하는 경우 민사소송을 제기해도 변제할 만한 자산이 없다면 근로자들은 체불임금을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안 노무사는 처벌보다 근로자의 임금보장을 우선시해야 한다며 “체당금의 상한을 올리고 국가가 노동자들의 임금채권을 구입해 사업주를 상대로 노동자 대신 받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체당금제도는 IMF를 전후해 부도난 회사의 노동자들의 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지급되며 파산신고, 회생절차개시, 도산 등의 사실인정이 된 사업장의 근로자들에게 지급되는 일반체당금제도와 가동하고 있는 사업장의 근로자들에게 지급되는 소액체당금제도로 나뉜다. 지급대상의 채권은 최우선 변제권에 해당하는 최종 3월분의 임금 및 최종 3년간의 퇴직금이다.

일반 그리고 소액체당금

일반체당금 같은 경우 만 40대를 기준으로 최대 월 300만 원, 총 1,800만 원을 지급 받을 수 있다. 연령별로 차등 지급된다. 일반체당금을 받기 위해선 고용노동부로부터 사실상도산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퇴직일로부터 1년 이내에 노동청에 도산 등 사실인정신청을 해야 한다.

소액체당금은 일반체당금과는 다르게 사업장의 도산, 파산 등과 무관하게 지급받을 수 있다. 퇴직일로부터 2년 이내에 법원의 임금체불 확정 판결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최대 1,800만 원까지 지급되는 일반체당금과는 다르게 소액체당금의 상한액은 불과 400만 원이다. 400만 원이 지난 3개월 치 임금과 퇴직금까지 총 포함 된 금액이란 뜻이다. 하물며 이 액수도 지난 7월, 300만 원에서 100만 원 인상한 결과이다. 소액체당금의 상한액을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안 노무사는 “은행이 망하면 국가에서 예금자보호법에 의해 5,000만 원까지 책임져 준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임금은 1,000만 원도 보장 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체당금은 국가에서 지급하는 것도 아니다. 사업주들이 내는 산재보험료 중 임금채권부담금에서 지급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계적으로 체당금의 상한액을 인상해 1,000만 원까지는 보장해줘야 한다. 만약 기금이 고갈될 걱정을 한다면 국가가 직접 사업주들에게 체불임금을 받으면 될 것이 아닌가? 국가도 못 받아 내는 것을 노동자에게 부담하게 하는 것은 가혹하다”라고 주장했다.

노무인증제도

노무인증제도는 수년간 여러 연구자들과 노무사들이 도입을 꾸준히 주장해온 제도이다. 즉 많은 업무량에 치이는 근로감독관 대신 고용노동부에 위탁 받은 노무사들이 기업을 대상으로 노무 감사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노무인증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은 노무인증제가 임금체불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안 노무사는 “노무사 같은 전문가들을 이용해 노무감사를 실시하고 공개한다면 기업들의 자율적인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며 “이러한 인증제도를 규제로 여기는 기업들이 있는데 노동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규제가 부당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또한 “상위 기업들부터 이러한 감사를 통해 상황을 개선한다면 자연스레 올바른 노동문화가 정착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정부, 새로운 임금체불 개선 정책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근로감독관의 증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또한 지난 8월 9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서를 통해 “국회와 논의해 징벌적 배상 성격의 부가금제도를 새로 만들고 반의사불벌죄를 제한적으로 적용하며 공공무분 입찰제한 등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영주 장관은 체당금제도에 대해서도 “임금체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근로자에 대한 충분한 생계지원을 위해 지급절차·대상·상한액 등 체당금제도 전반을 개편하겠다”고 예고했다.

고용노동부는 현재 임금체불만을 담당하는 공단을 설립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공단을 세우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안 노무사는 “예를 들어 근로복지 공단은 예산의 10%를 운영비로 쓴다”며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마땅한 예산 중 상당 부분이 자체 운영비로 쓰이는 것보다 노무사들에게 위탁하는 것이 전문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7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새로운 장관이 임명됐다. 우리나라의 고질적 문제인 임금체불 문제를 이번엔 해결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