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게 일할 권리’에서 ‘즐겁게 일할 권리’까지
‘안전하게 일할 권리’에서 ‘즐겁게 일할 권리’까지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9.0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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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전문가 역할을 고민하다
[인터뷰]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

공장에서 반복 작업을 하다 보니 허리가 아프다. 회사에서 장시간 컴퓨터를 사용해 손목이 뻐근하다. 과거에는 이 같은 증상을 직업병과 연결해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을 하다보면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직업으로 인해 생기는 근육과 관절, 신경, 인대 등의 만성적인 장애를 통칭하는 ‘근골격계 질환’은 현재 산업안전보건 영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직업병이다. 한국에서 근골격계 질환 문제를 가장 먼저 알리고 법제화 한 사람은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신임 소장이다.

지난 7월 1일 임기를 시작한 그는 오는 8월 24일 취임식을 거쳐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

90년대 1위 기업 포항제철, 사표 쓰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이황화탄소로 인한 직업병 투쟁의 결과로 1999년 5월 녹색병원과 함께 설립된 연구소다. ‘환경으로부터 노동자와 시민의 건강을 지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건강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해왔다.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고, 전문가와 노동자·시민을 연결시키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산업보건을 공부했다. 1990년 가장 선호도가 높았던 포항제철에서 첫 직장 생활을 했다. 보건담당으로 1년 6개월 일하다 그만두고, 구로의원에서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상담을 시작했다. 노동현장의 문제를 노동자와 함께 고민하고, 그들을 교육하는 일을 하다가 연구소가 생겨서 자연스럽게 직장을 옮겼다.

근무환경도 좋고, 전문분야를 활용할 수 있었던 포항제철은 왜 그만뒀나?

작업장의 다양한 환경요인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역할이었다. 전공한 내용을 현장에 적용하고 유해요인을 찾는 일 자체는 신나고 재밌었다. 그러나 조직생활이란 것이 쉽지 않았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알아서는 안 되고,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내용 등을 구분해 제약을 뒀다.

그러던 중 공장 내 발암물질 문제가 터졌다. 당시만 해도 노동자가 직업환경의 발암물질로 암에 걸린다는 것은 낯설었다. 노동조합의 요청에 따라 외부 전문기관인 서울대 보건대학이 작업장의 발암물질을 조사를 실시하자, 기준치의 몇 배를 웃도는 심각한 결과가 확인됐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화사는 내게 서울대 보건전문대학의 교수와 연구원들을 설득해 조사 결과가 잘못됐다는 답을 받아오라고 지시했다. 2시간 정도 고민했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동기와 차라리 깨끗이 옷을 벗자고 뜻을 모았다. 그길로 바로 서울로 올라와 포항제철 작업장의 실태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회사는 6개월 동안 어떤 업무도 주지 않았고, 사표를 냈다.

전문가, 논문게재 넘어 현실 변화 이끌어야

2시간 만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신념 같은 것이 있었나?

젊은 혈기가 왕성한 28살 때였다. 아주 쉽게 결정했다. 신혼이어서 아내만 먹여 살리면 됐다. 자녀들이 생긴 30대 이후, 그때와 같은 상황이 닥쳤다면 장담할 순 없을 것 같다. 더 깊이 고민했을 것이다. 구로의원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급여가 예전에 받던 것보다 터무니없이 줄었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구로의원에서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했던 ‘전문가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전문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금도 계속 하고 있는 고민이다. 연구소 차원에서도 앞으로 고민해할 지점이기도 하다.

전문가는 사회를 발전시키고,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세상에는 정말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 대부분은 세계 유수의 잡지에 논문을 쓰는 것에 그친다. 사회적 변화, 소외된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데 전문가가 사람들과 같이 나서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많다. 전문가는 사회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이 같은 고민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사회 변화를 위해 잘 알려지지 않은 문제들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제도화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 화두를 던지다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계신데?

20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일을 하다보면 당연히 아픈 것이지, 직업병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 근골격계 질환은 직업으로 인해서 근육과 관절, 신경, 인대 등에 만성적인 장애가 오는 것이다. 반복적인 작업을 할 때 자세가 안 좋거나, 지나치게 무거운 것을 드는 경우 쉽게 발생한다.

한국사회에서 누구도 알지 못할 때부터 현장의 전문성을 가지고 근골격계 질환 문제를 알려왔다. 이제는 한국에서 가장 비중이 높고 중요한 직업병이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근골격계 질환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셨나?

구로의원에 있던 90년대 한국통신공사 전화안내원의 작업환경에 대해 조사했다. 일반인들은 전화 안내원이라면 통화하는 업무가 주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하루 종일 컴퓨터 작업을 한다. 전화로 질문을 받으면 자료를 검색하고 엔터를 치는 반복 작업으로 목과 팔, 어깨 등의 통증이 심했다. 전화안내원들의 작업환경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사람들에게 근골격계 질환을 알렸다. 공청회와 토론회가 열렸다. 유사한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에 대한 논의도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법을 개정하기 위한 작업을 열심히 했다. 이후 2002년 12월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 2003년도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그것이 지금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사업주 예방의 의무사항이라는 법이다.

안전보건의 부정의·불평등 문제 집중

한국사회에서 노동현장의 안전보건 문제는 30년 전과 비교해 얼마나 개선됐나?

전혀 변화가 없다. 노동운동이 한창일 땐 노조의 주도로 노동현장의 안전보건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지금은 일반 시민의 안전문제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이는 노동현장의 문제가 개선됐기 때문이 아니라, 2000년대 중반 이후 노동운동의 이슈가 안전에서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들의 고용문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자기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은 모두 외주를 준다. 그래서 심각한 안전보건의 문제는 전부 하청화, 외주화 됐다. 일명 ‘위험의 외주화’다. 앞서 30년 전과 비교해 변화가 없다고 말한 이유다.

연구소가 향후 초점을 맞춰 나갈 영역은?

‘위험의 외주화’와 같은 안전보건의 정의롭지 못한 ‘부(不)정의의 문제’,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할 계획이다. 대기업 노동자들과 달리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연구해달라고 요청해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연구소는 이처럼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해 왔고 해 나갈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들의 문제, 전혀 논의되지 않았던 농민들의 안전 문제까지 관심을 두고 있다.

소장으로 있는 동안 안전보건의 새로운 아젠다를 만들어가기 위해 연구소의 역할과 어떻게 소통하고 연대해나갈지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