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비용 전가금지? 여전히 괴로운 택시기사들
운송비용 전가금지? 여전히 괴로운 택시기사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11.2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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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부터 전국 확대 시행, 제도 안착 가능한가
[리포트] 운송비용 전가금지 1년

공급과잉과 수요부족으로 택시운송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든 지는 오래다. 업계에서는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 정부의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해 왔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이 2013년 1월 1일 국회를 통과했으나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일종의 대안 입법으로 이듬해 택시운송사업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이 제정됐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택시발전법의 ‘운송비용 전가금지’ 조항이 시행됐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택시를 대중교통에 포함시키는 법안에 찬성한 의원은 모두 222명이다. 전체 국회의원 중 3분의 2를 훌쩍 넘긴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그 무렵 한 설문조사에서는 국민의 66%가 택시는 대중교통이 아니라고 답했다. 결과적으로 입법부와 여론의 온도차가 드러난 셈이다. 정부 역시 당시의 여론과 입장을 같이 했다.

그로부터 1년의 시간이 지나 택시발전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의 목적은 “택시운수종사자의 복지 증진과 국민의 교통편의 제고”다. 이중에서도 택시운수종사자의 복지 증진이라는 취지를 단적으로 담고 있는 조항이 법 제12조 ‘운송비용 전가금지’다. 운송비용 전가금지는 사업자들의 반발을 우려해 2년간 시행이 유예됐다. 그 뒤 지난해 10월 서울시와 6개 광역시를 대상으로 우선 시행됐다. 올해 10월부터는 전국 시·군 단위로 확대 시행됐다.

운송비용 전가금지의 핵심은 택시 구입 및 운행에 드는 비용을 택시운수종사자, 즉 기사들에게 전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택시 구입비, 유류비, 세차비, 교통사고 처리비 등이 전가금지 항목이다. 시행 초기 일각에서는 택시기사들의 소득 증대에 기여할 거라 기대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노후차량을 폐차하고 새 차를 구입하면, 해당 차량을 운전하는 기사들은 ‘신차구입비’ 명목으로 3천 원 안팎의 돈을 회사에 내야 했다. 통상 25리터에서 30리터 가량 회사에서 지급되는 LPG보다 많은 양을 사용하면 그만큼 운전기사가 유류비를 부담해 왔다. 그 외의 비용 역시 운전기사들의 몫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택시운송업계에서 운송비용 전가 행위는 관행이었다. 택시기사들은 엄연히 근로계약서를 쓰고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만 일하는 형태는 사실상 도급이나 다를 바 없다. 회사에서 차량을 빌려 하루 동안 알아서 운행하고 사납금만 잘 내면 남는 수입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들은 일정 금액을 기본급으로 받지만 그마저도 매우 적다. 반면 1일 사납금은 해마다 수천 원씩 인상돼 주야 맞교대로 일하는 경우 13만 원에서 15만 원 수준에 이른다. 교대 없이 차 한 대를 택시기사 한 사람이 모는 ‘1차제’의 경우에는 1일 사납금이 17만 원에 육박하기도 한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택시기사들, 운송비용 전가금지에도 한숨
서울시, 2개월 만에 위반 사업장 160곳 적발

7개 도시에서 운송비용 전가금지 조항이 시행 1년을 맞았지만 택시기사들의 한숨은 여전하다. 서울의 택시기사 A씨는 벌이가 나아졌느냐는 질문에 “밤 꼬박 새우고 일해 봐야 한 달에 200 정도인데, 부양가족을 못 먹여 살린다”며 한탄했다. 그에 따르면 택시 승객이 늘어나는 심야시간대나 주말에 운행을 해야 생활이 가능하다. 그나마도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올해 대도시 4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 189만 원과 별 차이가 없다. 운송비용 전가금지 조항이 택시기사들의 복지 증진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뚜렷한 효과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두 달 동안에만 모두 160개 업체가 운송비용 전가금지 위반으로 적발됐다. 서울시에 적을 두고 있는 택시업체 254곳 중 3분의 2가 법을 어긴 것이다. 유형별로 보면 택시 구입비와 유류비 모두를 전가한 업체가 38곳, 택시 구입비만 전가한 업체가 71곳, 유류비만 전가한 업체가 23곳이었다. 아울러 서울시는 적발된 업체 중 132개 사업장에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밝혔다.

서울시 실태조사 결과에서 드러나듯 가장 빈도가 높은 운송비용 전가 항목은 택시 구입비다. 택시 구입비 전가 행위는 업체들이 새 차량을 배정받은 택시기사들에게 사납금을 올려 받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택시기사 B씨는 “새 차를 타면 사납금에서 5천 원을 더 내야 한다”고 전했다. 이 경우 택시기사에게 전가되는 택시 구입비는 연간 150만 원(1일 5천 원 × 25일 근무 × 12개월)이다.

