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종사자 사망에도 발뺌하는 우정사업본부
연이은 종사자 사망에도 발뺌하는 우정사업본부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7.09.0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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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노동 과로사 문제, 정부의 적극적 의지가 필요
[인터뷰]김명환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기승을 부리던 폭염이 한풀 기세가 꺾이는 모습에 한숨을 돌리는 것은 현장의 노동자들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심경일 것이다. 에어컨 없이 잠시만 앉아 있어도 땀이 흐르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뙤약볕 속에 비지땀을 흘려야 했던 집배원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연이은 집배원 사망, 장시간노동이 문제!

우정 노동자들에게 올 여름은 더욱 뜨거운 계절이었다. 연이은 동료들의 죽음을 보고 들어야 했던 우정 노동자들은 대규모 집회를 열고 서울로 집결했다. 집배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우정노조는 위원장을 필두로 주요 간부들이 삭발을 단행하며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들의 요구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맞부딪친다거나, 정치적인 사안이 아니었다. 부족한 현장 인력을 증원해 살인적인 장시간노동에서 한숨 돌리게 해달라는 절박한 요구였다. 최근 5년 사이 70여 명의 동료들의 죽음을 보아야 했다는 김명환 위원장의 목소리는 더욱 더 힘이 실렸다.

김명환 우정노조 위원장은 현재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직을 겸하고 있다. 친정인 우정 노동자들의 인력증원과 장시간노동 개선 문제가 단순히 일개 회원조합의 현안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그리고 있는 노동정책의 로드맵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안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 인력부족 문제로 올 여름 우정노조는 대단히 바쁜 시간을 보냈다.

1년 사이만 돌아보더라도, 집배인력 9명이 사망했다. 배달하다 사고를 당하거나 뇌출혈 같은 질병으로. 7명은 심혈관계 질환으로 숨졌다.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심혈관계질환의 주요 원인은 과로다. 우정 노동자들은 심각한 수준의 장시간노동과 그로 인한 과로에 노출돼 있다. 조속한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 없이는 매년 이와 같은 비극적인 상황이 되풀이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우정사업본부는 각 지방우정청에 “장시간 근로로 오해 받는 행위를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우정사업본부 스스로가 우정 노동자들의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행자부에서도 내게 말하길, 울어야 젖을 줄 텐데 문제해결을 요구해야 할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인력이 남는다고 하니 방도가 없다고 한다. 동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 했던 우정 노동자들의 입장에선 분기탱천할 일이다.

우정사업본부가 현재의 인력과 관련해 문제가 없다고 말하며 근거로 활용하는 수치는 소요인력 산출과 집배부하량 산출 등 두 가지 시스템이다. 이걸 계산해 내는 시스템을 정립하고 개선하기 위해 외부에 연구용역을 주는 등 노력을 기울인다. 문제는 이게 전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등기 한 통을 배달하는 데 27초가 걸린다고 계산한다. 소포는 이보다 조금 더 오래 걸려서 삼십 몇 초. 계산처럼 그렇게 똑 떨어지는 일이라고 하면, 집배원들이 왜 일이 힘들다고 말하는 걸까. 소포 같은 경우엔 집배원 한 사람이 보통 30~40통씩, 명절이나 연말 등 특별소통 기간 같은 경우엔 100통씩 쳐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계산 상 수치와 같이 맞아들어간다면 집배원들이 배달을 재촉하느라 사고를 당하는 일도 없고, 일이 고되 과로사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통상우편물의 물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등기 우편물은 15% 이상 늘었고, 소포는 20% 이상 늘었다. 통상우편물보다 30배 이상 시간이 소요되는 물량이다. 지방으로 내려가 농어촌 지역의 경우, 더 인력에 여유가 있다고 말하는데, 통상우편물의 물량만 놓고 보면 그렇다. 오히려 사람이 줄었기 때문에 배달 거리가 늘어났고, 배달 환경이 악화된 것이다.

