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 인명사고 부른 ‘km 임금제’
고속버스 인명사고 부른 ‘km 임금제’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9.08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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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행시간 길어져도 거리 못 채우면 임금 줄어
최장기간 추석연휴… “무서워서 버스타겠나”

주말 고속도로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건 세 건의 교통사고였다. 지난 2일 하루 동안에만 천안논산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에서 각각 1건과 2건의 연쇄 추돌사고가 발생했는데, 이번에도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고속버스업계 특유의 km 단위 임금체계가 졸음운전을 유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승차장에서 시민들이 고속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승차홈으로 들어서고 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일반적으로 노동자의 임금은 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고속버스업계의 경우 운전기사들의 임금은 운행거리가 좌우한다. 운행거리가 길수록 더 많은 수당을 받는 것이다.

한 업체의 지난 해 임금협약서를 분석한 결과, 1km 당 17.76원의 노선수당이 책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연장근로수당과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역시 1km 당 노선수당에 일정 비율을 곱해 산출됐다. 대표적 장거리 노선인 서울-부산 노선의 편도 운행거리는 384.3km로 이들 수당의 합계는 3만 302원이었다. 단거리 노선인 서울-대전 간 운행거리는 153.2km, 수당의 합계는 1만 2,079원이었다. 이 업체의 임금협약서에는 “노선별 1회 운행 시 협정 승무제수당은 1km 당 78.85원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이 같은 임금체계는 노동시간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로 사정에 따라 교통체증이 발생하면 운행시간이 길어지더라도 이른바 ‘승무제수당’은 각 노선별로 책정된 금액만 지급되기 때문이다. 또 한 달 19~20일로 정해진 근무일수를 채우더라도 월 기준 운행거리를 달성하지 못하면 임금 손실이 발생하기도 한다.

결국 몇 시간을 일했든 상관없이 1만 2,000km 수준인 월 기준 운행거리를 충족시키는 것이 운전기사들에게 중요하다. 김정모 고속버스노조 위원장은 “고속버스 기사들의 급여가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교통체증이 생겨서 적은 횟수를 운행하면 노동시간이 길어지는데도 오히려 수당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운행거리 중심의 임금체계가 운전기사들의 장시간노동과 졸음운전을 부추기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매우 적은 기본급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업체의 경우 올해 신입사원의 기본급은 110만 3,837원이었다. 22년(45호봉) 동안 근무한 운전기사라 하더라도 기본급은 137만 3,837원에 불과했다. 반면 운전기사들의 평균 연봉은 7천여 만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의 대부분을 ‘승무제수당’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러한 임금체계는 고속버스가 우리나라에서 첫 운행을 시작할 때부터 이어져 왔다. 여기에 운수업이 근로기준법 제59조에 따른 노동시간 특례업종이라는 점도 업계에서 운행거리 중심의 임금체계를 고수하게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10월 2일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10일 간의 추석 황금연휴를 앞둔 가운데, 고속버스를 이용해 귀성길에 오르는 시민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한 시민은 “(운전기사들이)졸음운전을 많이 한다는데 무서워서 버스를 타겠느냐”며 우려했다. 계속되는 졸음운전 사고로 인해 시민 불안이 가중되면서, 고속버스업계의 운행거리 기준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운수업을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