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노동조건 개선,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택시 노동조건 개선,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9.0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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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최저임금의 비밀… TIMS에 주목
[사건] 택시운송업 노동시간과 최저임금

근로기준법 제59조를 어떻게 손질하느냐를 놓고 올 여름 국회와 관련 업계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노선버스운송업 노동자들을 필두로 택시노동자와 집배원들의 이른바 ‘노동시간 특례조항’을 폐지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이들은 7월 3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 회의 결과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결과는 노선버스운송업만을 근로기준법 제59조의 특례업종에서 제외하는 것이었다.

▲ 서울역 앞 택시승강장에서 택시들이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장시간노동, 택시도 위험 수준

휴가철 연이어 발생한 버스 사고의 여파로 여야는 노선버스운송업을 특례업종에서 제외키로 합의했다. 장시간노동이 버스노동자들의 졸음운전과 돌연사 위험을 증가시켜 결국 승객 안전을 위협하게 된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7월 31일 국회 환노위 고용노동소위 회의 결과가 알려진 순간은 버스노동자들과 택시노동자·집배원 간 희비가 엇갈린 때이기도 했다. 노동시간으로 따지자면 두 업종 모두 버스운송업 못지않다.

노선버스운송업만을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키로 한 여야 합의에 대해 전택노련과 민주택시노조 등 양대 노총 택시노조는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노선버스와 택시 둘 다 같은 운수업인데 택시운송업은 그대로 놔둔 채 유독 노선버스운송업만 특례업종에서 빼느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경기도 광역버스 추돌사고와 광주 시내버스 운전자 사망사고가 언론에 대서특필된 탓인지 고용노동소위 회의에서는 택시를 포함한 타 업종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양대 노총 택시노조는 “택시운송업 또한 장시간노동으로 인한 사고 위험이 매우 크다”고 주장한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지난해 시내·시외·고속버스 등 노선버스의 사고건수는 6,879건이었고, 법인택시의 사고건수는 1만 5,690건이었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노선버스가 119명, 법인택시가 139명이었다. 이와 관련해 택시노조 측은 “버스는 한 번에 많은 승객을 태우고 가기 때문에 한 건의 사고가 크게 날 수 있지만, 택시는 적은 승객을 수송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5년 내놓은 ‘택시 최저임금 현장 연구보고서’는 “자가용이나 버스 등의 사고율이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택시는 교통사고가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르면, 서울·부산 등 전국 대도시 법인택시 노동시간은 월 평균 249.5시간이었다. 전 산업 월 평균 177.2시간보다 70시간 이상 많은 수준이다. 보고서는 택시 교통사고의 원인을 부족한 운송수입 메우기에 따른 1인 1차제 확대와 그로 인한 노동시간 증가, 피로도 누적으로 보았다.

임금협정서와 너무 다른 실노동시간

법인택시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지역, 근무형태에 따라 다르다. 인구가 많은 대도시 지역은 상대적으로 높은 운송수입을 올릴 수 있어 노동시간이 군 지역에 비해 적은 편이다. 근무형태별로는 1일 2교대제가 한 사람이 차량 한 대를 가지고 하루 동안 운행하는 1차제보다 노동시간이 짧다. 문제는 실노동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노동조건이 낫다고 알려진 서울 법인택시의 월 노동시간은 1일 2교대제를 기준으로 2003년(197.2시간) 대비 2014년(233.7시간) 18.5%가 증가했다.

실제 노동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반면 사용자와 노동자가 합의하여 하루에 일하도록 정한 시간인 ‘소정근로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소정근로시간은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기준이 될 뿐 아니라 최저임금 산정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전국 택시업체의 임금협정서에 명시된 1일 노동시간은 8시간이 채 안 됐다. 경북 군 지역의 임금협정서상 1일 노동시간은 고작 1시간 30분, 한 달로 계산하면 고작 19.5시간이다. 반면 이곳의 1일 실노동시간은 13시간 20분으로 임금협정서의 노동시간과는 무려 11시간 50분이나 차이 났다. 택시운송업의 실노동시간과 임금협정서상 노동시간의 분열은 계속되고 있다.

