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전망 넘어 관리목표 담아야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전망 넘어 관리목표 담아야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9.0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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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캐스팅에서 백캐스팅으로 전환 필요
[리포트]전력수급기본계획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에너지기본계획이라는 두 가지 큰 틀 안에서 만들어진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15년을 계획기간으로 2년마다 수립되는데, 정부는 올해 안에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2031년)을 확정할 예정이다.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일시 건설 중단 방침을 둘러싼 사람들 간의 논쟁이 이번에 발표될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 발표

정부의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2031년, 이하 전기본)의 확정안 발표에 앞서 민관 전문가들이 ‘수급계획’과 ‘설비계획’ 초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8차 전기본에는 2년 전보다 낮은 전력 수요 전망치와 적정설비예비율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수요전망 워킹그룹은 2030년 전력 최대수요를 101.9GW(기가와트)로 전망했다. 2년 전 7차 전기본이 같은 해 최대수요를 113.2GW로 잡은 것과 비교하면, 11.3GW가 감소한 것이다. 이어 지난달 11일 8차 전기본 전력정책심의위는 기존에 22%였던 2030년 적정 설비예비율을 20~22%로 낮춰 잡았다.

전력예비율은 전력의 추가공급 여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전기를 공급하는 능력에서 최대 전력수요를 뺀 수치를 최대 전력수요로 나눠 계산한다. 전력예비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전기 사용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전력예비율은 공급예비율과 설비예비율로 나뉜다. 전자는 실제로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 중 남아 있는 비율을, 후자는 전력 수요가 최대일 때도 가동하지 않고 예비로 남겨두는 설비의 비중을 나타낸다.

전기본은 향후 전력 수요를 계산해 설비예비율을 정하고 그에 따라 발전소 등 전력설비의 확충안을 수립한다. 때문에 정부가 설비예비율을 낮게 잡으면 그만큼 발전설비를 덜 지어도 된다. 이 같은 방식으로 정부는 전력수급의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력 공급을 관리한다.

안정적인 전력수급 최우선 과제였던 이유

지난 7차 전기본의 최우선 목표는 전력의 수급안정이었다. 2011년 9월 발생한 순환정전 사태를 경험한 것이 배경이다. 당시 늘어난 전력 사용으로 정전 사태가 발생하면서 교통시스템과 경보시스템이 마비되고 은행거래까지 중단됐다. 이는 사업장과 가정뿐만 아니라 국가 방위의 비상상황으로 이어졌다.

당시 전문가들은 2006년 수립한 3차 전기본의 전력수요가 과소 예측됐다며, ‘전력수요 과소 예측-설비확충 억제-전력소비 증가-수급 위기’의 패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7차 전기본에는 기후 변동성과 발전설비의 건설 차질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만일의 사태를 중심에 두고 설비 확충 계획이 결정됐다.

7차 전기본뿐만이 아니다. 그동안의 전기본에는 늘 전력의 과잉 예측 또는 과소 예측이라는 논란이 뒤따랐다. 근본적으로 전력 수요를 예측하는데 수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15년 단위의 전력 수요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향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비롯해 산업구조, 인구, 전기요금, 정책, 기상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전력 수요 예측의 불확실성 탓에 그동안 정부에서는 각자의 에너지 정책 기조에 따라 입맛에 맞는 전기본을 수립한다는 지적도 과잉 예측된 부분을 바로 잡는 과정이라는 평가도 있다.

전기본. 수요 예측보다 관리에 방점 찍어야
“전력 수요 정점 찍고 감소할 것”

8차 전기본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을 넘어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안한 이들이 있다. 녹색당과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과거 전기본에서 과다한 수요예측이 반복돼온 관행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를 막기 위해 먼저 전력수요 감축목표를 정하는 방식의 접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백캐스팅(backcasting)이다. 그동안 정부는 과거 경제 성장 시기의 패턴으로 고정된 전력 증가 추세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즉포캐스팅(forecasting) 방법을 활용해 왔다. 이들은 전력의 수요가 일정 시점에서 정점을 찍고, 감소하는 시기로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를 고려해서 바람직한 전력 수요의 목표를 정하고, 수요를 관리하는 정책을 펴야한다는 설명이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은 8차 전기본 초안에 대해 “이전 전기본보다 좋게 평가한다”면서도 “실제로 8차 전기본의 내용으로 확정될지는 두고봐야할 일”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이어 “2030년 이전까지 전력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논의되고 있다”며 “실제로 수요가 계속 증가할지, 반대로 우리가 수요를 늘려가면서 전력을 사용해 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요 정점이 언제쯤 올 것인가를 예측하고 규범적으로 정한 뒤, 수요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필요한 발전설비 규모를 정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7월 녹색당이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 의뢰해 발표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대안 제시 : 2030년 탈핵, 2050년 탈석탄 에너지 시나리오(이하 대안전력 시나리오)’에 따르면, 앞으로 한국 사회의 전력 수요가 정점을 찍고 감소할 것으로 보는 주요 요인은 ‘저성장 경제’와 ‘인구’이다. 최근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전력소비량의 증가 추세가 둔화되고 있으며, 인구 또한 2030년을 정점으로 이후 감소한다는 것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2016년 장기 에너지 수요전망(2016~2040)’ 자료에 따르면, 세계 경기의 불황 속에서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한국 경제의 주력 산업은 중국과 같은 후발국과의 경쟁 심화로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한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한계 기업이 속출하고, 국가 차원의 산업구조 개편의 필요성이 제기 될 것으로 예측했다.

