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여섯'인 아이의 소망 "새처럼 날고 싶어요"
'엄마가 여섯'인 아이의 소망 "새처럼 날고 싶어요"
  • 백민호_파이뉴스 기자
  • 승인 2007.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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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 밖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소녀

이나(가명, 8)는 엄마가 여섯이다. 아이는 안경 쓴 이모를 엄마라고 부른다. 외숙모를, 이웃 아줌마를, 복지관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른다. 엄마 얼굴을 그려보라는 미술시간, 이나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다. ‘진짜 엄마’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이나 엄마는 정신지체인이다. 아이가 기억하는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가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이상한 아줌마’거나 ‘뚱뚱이’ 또는 거짓말만 하는 ‘공갈빵’이다.

가끔 정신을 잃고 사라지는 엄마는 씻지도, 먹지도 않고 거리를 헤매다 역전이나 공원에서 잠을 잔다. 서울이었다가, 의정부였다가 어느 날은 부산이다. 낙태를 한 횟수도 수십 번. 8년 전 만삭의 몸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낳은 게 이나였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피우는 사람들

까만 피부의 이나는 실은 혼혈아다. 아빠는 네팔 사람. 이나가 두 살 때 집을 나가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이나는 태어나서 줄곧 할아버지 품에서 자랐다. 잠자리도 할아버지 옆이다. 할머니가 있지만 12년 전부터 당뇨와 허리디스크, 골다공증으로 몸져누워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다. 할머니는 매일 병원에 가야한다.

그러니 이나의 여섯 번째 엄마는 외할아버지다. 분유를 게워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고, 준비물을 챙겨준 것도 모두 할아버지였다. 하지만 칠순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는 하루하루 기력을 잃어간다. 기관지가 좋지 않아 감기를 달고 산다. 할아버지는 손녀를 예뻐해 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인다.

“이나를 입양 보내려고 했어요. 할머니가 죽든, 내가 먼저 죽든 우리가 없으면 저 어린 것을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까…. 살 용기가 없어서 아무에게도 말도 안하고 죽으려고 약까지 사다 놓았습니다. 그런데 저 어린 것이 눈에 밟혀….”

이나가 외할아버지와 사는 집은 일산의 한 임대아파트. 엄마 앞으로 나오는 장애수당을 포함해 생계보조금 월 70여만 원. 할머니 치료비와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할아버지는 낮 시간엔 노인정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나가 학교에 가고 없으니 난방비를 아껴야 한다.

 

행복한 파랑새의 꿈

이나 네는 ‘사랑의 도시락 나눔의 집’(인천)에서 배달해주는 도시락으로 하루 끼니를 해결한다. 찬거리가 없어 늘 걱정인 세 식구는 도시락 하나로도 뱃속이 든든해진다.
얼마 전까지 이나는 젖병을 물고 잤다. 할아버지는 부모 없는 어린 손녀가 안타까워 매일 밤 아이의 입에 젖병을 물려주고 잠을 재웠다.

이나 엄마는 여전히 한 달에 한 번 집을 찾아온다. 그리고 며칠 뒤 정신을 잃고 다시 뛰쳐나간다. 엄마 품이 그리울 아이는 울면서 잠을 깬다. 군것질을 하고 싶어도 보채지 않는 아이는 꿈속에서 마저도 도망치듯 사라지는 엄마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새를 좋아하는 이나에겐 새장이 하나 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면, 이 주인 없는 둥지 속으로 이나 처럼 예쁜 파랑새가 날아들 것이다. 6년 전 집을 나간 아빠도, 정신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엄마도 함께…. 아이는 지금, 새처럼 날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