한편 이 둘의 차이는 운송수입 감소에 기인한다. 이는 다른 운송수단에 비해 택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집집마다 승용차 한 대씩은 갖게 되면서 택시는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이와 반대로 택시의 공급은 늘어나 만성적인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최저임금 위반 피하려고 ‘꼼수’

운송수입 감소에 더해 2009년에는 택시운송업도 최저임금제의 온전한 적용을 받게 됐다. 그 취지는 법인택시노동자들의 저임금을 해소한다는 것이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해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그 대상이 되는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야 하지만, 택시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택시운송업에서 최저임금제가 실시되자 택시업체들은 앞서 살펴본 임금협정서상 노동시간의 감소로 대응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더라도 기본급을 올리지 않고 노동시간을 줄여버린 것이다. 예컨대 2014년 대구지역 법인택시의 임금협정서상 월 임금은 102만 2천 원으로 1일 6시간(월 150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6,814원꼴이지만, 실노동시간인 283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3,608원꼴이었다. 2014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5,210원이다.

여기에 택시운송업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임금체계인 사납금제를 고려하면 문제는 한층 복잡해진다. 법인택시노동자들의 임금은 크게 기본급과 상여금 및 수당, 초과운송수입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초과운송수입금은 택시노동자 한 사람이 하루 동안 벌어들인 수입에서 사납금(납입기준금)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다. 즉 사납금을 채우고 남은 운송수입금(개인수입)을 택시노동자들이 가져가는 것이다. 사납금을 채우지 못할 경우 그만큼 급여에서 공제된다.

그러나 사납금을 채우기까지 필요한 노동시간은 임금협정서에 명시된 노동시간보다 길다. 지역별로 적게는 0.2시간에서 길게는 7.4시간까지 차이가 벌어진다. 앞서 예로 든 대구지역 법인택시의 경우 사납금을 채우기까지 필요한 시간이 9.7시간이었다. 이를 기준으로 시간당 최저임금을 계산해 보면 4,215원꼴이다. 역시 그해 최저임금에 미달된다. 결국 임금협정서상 노동시간 감소는 환경 변화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최저임금 위반을 피하기 위한 꼼수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택시노동자들은 회사와 노조의 담합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광역시·도 단위의 사업조합과 노동조합이 중앙임금협정을 체결하여 1일 노동시간과 납입기준금(사납금)을 정하더라도 사업장 단위에서 무력화된다는 것이다. 개별 택시회사와 노조가 중앙임금협정과 다른 내용으로 별도의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식이다. 한 법인택시노동자는 이와 관련해 “노조가 별 힘이 없다”고 귀띔했다.

TIMS, 택시 노동조건 개선의 열쇠로

택시운송업의 장시간노동과 최저임금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업계에서는 노동시간을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꼽는다. 쉽게 말하면 택시노동자가 차량을 가지고 어디서 무엇을 얼마나 하는지 어떻게 알겠느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초과운송수입금을 포함한 임금총액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었다. 현행 최저임금법이 택시운송업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기본급만으로 최저임금을 산정토록 한 것이 편법을 부추긴 원인이라는 얘기다. 택시운송업의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둘러싼 논쟁은 헌법재판소까지 갔다. 2011년 헌재는 현행 최저임금법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더구나 2013년 택시를 포함한 사업용 자동차에 운행기록장치 장착이 의무화되면서 택시운송업계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택시 운행기록장치는 일종의 블랙박스로 택시의 모든 움직임이 기록된다. 국토교통부는 택시 운행정보 관리시스템(TIMS)을 구축하여 택시 운행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택시의 위치, 속력과 분당엔진회전수(RPM), 주행거리, 운행 여부, 요금, 유류사용량 등이 TIMS에 전송된다. 택시노동자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국토부는 지난 2014년 대전광역시를 TIMS 시범사업지역으로 선정한 데 이어 전국으로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TIMS 도입으로 택시노동자의 실노동시간과 택시업체의 운송수입, 유류비용을 모두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택시운송업 노동조건 개선의 열쇠로 떠오른 것이다. 국토부는 TIMS 도입의 기대효과로 ▲종사자 처우개선 및 도덕적 해이 방지 ▲건전한 여객질서 확립 ▲택시사고 감소 ▲자발적 경영개선 유도 ▲조세포탈 방지를 꼽은 바 있다. 물론 관계부처인 국토부와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지자체가 얼마나 TIMS를 잘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택시운송업의 노동조건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국토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TIMS 활용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