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업무직 정규직화 갈등 증폭
서울교통공사 업무직 정규직화 갈등 증폭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10.1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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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때 아닌 ‘쌀밥 보리밥’ 논쟁
[리포트] 서울교통공사 업무직 정규직화

서울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서 때 아닌 ‘쌀밥 보리밥’ 논쟁이 벌어졌다. 누구는 쌀밥 먹고 누구는 보리밥 먹느냐는 하소연이었다. 여기서 쌀밥 먹는 사람은 정규직을, 보리밥 먹는 사람은 무기계약직(업무직)을 가리킨다. 서울시가 지난 7월 발표한 ‘노동존중특별시 2단계’ 계획에 업무직을 정규직화 하는 내용이 담기면서 서울교통공사가 내홍을 겪고 있다. 

간접고용·기간제에서 업무직으로, 그러나 ‘중규직’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노동존중특별시’를 선언했다. 24개 핵심과제를 선정해 서울시내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폭 향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크게 주목받았다. 2012년을 기점으로 지난해까지 모두 9,098명의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자들은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또는 기간제 노동자들이었다. 이전까지 이들은 매일, 그리고 꾸준히 해당 기관의 업무를 맡아 왔지만 공공부문 효율화 바람이 불면서 외주화 되거나 일정 기간마다 근로계약을 반복해 왔다.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전체 임직원 1만 5,000여 명 중 약 10% 가량이 과거 비정규직이었다. 약 1,500명 규모로 이들은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를 노동자들이었거나 지하철 내 치안을 담당하는 보안관들이었다. 전동차를 정비하는 노동자들 역시 비정규직이었다. 이들에 대한 무기계약직 전환의 불을 지핀 사건은 2016년 5월 구의역에서 일어난 스크린도어 사고였다. 사고의 원인을 놓고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의 비정규직 남용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구의역 승강장을 빼곡히 채운 쪽지에는 ‘비정규직이라서 죽었다’는 글귀가 쓰여 있기도 했다.

서울시는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에 있던 간접고용·기간제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면서 업무직이라는 직군을 별도로 신설했다. 정원을 기준으로 구내식당 조리사와 지하철 보안관 등 8개 업무 457명이 일반업무직으로 전환됐다. 또 스크린도어와 전동차 정비 등 6개 업무 998명이 안전업무직으로 전환됐다. 업무직 전환 이후 정년이 보장되고 연공에 따른 임금체계가 적용됐다. 그 외 사내복지도 정규직과 거의 비슷하게 제공됐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비정규직도, 정규직도 아닌 ‘중규직’이라는 자조가 나왔다. 1급부터 7급까지의 직급체계에서 제외돼 승진이 막혀있으면서 임금격차도 존재했다. 서울교통공사에서 전동차 경정비를 하는 업무직 A씨는 “2호봉에서 3호봉으로 올라갈 때 월 기본급이 5,200원 밖에 오르지 않았다”면서 “연차가 쌓일수록 정규직과 임금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승진이 안 되기 때문에 늘 정규직 밑에서 지시를 받으며 일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를 정규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 옛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2015년부터 양 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해 온 끝에 2016년 9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공정한 채용절차 거쳐라” 신입사원들의 반란

업무직 노동자들의 불만은 무기계약직 전환 이후 1년 동안 쌓여왔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른 대우를 받는 현실에 부당함을 느꼈을 것이다. 서울시는 내년 1월 1일자로 업무직 2,442명을 정규직화 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체 대상자 중 서울교통공사 업무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이른다. 서울시가 업무직을 정규직화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들은 마음 놓고 좋아할 수가 없었다. 서울교통공사 신입사원 다수가 업무직의 정규직화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교직원 및 교대생과 당사자들의 갈등이 서울교통공사에서 재현됐다. 마찬가지로 절차의 공정성이 문제였다.

가장 반발이 심한 쪽은 2014년에서 2016년 무렵에 입사한 정규직 신입사원들이다. 이들의 문제 제기는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서만 끝나지 않고 직접행동으로 표출됐다. 서울교통공사 정규직 신입사원들은 8월 27일, 9월 4일, 그리고 같은 달 13일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업무직 정규직화 반대 집회’를 개최했다. 세 번의 집회에 적게는 50명에서 많게는 100명에 이르는 신입사원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들의 집회는 공사든 노조든 그 누구의 개입 없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서울교통공사의 3개 노조 중 소속된 곳이 어딘지는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기간제교사 정규직화가 부당하듯, 서울교통공사 무기업무직의 무분별한 정규직화 또한 부당하다’는 피켓의 문구가 신입사원들이 모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정규직 신입사원들의 주장은 ‘업무직의 처우는 개선해야겠지만, 서로 다른 채용절차에 따른 합리적 차이는 존재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서울교통공사의 지난해 채용공고를 살펴보면 필기시험부터 교육 및 임용까지 7단계를 거친다. 필기시험은 영어와 NCS 기반 직무능력검사등 공통시험과 직종별 전공시험으로 치러진다. 필기시험 합격자들은 인성검사 및 면접시험을 본다. 그리고 신체검사를 거친 뒤 최종합격자가 발표되면 채용후보자 등록, 결격사유 조회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까다로운 채용과정을 거친 만큼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심리다.