B씨의 사례처럼 택시 구입비 전가는 노후차량과 새 차량의 사납금을 달리 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는 행정처분 대상이 된다. 국토교통부 지침은 노사가 합의하여 사납금을 결정하더라도 차종과 차령에 따라 사납금을 달리 정하면 운송비용 전가금지 위반으로 본다.

유류비 전가 사례를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뛰는 제도 위에 나는 업체’ 있는 격이다. 기본으로 제공하는 유류를 초과해 사용한 택시기사들에게 비용을 부담하지 못하게 하자 아예 처음부터 많은 양의 LPG를 지급하는 업체가 생겨났다. LPG를 적게 소모한 만큼 금액으로 계산해 택시기사에게 성과급이나 수당 형태로 환급하는 것이다. 이 같은 행태에 대해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국토부는 뒤늦게 추가지침을 내놨다. 지침에 따르면, LPG 미사용량을 금액으로 환급하는 행위 역시 운송비용 전가금지 위반이다. 택시기사에게 유류비를 사전에 부담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지침은 지난 9월 18일 전국 지자체 및 노사 단체에 배포됐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사용자단체가 만든 노조 명의 탄원서의 실체
그물망 지침에 전국으로 확대, 코너 몰린 업체들

국토부의 추가지침 배포 이후에도 현장은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그 와중에 다소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추석연휴를 앞두고 각 사업장에 A4용지 세 쪽 분량의 문서가 돌아다녔다. 괴문서는 ‘○○노동조합 위원장’ 명의로 된 탄원서였다. 여기서 ‘○○’ 부분은 빈칸으로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 명칭을 적을 수 있게 돼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면은 탄원의 내용이 들어있었고, 마지막 면에는 서명용지가 첨부됐다.

해당 문서의 첫머리에는 “운송비용 전가금지 제도가 입법취지와 달리 택시노동자의 권익을 침해함에 따라 다음과 같이 탄원한다”고 쓰였다. 본문의 요지는 미사용 유류비 환급이 허용돼야 한다는 것과 노후차량 운송수입금을 인하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여기서 ‘미사용 유류비 환급’은 처음부터 많은 양의 LPG를 지급한 뒤 사용하지 않은 양만큼 성과급 또는 수당으로 돌려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리고 ‘노후차량 운송수입금 인하’는 택시 구입비를 사납금에 포함시켜, 노후차량 운전자와 새 차량 운전자가 내는 사납금을 다르게 매기는 행위를 가리킨다. 국토부 지침에 나오는 유류비 및 택시 구입비 전가와 동일한 말인데도 표현하기에 따라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

문제는 탄원서를 누가 작성했느냐는 점이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전택노련)과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민주택시노조) 등 상급 노조에서는 자신들이 탄원서를 작성해 배포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해당 문서를 작성한 곳은 다름 아닌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택시연합회)였다. 택시연합회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라 설립된 지역별 사업조합의 연합단체다. 택시연합회 관계자는 “(연합회에서)탄원서를 작성한 게 맞다”면서도 “강압적으로 서명을 받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어 “단위노조 행정력이 부족하다 보니 샘플을 만들어드린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상급단체에서는 기사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면 안 된다는 원칙만 강조하면서 현장과 괴리된 이야기를 한다”면서 “현장에서 기사들의 불만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사들의 불만에 대해, “택시기사들마다 운행하는 차량과 유류사용량이 다른데도 이들이 같은 사납금을 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일선 택시기사들의 불만이라고 했지만, 이는 사업주의 입장과 일치한다.

▲ 문제가 된 탄원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측이 작성하여 택시 단위사업장 노조에 배포했다. ⓒ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사용자단체가 노동조합 명의로 탄원서를 작성해 현장에 배포한 웃지 못 할 사건은 업체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운송비용 전가금지 시행 후 관련 지침이 잇따라 나오면서 이를 피해갈 방법이 바닥을 드러낸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여기에 더해 올해 10월부터 운송비용 전가금지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인구가 적은 중소도시나 군 지역 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지자체가 적극적인 자세로 단속에 나설 경우 운송사업 면허가 취소되는 업체도 생겨날 수 있다.

운송비용 전가금지와 관련된 지침들은 택시업계 노사와 국토부, 전문가가 참여한 ‘택시근로자 여건 개선을 위한 TF’ 논의를 거쳐 만들어졌다. 전택노련과 민주택시노조는 사업주들을 향해 TF 논의 결과를 존중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동시에 국토부 및 지자체의 강력한 단속과 행정지도를 요구하고 있다. ‘택시운수종사자의 복지 증진’이라는 법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안착할 수 있을지는 당분간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