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소송 신의칙 적용 이대로 괜찮은가?
통상임금 소송 신의칙 적용 이대로 괜찮은가?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7.10.1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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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기준에 그때그때 달라
[리포트]통상임금 판결에서의 신의칙 적용

지난 8월 31일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에서 서울중앙지법은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기아차 노동자 2만 7,424명)가 통상임금 산정에 포함해 달라고 요구한 임금 항목 중 일비를 제외한 정기상여금과 중식대를 포함해 통상임금을 다시 산정하고 그에 따라 미지급된 부분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노동계와 경영계 두 곳 모두가 주목한 것은 정기상여금, 중식대, 일비 등의 임금 항목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 보다 ‘신의성실의 원칙’ 적용 여부였다.

재판부는 1심에서 “기아차가 그동안 매년 1조 원에서 16조 원에 이르는 영업이익을 기록해 온 만큼, 예상하지 못한 임금 지급으로 기아차가 재정 부담을 안게 되겠지만 그것 때문에 경영상의 중대한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이에 기아차는 신의성실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은 것에 유감을 표하며 즉각 항소했다.

신의칙 넌 누구냐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이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는 민법 제2조 1항을 말한다. 신의칙은 본래 민사법과 민사소송법 전반의 해석과 적용에 사용되는 원칙이지만 최근에는 노동사건에서도 신의칙을 사용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판결인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3년 12월 18일 선고, 2012다89399) 이후에 나타났다.

당시 대법원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야간·휴일·연장 근무 등 초과근로수당 산정 등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이 되기 위해서는 초과근무를 하는 시점에서 판단해 보았을 때 근로계약에서 정한 근로의 대가로 지급될 어떤 항목의 임금이 일정한 주기에 따라 정기적으로 지급이 되고(정기성), ‘모든 근로자’나 ‘근로와 관련된 일정한 조건 또는 기준에 해당되는 모든 근로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되며(일률성), 그 지급 여부가 업종이나 성과 기타 추가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사전에 이미 확적되어 있는 것(고정성)이어야 하는데, 이러한 요건을 갖추면 그 명칭과 관계없이 통상임금에 해당함”을 명시했다.

다만 정기상여금의 경우 통상임금 지급으로 기업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는 신의칙을 적용해 소급분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를 붙였다.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5년 8월 발표한 ‘노동관계소송에서 신의칙과 권리남용금지’에서 “대법원이 제시한 강행법규의 효력을 부정할 수 있는 신의칙 적용의 요건은 크게 ▲당사자가 약정한 금액을 상회하는 이익의 발생 ▲이로 인한 기업의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 또는 존립의 위태로 요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논란의 대상이었던 통상임금 범위를 구체화시킨 판결이었지만 동시에 신의칙을 단서로 붙여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전 교수 역시 “추가 수당 청구에 관련한 과거사 정리를 신의칙에 문의한 점은 오히려 논란을 증폭시킬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때그때 다른 신의칙 적용 판결

재판부는 지난 8월 18일 열린 금호타이어 통상임금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금호타이어 노동자 5명)의 추가 수당 요구가 기업 경영에 막대한 손실을 준다고 판단된다며 신의칙을 적용했다. 이는 1심 판결을 뒤집는 결과였다.

금호타이어는 매년 꾸준히 수익을 내던 알짜배기 기업이었으나 지난 2009년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이듬해인 2010년 워크아웃 개시를 결정했다. 워크아웃은 2014년까지 이어졌으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금호타이어는 2015년(-674억), 2016년(-375억) 2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영업이익마저 적자로 돌아서면서 경영악화는 계속되고 있다.

이에 반해 기아차 판결에서는 “최근의 사드 보복 등으로 인한 영업이익 감소 등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고 있고, 전기차 등 향후 투자의 적정규모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향후 노사협의를 통해 분할 상환 등의 발전적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금호타이어와 기아차 두 기업 모두 재판부에 경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신의칙 적용 여부에서 희비가 갈렸다. 문제는 재판부마다 신의칙 적용을 결정짓는 ‘경영상의 위기’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는 데 있다.

김홍영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6년 12월 발표한 ‘정기상여금 통상임금 사건에서 신의칙 적용을 부정한 사례’에서 신의칙 적용이 분쟁해결을 지연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의칙 적용은 법원이 추가 수당 청구를 부인한다고 판단하는 구조이어서, 법원이 인정해야 비로소 인정된다”며 “판결 결과 신의칙 적용이 인정될지 여부를 노사 당사자가 판결 전에 스스로 알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신의칙 적용이 인정되기 위해 회사 측 사정을 판단하는 것은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기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 기준이 매우 모호하여 법원의 판단이 자의적으로 느끼게 된다”며 “노사 당사자가 신의칙 적용 여부를 미리 예측하기 어려워 법원의 판결을 받기 위해서라도 소송으로 계속 지속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경영상의 위기를 판단하는 시점의 혼란도 존재한다.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소송의 경우 1심 판결(울산지방법원 2015년 2월 12일 선고, 2012가합10108)에서는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았지만 2심 판결(부산고등법원 2016년 1월 13일 선고 2015나1888)에서는 신의칙을 적용했다. 1심 판결은 통상임금이 미지급된 2010년부터 2012년을 중심으로 재정 상태를 가지고 판결했으나 2심 판결은 판결을 내리는 시점인 2014년 이후를 중심으로 회사 재정 상태를 판단했다.

이외에도 1심과 2심 판결에서 신의칙 적용이 뒤집힌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동원금속은 1심에서 신의칙을 적용했으나 2심에서는 적용되지 않았고 아시아나항공과 현대미포조선은 1심에서 신의칙이 적용되지 않았으나 2심에서 적용되는 판결을 받았다.

김 교수는 “회사의 재정 및 경영 상태에 미루어 추가 부담액이 크다는 점을 과거나 현재 중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는가라는 추가적인 쟁점이 발생하여 당사자가 법원의 판단을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노사 간 합의 이끌어내야

신의칙 적용 여부를 알 수 없으니 통상임금 소송 당사자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기아차는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 결과에 즉각 항소했으며 현재 기아차노조도 2심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1심 판결에서 패소한 박한우 기아자동차 사장은 지난 9월 4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열린 ‘산업부, 자동차업계 간담회’에서 백 장관에게 “통상임금 관련 법적인 기준을 명확히 해달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사장의 요구대로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통상임금과 관련한 법적인 기준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기아자동차의 통상임금 1심 판결과 관련해 불필요한 노사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업장 지도를 강화하겠다”며 “통상 임금의 법적 범위를 명확히 하도록 근로기준법의 조속한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지만 구체적인 법 개정 방향이나 일정은 제시하지 않았다.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간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자체적으로 합의를 이루는 것이 있다. 김홍영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송 동안 노사관계는 불안해지며 기업발전을 위한 노사협력은 어려워진다”며 “장기간 경기 침체로 회사 경영은 계속 어려운데 상급심으로 올라갈수록 신의칙 적용 여부에 대한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진다”고 설명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임금협상 시 임금인상분과의 연계를 고려하려 소급분 지급 금액을 결정하고 일괄 지급하는 방식으로 노사 간에 자주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임금구성 체계의 개선, 고용안정 등에 관해 노사 간에 합의를 이루어나간다면 임금 안정성이 확보되므로 소급임금분에 대해서도 노사 간의 신뢰를 가지고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