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에서 ‘같이도생’으로의 거대한 전환
각자도생에서 ‘같이도생’으로의 거대한 전환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9.0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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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새로운 사회로 가는 문이 열린다
[커버스토리]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

사람들은 직장과 가정이라는 두 공간에서 생활한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로 출근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낮에는 노동자, 밤에는 소비자다.

그런데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 사람들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원리는 각자도생이다. 제 살 길을 스스로가 알아서 찾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이지만, 협동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려는 이들이 있다. 

21세기, 우리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인가?

애덤 스미스가 1776년 출간한 <국부론>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보이지 않는 손은 개인의 이기심에 따라 행동한 결과로 사회 전체 이익이 증대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은 그저 고기와 술을 팔아 돈을 벌려고 했을 뿐이지만, 이들의 행동으로 인해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이 먹고 마실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담은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믿음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이처럼 자신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경제적 인간)라 부르기도 한다. 이 경제적 인간은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주판알을 튕겨 자신의 이익을 시시각각 고려하며 행동한다. 하지만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의 주장에 따르면 경제적 인간은 만들어진 것이다. 경제는 결국 ‘살림살이’이며, 살림살이를 위해서는 혼자 집 짓고 낚시하며 생활하는 로빈슨 크루소가 될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그래서 폴라니에게 인간은 사회적 인간이다.

사회적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살림살이를 해결하기 위해 집단 전체가 생산과 분배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후대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공동체와 협동이라는 가치를 끄집어냈다. 나만을 위한 활동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활동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러한 생각은 사회적 경제의 밑거름이 되었다. 사회적 경제란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경제활동이다.

현실에서도 경제적 인간의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농업의 경우 과거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농약과 화학비료를 대거 사용했지만 그 결과로 하천과 토양이 오염되었다. 오염된 자연으로 인해 사람들은 먹거리 안전을 위협받게 됐다.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계란파동’의 핵심 원인으로 공장식 축산이 지목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더 많은 닭고기와 계란을 팔려는 양계농가와 더 싼 값에 닭고기와 계란을 사려는 소비자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졌지만, 그 결과는 조류인플루엔자 확산과 계란값 폭등으로 돌아왔다. 경제적 인간으로서의 행위가 모두의 이익을 해친 것이다.

   
 ⓒ 기획재정부

“다 같이 잘 살아보세” 협동조합이 떠오른다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 모델은 공동체의 이익, 즉 모두에게 이로운 경제활동을 위한 대안이다. 그중에서도 협동조합은 사회적 경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역사도 깊다.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1895년에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만들어졌고, 각국의 협동조합들이 교류를 해오고 있다. 서구사회에서 사회적 경제가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때가 1960년대 전후(戰後) 대호황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협동조합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ICA는 협동조합을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한 자율적인 조직”으로 정의하고 있다. ICA는 1995년 창립 100주년 총회에서 협동조합의 7대 원칙을 천명했는데,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자율과 독립 ▲교육·훈련 및 정보 제공 ▲협동조합 간의 협동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등이 그것이다. 경제적 인간이 아닌 사회적 인간의 결사체가 협동조합인 것이다.

협동조합의 유형은 목적에 따라 소비자들의 권익을 위한 협동조합과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협동조합, 지역주민의 권익을 위한 협동조합, 협동조합 간의 연대를 위한 협동조합 등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어떤 일을 하는지에 따라 협동조합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 협동조합의 형태는 구성원인 조합원들이 만들기 나름이다. 1인 1표의 원칙에 따라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공동으로 모든 의사결정을 한다는 점은 협동조합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1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서부터 협동조합이 급격히 늘어났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2년 당시 52개에 불과하던 협동조합 수는 2016년 기준 1만 개를 넘어섰다. 해마다 2,500개나 되는 협동조합이 만들어진 셈이다. 마음 맞는 사람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는 점과 기존의 주식회사나 사단법인과는 다른 유형의 경제활동 조직이라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회운동으로 출발한 생협의 성공과 고민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기 이전에도 자발적으로 태동한 협동조합은 이미 왕성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은 30년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다. 협동조합의 역사가 150년쯤 되는 서구권에 비해서는 상당히 짧지만, 우리나라 협동조합들 중에서는 맏형 격이다. 뿐만 아니라 규모와 대중적 인지도 측면에서도 생협은 성공사례라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의 경우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생협이 생겨났다. 노동자들의 주식인 밀과 버터, 우유를 정직하게 팔겠다는 게 주된 배경이다. 유럽의 생협이 추구한 원칙은 썩거나 모래가 섞인 밀가루를 판매하지 않고, 버터나 우유의 중량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사회운동의 하나로 생협운동이 시작됐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의 시대를 거쳐 1980년대 말 민주화를 이루면서 반독재에 초점을 맞췄던 사회운동은 환경운동, 시민운동, 인권운동 등 여러 부문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생협운동은 생태적 가치, 그리고 생산자-소비자 간 연대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목표 속에서 시작됐다. 친환경적인 동시에 1차 생산자인 농민들에게 공정한 비용을 지불한다는 취지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활동 중인 생협은 한살림, 두레생협, 아이쿱 등 여러 곳이 있다. 조합원 수는 한살림이 60만여 명으로 가장 많고, 아이쿱이 25만 명, 두레생협이 14만여 명에 이른다. 이외 소규모 생협까지 합하면 국내 생협의 조합원 수는 지난 2014년 100만 명을 돌파했다. 일반적으로 생협에 가입된 조합원이 4인 가구 구성원인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생협을 이용하는 사람의 수는 300~400만 명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생협이 태동한 배경이 사회운동의 일환이긴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웰빙 열풍에 힘입어 친환경 먹거리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가입이 이어졌다. 이와 더불어 멜라민 분유 사건, 광우병 사태처럼 식탁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김장철에 즈음하여 배춧값 폭등이 반복될 때에도 생협은 가격안정세를 유지했다. 김대훈 아이쿱협동조합지원센터 센터장은 생협의 성공요인과 관련해 “(1990년대 친환경 먹거리 시장의)별다른 경쟁자가 없는 가운데 유일하게 서비스를 공급한 데다, 몇 차례의 식품안전사고를 겪으면서 ‘생협은 믿을 만하다’는 사회적 신뢰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생협에게도 고민은 있다.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친환경 먹거리가 대중화 된 데다 1인 가구 증가로 인해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편의점에서 간편식 위주로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이 늘면서, 중산층의 4인 가구가 중심인 생협의 입지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시장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생협이 풀어야 할 숙제다.

