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로봇행원 페퍼, 기존 대면업무 영향은?
우리은행 로봇행원 페퍼, 기존 대면업무 영향은?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10.1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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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여의도금융센터‧명동금융센터‧본점영업부로 첫 출근
▲ 11일 우리은행 여의도금융센터에 설치돼 운영 중인 감정인식 로봇 ‘페퍼(Pepper)’ ⓒ 김민경 기자 mkkim@laborplus.co.kr

“우리 고객님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은행에 손님이 들어오자 로봇행원이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고개를 움직여 눈을 맞추고 손동작까지 곁들이는 로봇에 손님들은 신기하다는 반응이다.

사람과 대화하는 로봇이 기존의 은행 대면업무에 어떤 영향을 줄까. 11일 우리은행에 첫 출근한 로봇행원의 실체가 궁금해 오전 10시 30분 우리은행 여의도금융센터를 찾았다.

이날 우리은행은 여의도금융센터를 포함해 명동금융센터와 본점영업부 총 3곳에 소프트뱅크 그룹 로봇 관련 업체인 소프트뱅크로보틱스의 세계 최초 감정인식 로봇 ‘페퍼(Pepper)’를 설치해 운영을 시작했다. 주요 지점에서 시범사업을 통해 기술을 검증하고 향후 페퍼 설치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 11일 우리은행 여의도금융센터에 설치돼 운영 중인 감정인식 로봇 ‘페퍼(Pepper)’를 한 여성 고객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김민경 기자 mkkim@laborplus.co.kr

주요 기능은 금융 상품 설명과 은행 홍보

페퍼의 핵심 기능은 대화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로봇에는 소프트뱅크로보틱스가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앱)이 탑재돼 있다. 페퍼는 손님에게 인사를 하고, ‘상품정보’와 ‘이벤트’, ‘페퍼와 놀자’라는 세 가지 기본 항목을 화면을 띄운다. 손님에게 필요한 금융상품을 추천하거나, 은행 관련한 홍보가 핵심이었다.

맞춤형 상품을 추천받기 위해 상품 정보를 눌렀다. 바뀐 화면에서 ▲예금 ▲대출 ▲보험 ▲카드라는 카테고리가 떴다. 페퍼는 지시에 따라 내용을 선택하기만 하면 적당한 금융상품을 제안했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기대할 땐 “창구를 방문해 상담을 통해 더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세요”라는 멘트가 나왔다. 사람의 행동과 유사하게 움직이고,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지만 기존의 대면업무를 대체할 수준은 아니었다.

로봇행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다양했다. 페퍼가 설치돼 있다면 필요에 따라 사용하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여전히 대면업무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았다. 기계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결함에 대한 우려와 대면 서비스를 기계가 완벽하게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다.

다만 이 같은 반응은 연령대에 따라 다른 경향성을 보였다.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20~30대는 로봇행원의 활용에 대해 긍정적인 반면, 60대 이상의 이들은 다소 부정적이었다. 페퍼에서 멀찍이 떨어져 청원경찰의 설명을 듣던 60대 여성은 “신기하고 좋다”면서도 “이용할 줄 모른다. 은행 창구에서 업무를 보는 것이 편하다”고 말했다.

페퍼가 설치된 첫날 손님들은 페퍼의 기능이나 역할보다 페퍼 자체에 관심을 뒀다. 당일 반나절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페퍼의 기능은 사진 찍기, 얼굴인식게임, 오늘 뭐 먹지, 페퍼에게 물어봐 등을 할 수 있는 ‘페퍼와 놀자’였다.

▲ 11일 우리은행 여의도금융센터에 설치돼 운영 중인 감정인식 로봇 ‘페퍼(Pepper)’ ⓒ 김민경 기자 mkkim@laborplus.co.kr

은행 동료들 “페퍼, 일자리 위협 아닌 조력자”

“자네 일자리 없어지는 것 아닌가”. 여의도금융센터를 수십 년 동안 이용하고 있다는 70대 남성은 페퍼의 설치 소식을 듣고 친분이 있는 청원경찰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이날 그는 지점에서 22년째 청원경찰 일을 하고 있는 박 모 씨에게 걱정스런 인사를 건네며 한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박 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페퍼가 아무리 똑똑해도 도둑을 잡을 수 없다”며 “향후 20년 후에야 하게 될 걱정”이라고 일축했다. 현재 기계가 사람이 하는 업무를 기계가 대체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유모차를 끌고 들어오는 손님의 문을 열어주고, 페퍼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설명하며 이용해 보길 권했다. 이어 “페퍼를 설치하니 은행을 찾는 고객들이 즐거워한다”며 “지점 분위기가 확실히 좋아져 덩달아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페퍼에게 연봉이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관련된 데이터가 없다고 답 하더라”고 멋쩍어 했다.

페퍼가 생소한 일반 시민과 달리, 은행원들에게  페퍼는 이미 유명하다. 페퍼와 같은 은행서비스 기술의 발달과 변화에 가장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원경선 계장은 “은행원들 사이에서는 우리 일자리가 다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며 “금융권 자격증을 더 따거나, 스스로의 능력을 더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추석 연휴 기간 끝난 다음 날 은행 창구를 찾는 고객이 300명이 넘었다. 평소에도 고객이 많은 경우 대기 번호가 20번까지 나간다”며 “로봇 페퍼가 마냥 기다려야하는 고객들에게 상품을 설명하는 역할을 해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했다.

“고객 편리성 향상 위한 대면업무 보완”

우리은행 관계자는 변화하는 은행 서비스는 대면업무를 ‘보완’하는 것이라고 방점을 찍었다.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편리성을 높이기 위해서 고객들이 많이 찾는 주요 점포나 무인점포에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은행의 대면업무가 기계로 대체됐다는 일각의 분석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명확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우리은행은 페퍼 설치에 앞서 고객과 실시간 상담이 가능한 챗봇(채팅로봇) 서비스 ‘위비봇’을 선보인 바 있다. 해당 서비스는 위비뱅크, 위비톡 등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또 작년 12월 25개 지점에 39대 설치했던 ‘위비스마트 키오스크’는 현재 43개 지점, 48대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 위비스마트 키오스크는 디지털 키오스크 기술을 은행 업무에 접목시켜 기존의 ATM기보다 다양한 업무를 볼 수 있는 무인 셀프뱅킹기기로, 예금가입과 체크카드발급은 물론 비밀변호 변경까지 가능하다.  

아직까지 은행에서 사람이 하는 업무를 완전히 기계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비대면 업무가 증가하는 추세라면, 앞으로 이와 관련된 기술이 개발돼 기존의 대면 업무의 비중이 줄어 들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