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치다
사내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치다
  • 고관혁 기자
  • 승인 2017.09.0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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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패배, 두 번째는 희망
[인터뷰] 김민식 MBC PD

“2012년 총파업을 되돌아보면 어떻습니까”라는 첫 질문에 김민식 PD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패배였죠. 아주 철저한 패배”

5년 전 MBC가 김채철 사장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170일간 총파업을 실시했을 때 그는 노조 부위원장이었다. 집행부로서 파업을 지휘했다. 하지만 처절했던 6개월의 사투는 상처만 남았다. 많은 동료들이 징계와 해고를 당했고 비제작부서로 유배당했다. 그리고 떠난 동료들의 자리를 채운 건 사측의 입맛에 맞는 경력기자들이었다. 김재철 사장은 그대로였고 변한 건 없었다.

▲ 김민식 PD. ⓒ 이순구

김민식 PD 역시 보복을 피할 순 없었다. ‘뉴 논스톱’, ‘내조의 여왕’ 등 인기 드라마를 연출한 스타 PD였지만 주로 신입 PD들이나 발령받는 야외연출팀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MBC의 암흑시대가 시작된다. 김재철, 김종국, 안광한 그리고 현재 김장겸 사장까지, MBC는 철저히 망가진다.

그러던 도중 지난 5월, 돌연 사내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는 외침이 들렸다. 그곳에 김민식 PD가 있었다. 휴대폰 하나 들고 SNS에 상황을 생중계하며 끊임없이 김장겸 사장 퇴진을 외쳤다. 그는 왜 그렇게 외친 걸까? 그리고 2012년부터 어찌 지내온 것일까? 최근 개봉된 ‘공범자들’ 홍보 때문에 정신 없이 바쁘다는 그를 만났다.

- 2012년 총파업이 무려 170일동안 지속됐다. 버티기 힘들진 않았나?

“파업 막판에 파업을 접어야 할지, 아니면 끝까지 싸워야 할지 집행부 내부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고백하자면 난 접고 올라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6개월 동안 한 가정의 가장들이 전혀 수입 없이 싸웠다. 조합원들 중에서 빚을 내서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만약 파업을 지속해도 겨울에 박근혜가 당선되면 미래가 없었다. 결국 생활고를 못 견디고 이탈하는 조합원들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이탈자가 없는 이때 올라가자고 주장했다. 마침 박근혜 측에서 노조가 파업을 풀고 복귀하는 모양을 보여준다면 김재철을 사퇴시키겠다는 연락을 보냈다. 물론 지켜지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뭐라도 붙잡아야 했다.”

-지난 5월 30일에 사내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라고 외치며 SNS로 생중계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노조차원이 아닌 혼자 기획하고 실행한 일이라던데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2012년 총파업 패배에 대한 부채감이 컸다. 내가 그 싸움을 이끌었던 집행부였다. 파업 이후 조합원들이 피해를 봤다. 그래서 지금 집행부에게 싸우라고 말하기 보단 나 혼자 죄 갚음의 심정으로 했다. 사실 난 지난 5년간 끊임없이 싸워왔다. 언론사와 개인 SNS에 글을 남겼다. 쓸 때마다 ‘회사에서 이번 글로 날 징계하려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부장이 호출해 ‘글을 안 쓰면 안 되겠느냐’하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짖었다. 한편으로는 이걸로 날 징계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기회가 오길 기다렸다.”

-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싸우고 싶었는가?

“과거 회사생활이 참 즐거웠다. 항상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시켜 줬다. 이렇게 MBC가 망가지기 전에는 좋은 콘텐츠들을 많이 생산했다. 그 요인은 바로 제작 자율성 보장이었다. PD든 기자든 ‘너희들이 하고 싶으면 해봐’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좋은 사례가 PD수첩의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보도이다. 이런 문화는 87년 이후 방송사 최초로 결성된 노조 때문이다. 그리고 90년 손석희가 포승줄에 묶여가는 사진을 남긴 파업을 하면서 제작 자율성을 얻게 됐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게 조연출 시절 내 결과물에 부장이 손을 대면 주변에서 농담으로 ‘야 노조에 가서 제보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럼 노조에서 작살을 내니까. 그만큼 MBC는 노조가 강했다. 그래서 이렇게 즐거운 이유가 노조가 강해서 구나 라고 생각했고 항상 은혜를 갚고 싶었다.”

-결국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 하지만 첫 번째 인사위 때는 55장짜리 소명서를 하나하나 읽어 결국 정회됐고, 두 번째 인사위를 마치고는 인사위원들이 소명자료를 다 읽었나 퀴즈를 내겠다고 선언했다. 마치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다.

“정말 즐기고 있다. 내가 즐겁지 않다면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과 후배들에게 ‘싸우는 것이 즐겁고 재밌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된다. 오늘 아침에 SNS에 올린 글에 벌써 800명 넘게 응원 댓글이 달렸다. 이분들 덕분에 내가 버티게 된다. 이젠 싸우는 것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닌 나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말을 할 때는 조심스럽다. 희생 없이는 투쟁할 방법이 없는 노조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의 방식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MBC의 투쟁은 이렇게 (즐겁고 재밌게)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계속되는 정권의 언론장악 시도.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어려운 이야기이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공영방송의 사장 선임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이외로 쉬운 길도 있다. 김장겸 같은 사람을 쳐내면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영방송을 망가트리면 어찌 되는지 여론재판을 통해 또는 형사재판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 김장겸 사장 퇴진운동을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 사람이 사장 신분으로 있는 이상은 처벌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자연인의 신분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또한 영화 ‘공범자들’같은 기록물이 중요하다. 기록을 통해 누가 어떤 짓을 했는지 정확하게 남겨야 한다.“

- 두 번째 총파업을 앞두고 있다. 이번엔 어떨 것 같은가?

“나는 늘 미래가 밝다고 생각했다. 2012년에 깨졌지만 그래도 전 조합원이 함께했다. 이미 우린 바닥을 한번 찍었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젊은 조합원들에게 말한다. 부럽다고. 너흰 MBC의 재건을 맡아 끌어 올리는 주역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혹여 다시 암울한 시대가 와도 김민식 선배를 기억하고 ‘김민식처럼 즐겁게 싸우자’라며 나갔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김민식 PD는 MBC노조의 투쟁이 노동계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PD수첩 제작진들이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바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기획을 사측에서 일방적으로 막아서이다. 그때 PD수첩을 연출하는 PD가 이런 노동문제를 주제로 잡은 것은 같이 일하던 계약직 PD가 계약만료를 당해 나가야 하는 현실을 봤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세월 MBC는 노조탄압을 가장 많이 겪은 사업장이다. 만약 MBC가 정상화 되고 탄압을 겪었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노동에 관련된 취재를 나간다면 그걸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것이다. 피해자의 입장을 더 잘 살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MBC 정상화는 한국 노동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노동계의 관심 부탁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