노동자협동조합, 노동이 자본을 고용하다

생협이 소비자들을 조합원으로 하는 협동조합이라면,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앞에서 본 생협이 먹거리 불안을 해결하는 역할을 해왔다면, 노동자협동조합은 일자리 불안을 해결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국내 1만여 개 협동조합 중 노동자협동조합의 비율은 10% 수준으로 추정되며, 이 중 실질적으로 사업을 이어가는 곳은 100여 개 남짓이다.

박강태 일하는사람들의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노동자협동조합이 생겨난 배경은 크게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정부 차원에서 취약계층의 자립을 돕는 자활기금사업이 시행됐는데, 이를 위탁받은 지역별 자활센터가 성장한 경우다. 두 번째는 부실기업을 인수하여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경우다. 세 번째는 노동시장에서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등 일자리의 질이 크게 악화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우다. 네 번째는 일반적인 주식회사의 대안이 될 만한 생산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흐름에서 나온 경우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후에 만들어진 경우다.

예컨대 냉난방기 유지보수를 전문으로 하는 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은 일반 업체에서 고용불안을 겪던 유지보수 엔지니어들이 모여 만든 노동자협동조합이다. 기존 유지보수 업계에서는 엔지니어들이 입사 후 5년에서 10년이 지나 숙련이 쌓이면 선배 엔지니어들은 인건비가 높다는 이유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고숙련 엔지니어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기술력과 정직함을 무기로 민간시설은 물론 공공시설의 냉난방기 유지보수 사업을 따냈다.

또 다른 사례는 쿱 택시다. 한국택시협동조합은 2015년 박계동 전 국회의원의 주도로 만들어졌는데, 법인택시운송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장시간노동과 저임금을 해소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쿱 택시의 조합원들은 서울시내 일반 법인택시 소속 노동자에 비해 월 평균 50~60만 원의 수입을 더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노동자협동조합이 갖는 의미는 크다. 기존의 회사가 자본이 노동을 고용하는 형태라면, 노동자협동조합은 반대로 노동이 자본을 고용하는 구조다. 여기서 발생하는 차이는 상당히 큰데, 일반적인 기업의 경우 노동자의 경영 참여가 제한적이다. 반면 노동자협동조합에서는 노동자가 곧 조합원이기 때문에 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직접 경영자가 되기도 한다. 노동자가 벌어들인 이윤을 스스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얘기다. 박강태 회장은 “노동자협동조합의 핵심은 생산수단을 노동자들이 소유하는 것인데,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이러한 시스템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은 큰 진전”이라며 그 의미를 설명했다.

ⓒ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같이도생’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관문은…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들은 우리나라에 만들어진 협동조합의 대표적인 몇 가지다. 협동조합이 뻗어가는 영역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대학생들에게 저렴하고 질 좋은 식사를 제공하기 위한 대학생협은 이미 여러 대학에서 활동 중이다. 서울시 일부 중·고등학교의 경우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학교협동조합이 만들어져 있다. 학교협동조합의 조합원인 학생들은 학교 매점 운영뿐만 아니라 교복 공동구매, 교외 체험학습 기획에 참여하면서 공동체 문화를 배우게 된다.

이외에도 공공임대주택을 관리하는 입주자들의 협동조합이나, 최근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동조합도 있다. 협동조합은 전통적인 소비와 생산부문을 넘어 교육, 주거, 복지 등 앞으로 수요 늘어날 거라 예상되는 분야까지 다방면으로 확장되고 있다. 어쩌면 협동조합의 무한한 가능성은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같이도생’의 사회로 나아가는 문을 두드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에 오랫동안 몸담아 온 이들은 “협동조합만큼 어려운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협동조합 설립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이들 중 해산하거나 휴면상태인 곳이 적지 않다. 다섯 명만 모이면 만들 수 있고, 조합원의 권익과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이 우선이라는 점 등이 부각되면서 섣불리 협동조합을 만든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조합원 공동의 의사결정과 그에 따른 공동책임이라는 동전의 양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내부 갈등을 겪는다. 또 영리를 목적으로 하든 그렇지 않든 여부와 상관없이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신중히 따져보지 않아 사업적 비전을 찾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김활신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센터장은 “그저 좋은 단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명확한 책임의식을 가진 분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으로 협동조합이 제도권의 틀 속에 편입되면서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상담·컨설팅 등의 지원체계가 마련된 만큼 전문가의 조언을 구할 필요가 있다. 교육을 통해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중요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