경제저성장·에너지탈동조화 현상 고려해야

이와 관련해 한 부소장의 설명은 한 단계 더 들어갔다. “한국처럼 일정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뤄낸 나라의 경우, 저성장 기조를 벗어나 경제가 성장을 해도 에너지소비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이는 실제로 여러 유럽국가와 독일 등 한국보다 앞서 경제성장기와 침체기를 겪은 국가들의 사례로 반증된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 성장과 에너지 소비의 연동관계가 떨어지는 탈동조화(디커플링, decoupling) 현상”이라고 설명했다.과거 100원짜리 물건을 만들 때 10 정도의 에너지를 썼다면, 에너지 생산효율이 좋아지면서 5 정도만으로도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 정부에서는 한국전력과 같은 거대한 기업들이 공급하고 있는 전력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접근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고, 성장률이 낮아진다고 하더라도 전력수요가 증가할 것을 전제로 해서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7차 전기본에서는 6차 전기본 수립 시기에 비해 성장률이 0.42%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전망됐지만 설비예비율은 조정돼지 않았다.

대안전력 시나리오는 단순히 수요의 정점을 예측하는 것을 넘어 구체적인 목표를 잡고 있다. 2014년 OECD유럽의 1인당 전력소비량 5.87MWh(메가와트시)를 벤치마킹해서, 2050년까지 한국 사회의 전력소비를 줄여나간다는 설정이다. 이상희 녹색당 정책2팀장은 “한국의 2016년 1인당 전력소비량은 9.7MWh로서, 지금의 전력소비를 60.5%까지 감축한다는 구상”이라며 “이 가정대로라면 2025년에 한국사회는 전력수요의 정점을 찍고 서서히 감소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올해부터 2050년까지 34년에 동안 해나갈 목표를 잡은 것으로 결코 과하지 않다”며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치”라고 강조했다.

전기 사용에 대한 국민적 인식 전환 필요

값싼 전기 사용을 당연하게 여기는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녹색당은 대안전력 시나리오에서 원전을 2030년까지, 석탄발전소를 2050년까지 모두 폐쇄하는 것을 전제로 했다. 또 이를 대신해 재생에너지와 LNG 발전을 중심으로 하는 전원믹스를 통해 전력소비에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이때 LNG발전소는 정부의 7차 전기본에 따른 설비용량과 확충 계획을 그대로 따르지만,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용량은 대폭 증가시킨다.

대안전력 시나리오의 목표와 가정을 적용하면 한 달에 3000kWh(킬로와트시)를 사용하는 가정이 2030년 지불해야 할 전기요금은 28,328원으로 추정돼 2015년(25,619원)보다 약 2,700원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상희 팀장은 “과거 정부의 목표는 경제 성장이었고, 이를 위한 공장을 가동하는데 쓰이는 충분한 전기가 필요했다”며 “전기 생산을 늘리기 위해 절차나 제도를 간편하게 만들어 전력 설비 시설을 건설할 때 인근 지역주민들의 동의를 구하거나 환경평가를 실시하는 등의 인·허가 절차를 전원(電源)개발촉진법이라는 악법으로 생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밀양에서 송전탑을 세우는 것을 두고 주민들이 왜 싸움을 했고, 핵발전소 건설 지역의 주민들이 건설 반대를 외치고 있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며 “전기는 물과 공기처럼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미세먼지, 핵폐기물, 온실가스배출, 지역주민들의 피해까지 생각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전기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그 에너지가 우리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월급을 받으면 월급의 액수에 맞춰서 살림사이를 설계하는데, 지금까지 정부의 전기본 수립 방식은 빚을 낼 것을 전제로 전기를 끌어와 써온 셈”이라며 “강력한 전력 수요관리 정책과 과도한 에너지다소비 업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개편하는 노력을 통해 전력 수요를 줄여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