물량을 산출하고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과 인력을 계산하는 시스템이라면 객관적으로 검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어느 누구도 인정하기 어려운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그걸 잣대로 삼아 자기들의 결정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노동조합은 그 시스템이 전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합리적이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앞으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지금 우정사업본부는 새 본부장 공모에 들어갔다. 노조 간부들에게도 자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세계적인 물류회사들, DHL이나 페더럴 익스프레스나, UPS 같은 곳에서는 현장에서 배달을 하던 이들이 CEO를 한다. 거기에서는 관리직들의 비율이 1.5%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우리가 도대체 왜 적자인지 따져봐야 한다. 지금 당장 시급한 인력증원과 관련한 싸움에서 승리하고 나면, 다음 단계에서 앞으로 우리 우정사업을 어떻게 꾸려나갈지에 대해 고려해 봐야 한다.

공공부문부터 점진적으로 변화 시도

한국노총은 지난 대선 중 전 조합원 총투표를 진행해 지지후보 결정을 비롯한 대선방침을 정한 바 있다. 투표 결과에 따라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정책협약을 맺기도 했다.

한국노총 역시 올해 1월 새 지도부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임기에 들어갔다. 김명환 위원장은 우정노조 위원장 직과 함께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직을 겸하고 있다.

친정인 우정노조가 문제제기하는 부분은 비단 집배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장시간노동 국가로 이름나 있다. 장시간노동의 폐해에 대해 그동안 무수히 이야기가 계속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 노동자들이 ‘제 목숨을 깎아내는’ 장시간노동을 계속해야 하는 것은 복잡한 사정이 뒤따른다.

- 새 정부 출범 이후 우정 노동자들의 고충을 비롯해, 노동현안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나 자세는 어떻게 변화했나?

한국노총이 백만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친노동자 정권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노동의 가치를 존중해 주는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렇게 결정된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었고 정책협약을 추진했다. 대통령이 표방하는 노동존중 실천을 위한 여러 가지 제스쳐, 또 국민들과 소통하려고 하는 일련의 과정 등은 지금 현재 지지율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정책협약은 일종의 약속어음과 같은 것이다. 이걸 현금화해야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각 부문별로 정책들이 성과가 드러나야 한다. 지금이야 막연한 기대감과 이미지에 국민들과 조합원들도 성원을 보내고 있지만.

청와대나 대통령은 조금 기다려 달라는 심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이미 9년 동안 기다려 왔던 게 아닐까? 이명박, 박근혜 정권 동안 노동자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핍박을 받아 왔다. 그 힘든 나날들을 견디며, 문제를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출범 100일을 즈음한 문재인 정부는 지금보다 좀 더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소통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가시적인 성과가 무엇인가를 놓고 보면 아직 뚜렷한 것은 없다. 이제 로드맵을 만들고 밑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 과정이다. 원론적인 부분은 잡혀 있는데 각론으로 들어가서는 아직 구체적인 게 없다.

일자리창출,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은 국가가 이제 솔선수범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내용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업장이 우정 부문 아닐까?

장기적인 큰 방향에서 정책의 철학과 지향을 설정하는 문제와 함께, 구체적이고 실무적으로 단기간 내 해결해야 하는 사안도 존재한다. 이런 부분은 리더의 의지와 책임감이 확고하다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다. 우정노조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내용들이 대표적이다. 현업 인력을 증원하는 문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 한국노총의 입장에선 그동안 정부나 경영계에 아쉬운 점이 많았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변화라는 것은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노총도 지금까지의 모습과 달라져야 한다. 한국노총이 전체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내셔널센터로서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야 하며,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들을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정책 기능도 보강,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노동조합 특유의 현장, 조합원 중심의 조직력과 밀착하여, 씨줄과 날줄 역할을 할 것이다. 새로운 노총, 그리고 새로운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는 데 청사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와 같은 일들을 도모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우수한 인재들이 한국노총에 몸담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바뀐 것처럼, 한국노총도 같은 해 새 집행부가 출범했다. 현장을 중심으로 조합원 소통을 강화하고, 낮은 자세로 섬기는 집행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조합원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지도부가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일은 특정 개인 몇몇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국노총 모두의 역할이자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