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열차에서 일하지만 승무원은 아니다?
달리는 열차에서 일하지만 승무원은 아니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10.1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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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공사, ‘열차승무’를 ‘열차안내’로 표기
정규직화 방안의 생명·안전업무에서도 제외

전국철도노동조합이 16일 공개한 ‘철도공사 용역근로자 정규직 전환 추진 방향’ 문건에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 담겨 있어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해당 문건은 지난 11일 노사 및 전문가 중앙협의기구 회의용 자료로 작성된 것으로 총 9,187명에 달하는 간접고용 인력 중 14.5%인 1,337명만 직접 고용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중 533명의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열차승무원들은 빠졌다.

‘생명·안전업무’에서 열차승무 제외한 철도공사

코레일관광개발은 철도공사의 계열사로 철도 관광상품 판매 및 운영과 KTX·새마을호 열차승무가 주 사업이다. 철도공사는 지난 2006년 3월 KTX 승무원들의 파업 이후 옛 철도유통으로부터 열차승무 사업을 회수해 코레일관광개발에 위탁해 오고 있다. 당시 파업에 참여한 KTX 승무원들의 요구는 자신들을 철도공사가 직접 고용하라는 것이었다. 철도공사 정규직인 열차팀장의 지시를 받으며 승객들의 열차이용 안내와 사고조치를 담당한다는 이유였다.

반면 철도공사는 코레일관광개발에 별도 업무매뉴얼이 존재하고, 열차승무원들이 안전업무를 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KTX 승무원이 철도공사의 직접고용 대상인지 여부는 법정으로 넘어갔다. KTX 승무원의 손을 들어준 1·2심 판결과 달리, 2015년 대법원은 철도공사는 KTX 승무원을 직접 고용할 의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은 열차 내 사고조치와 같은 안전업무가 “이례적 상황에서 응당 필요한 조치”라고 봤다.

철도공사는 11일 내놓은 문건을 통해 열차승무를 생명·안전업무에서 제외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철도공사는 생명·안전업무의 기준을 ▲국민안전 관련성 ▲업무의 직접성·밀접성 ▲상시·지속성 ▲기술·자격 유무로 제시했는데, 열차승무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열차승무’ 대신 ‘열차안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KTX 승무원이 안전업무를 하지는 않는다고 전제한 것이다.

▲ 전국철도노동조합 KTX승무지부 조합원들과 2006년 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이 지난 9월 20일 서울역 3층 대합실에 철도공사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붙이고 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철도안전법, 여객승무원에 사고조치 의무 명시
정부 방침은 ‘생명·안전업무 직접고용이 원칙’

하지만 철도안전법에 ‘열차안내’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철도안전법 제2조 10호는 ‘철도종사자’를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철도차량의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운전업무종사자) ▲철도차량의 운행을 집중 제어·통제·감시하는 업무(관제업무)에 종사하는 사람 ▲여객에게 승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여객승무원) ▲여객에게 역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등이다. 나머지 하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인데, 철도안전법시행령에도 ‘열차안내’라는 말은 없다.

승무라는 말 자체가 ‘차량에 탑승해 행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철도공사가 굳이 ‘열차안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철도안전법 시행규칙은 철도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여객승무원은 차량 내 안내방송, 승객 대피, 2차 사고 예방, 비상문 개방, 응급환자 처치 및 이송 지원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단 사고가 나면 철도공사 정규직 열차팀장이든 코레일관광개발 승무원이든 할 것 없이 여객승무원으로서 사고에 대처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승무원들이 철도종사자가 아니라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난 9월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강문대 변호사는 “철도안전법은 열차팀장과 승무원의 업무를 구분해서 열차팀장에게만 안전업무를 부과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대법원 판결만으로 KTX 승무원들이 철도공사의 직접고용 여부를 단정하기도 어렵게 됐다. 대법원 판결 시점과 철도안전법에 여객승무원의 의무가 명시된 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은 2015년 2월 26일에 나왔고, 철도안전법 시행규칙의 해당 조항은 그로부터 1년 6개월여 뒤인 2016년 8월 10일에 신설됐다. 철도안전법상 안전업무가 여객승무원의 의무로 명확해진 이상 ‘생명·안전업무는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한다’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KTX 승무원에 대한 철도공사 직접고용의 길이 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철도공사 노사 및 전문가 협의기구는 오는 11월 서너 차례 추가 논의를 거쳐 간접고용 인력의 정규직 전환 방식과 대상을 확정할 계획이다. 철도공사의 간접고용 규모가 9천여 명이 넘는 탓에 정규직화는 험로가 예상된다. KTX 승무원 직접고용 문제가 10년 넘게 끌어온 가운데, 노사가 참여하는 협의기구에서 어떤 결론을 낼지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