지난해 입사한 역무원(사무직 7급) C씨(27)는 “우리도 다 사연이 있고, 힘들게 들어왔는데 특권처럼 말하니까 억울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교통공사에 입사하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C씨는 공공기관이 수도권 외 지역으로 이전한 이후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의 인기가 부쩍 높아져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고 귀띔했다.

정규직 신입사원들은 서울시가 업무직 정규직화 시점을 내년 1월 1일로 못 박은 점도 비판하고 있다. C씨와 입사동기인 D씨(29)는 “정규직화라는 결론을 정해놓은 채 진행하고 있는데,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그는 “업무직을 정규직화 하더라도 기존 정규직과 차이를 두면서 서서히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D씨는 일각의 ‘밥그릇 챙기기’ 주장에 대해 서울교통공사에 입사하기까지 들인 노력의 차이를 반영하지 않는 데 따른 상대적 박탈감과 역차별을 해소하기에 고작 석 달 밖에 남지 않은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항변했다. 

▲ 서울교통공사 정규직 신입사원들이 업무직 정규직화에 반대하며 9월 13일 서울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9월 현재까지 총 세 차례에 걸친 집회를 통해 ‘절차의 공정성’과 ‘합리적 차이’를 강조했다.

깊어지는 감정의 골… 서울시 책임론 속 묘안 나올까

서울시의 업무직 정규직화 계획 발표 이후 업무직과 기존 정규직 간 감정의 골은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하나의 회사에서 서로 다른 두 목소리가 나오면서 보다 못한 노조가 수습에 나섰다. 서울지하철노조는 9월 12일 ‘청년조합원과 함께하는 열린 토론회’를 열었다. 업무직과 정규직이 이번 논란을 둘러싸고 처음 대면한 자리였다. 토론회가 열린 서울교통공사 신답별관 9층 대강당은 신입사원과 업무직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200석의 좌석을 모두 채우고도 다수는 서있거나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야 했다. 현장에서 업무직이 받는 차별대우와, 업무직 정규직화로 인해 공채를 거친 신입사원들이 받을 역차별이 팽팽히 맞섰다. 토론회는 2시간을 넘긴 공방 속에 양측의 견해차를 확인한 채 마무리됐다.

서울지하철노조가 주최한 토론회 이후 사내 온라인 게시판을 뒤덮었던 가시 돋친 글들은 한층 잦아들었다고 내부 관계자는 전했다. 현장은 단지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얼굴을 마주치던 동료들과 서먹해졌다며 안타까워하는 분위기다. 앞서 D씨는 “지하철보안관과 대화도 많이 하고 친하게 지냈는데 이번 일이 있고 나서 얼굴을 마주보기 껄끄러워졌다”며 말끝을 흐렸다.

일각에서는 서울시의 무책임한 행정을 탓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다른 의도를 가지고 업무직과 정규직을 링 안에 세워놓은 채 싸움을 붙이고 있다는 원색적인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불만을 토로하는 수위는 제각각이지만, 서울시가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서울교통공사 내부의 여론이 커지고 있다. D씨는 “처음부터 비정규직을 양산한 쪽은 서울시인데, 그 책임을 우리한테 던져놓고 어느 시점까지 정규직화를 하겠다고만 하느냐”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완강한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의 모토가 노동존중특별시인데 이 분들(업무직 노동자)을 외면할 수는 없다”면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을 했는데 여전히 정규직과의 차별이 있다면, 그리고 해당 업무가 상시·지속적이라면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너무 성급하게 추진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지 모르겠다”고 일축했다. 한편 이 관계자는 ‘너무 무책임하지 않느냐’는 비판에 다소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는 현장을 잘 모른다”며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사가 서로 합의해야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변했다.

서울시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예정대로 내년 1월 1일부터 업무직 전원의 정규직화가 확실시 된다. 일찍이 서울시는 정규직과 유사·동종 업무는 기존 직군으로 편입하고, 이질적 업무는 별도 직군·직렬을 신설해 정원 내로 통합한다는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교통공사 노사는 9월 말까지 합의안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어찌됐든 업무직 정규직화라는 숙제는 노사가 떠안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