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맥경화
동맥경화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11.2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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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성상영의 촌철살인미수

야근과 술자리가 잦은 직장인들이 경계해야 할 질병 중 하나가 동맥경화다. 펌프질을 통해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혈액이 온몸으로 흐르는 통로가 동맥이다. 콜레스테롤과 지방이 서서히 쌓여 동맥이 막히면 어지럼증이나 저림을 느끼다가 끝내 혈관이 터져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게다가 동맥의 70% 이상이 막혔을 때 비로소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니,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지 않는 한 쉽게 알아채기도 어렵다. 천천히 쌓여온 찌꺼기는 한순간에 혈관을 터뜨린다.

2017년, 국토는 마치 동맥경화에 걸린 듯하다. 5월 11일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에서 고속버스가 앞서가던 승합차를 들이받았다. 7월 9일 경부고속도로 양재IC에서 수도권 광역급행버스가 앞서가던 승용차를 추돌했다. 9월 2일 하루 동안에만 무려 세 건의 비슷한 사고가 일어났다. 열거한 사고 모두 노선버스가 가해차량이었다.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이 가장 위험한 무기가 돼버렸다.

도로의 문제만은 아니다. 5월 27일 경원선 광운대역에서 철도수송원이 작업 중 열차에서 추락했다. 6월 28일에는 경부선 노량진역 부근에서 열차감시원이 전동차에 치였다. 그리고 9월 13일에는 중앙선에서 시운전을 하던 기관사가 열차 추돌로 목숨을 잃었다. 철도노동자들은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의 생명을 저당 잡혀야 했다.

수십 년 동안 쌓여온 안전불감증과 단기적 성과에 대한 집착이 도로와 철도를 막아 세웠다. 버스운송업체들은 운전기사를 더 뽑는 대신 기존의 기사들이 더 오래 운전대를 잡도록 했다. 하루 16시간 근무하고 다음 날 또 운전대를 잡는 게 대부분 버스운전노동자들의 일상이다. 이들의 장시간 운전은 노동시간 특례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방치돼 왔다. 그리고 철도노동자들의 죽음 뒤에는 10년 동안 5천 명 가까운 규모의 인력감축이 있다. 종교처럼 받들어온 공기업 경영효율화의 이면이다.

터질 것이 터졌다는 분위기다.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노동자들은 마치 입을 맞춘 듯 “언젠가 이럴 줄 알았다”고 말했다. 대중교통의 안전은 새삼 강조할 것도 아니다. 천천히 쌓여온 운수 노동현장의 찌꺼기가 이 나라의 동맥을 터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