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에서도 ‘깜빡깜빡’ 안전 지키Go! 보험료 아끼Go!
지붕에서도 ‘깜빡깜빡’ 안전 지키Go! 보험료 아끼Go!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11.2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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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타2피 효과에도 기관 몸 사리기에 불법튜닝 신세
[리포트] 사고 막는 택시 방향지시등

TAAS(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22만여 건, 사망자 수만 4,200명이 넘는다. 이중 택시 사고가 21,800여 건에 달한다. 택시 교통사고는 사업용자동차와 비사업용자동차를 통틀어서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장치가 2년 전 개발됐지만 규제의 벽을 넘지 못했다.

▲ (왼쪽)방향지시등 작동 전, (오른쪽)방향지시등 작동 후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한성상운(주) 차고지에는 비번차량 10여 대가 주차돼 있었다. 이 업체 상무로 재직 중인 김재성 씨는 2년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며 입을 열었다. 지난 2015년 2월 택시에 부착한 방향지시등에 관한 이야기였다.

보조방향지시등, 택시업계 고민 해결의 열쇠 될 ‘뻔’

김재성 상무의 고충은 교통사고였다. 택시업체의 경영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교통사고로 인한 비용이다. 사업용자동차의 경우 사고차량만이 아니라 해당 업체 전 차량에 대해 할증요율이 올라가 사업주는 이중삼중의 부담을 떠안게 된다. 택시업계에서 사고 처리비용을 운전기사에게 전가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교통사고로 인해 운전기사와 시민의 생명이 위협받는다.

그때 한 중소기업이 만든 장치가 김재성 상무의 눈에 들어왔다. 택시의 양 측면 지붕에 부착하는 보조방향지시등이었다. 이 장치를 달고 운전기사가 좌우측 방향지시등을 켜면 그에 맞춰 점멸된다. 승객 승하차를 위해 가로변에 정차할 때 ‘비상깜빡이’를 켤 때에도 같이 켜진다. 그는 한성상운이 보유한 80여 대의 택시에 보조방향지시등을 설치했다.

그 후 한성상운의 사고건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전년 같은 기간 31건의 교통사고가 일어났지만 보조방향지시등 부착 후 4분의 1 수준인 7건의 사고가 발생하는 데 그쳤다. 택시 운전기사들이 자주 당하는 승객 하차 도중 오토바이 추돌사고는 한 건도 없었다. 이전까지 승객이 차에서 내리기 위해 문을 열다가 오토바이에 받히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여기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어있다. 보조방향지시등은 주변 운전자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도로와 인도 사이 빈틈을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오토바이 운전자들의 시야에도 곧장 들어올 정도다. 승객이 무심코 문을 열더라도 뒤따르는 운전자들이 조심하게 된다. 주행 중 사고예방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보조방향지시등 부착은 노동조합에서도 반길 만한 일이었다. 김기철 한성상운노동조합 위원장은 “사고가 안 나서 줄어든 보험료만큼 근로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 한성상운의 보험료 할증요율은 가장 낮은 수준인 65%였다. 기본 할증요율(100%)보다도 적은 보험료를 낸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보조방향지시등 부착은 일본과 호주에서는 오래 전부터 보편화돼 있다.

택시업계 주목한 혁신아이템, 규제의 벽 앞에 좌절

사고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입증됐음에도 현재 한성상운에서 운행하는 택시에는 보조방향지시등이 하나도 달려있지 않다. 김재성 상무는 “구청에서 민원이 들어와 6개월 만에 보조방향지시등을 떼야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관할 기초지자체인 도봉구청으로 세 건의 민원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황당하게도 민원 내용은 ‘불법튜닝’이었다. 안전을 위해 한 일이 ‘불법부착물’을 단 채로 수개월 동안이나 영업을 한 셈이 됐다.

보조방향지시등이 불법부착물 신세가 된 이유는 해당 제품을 개발한 업체의 대표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제품을 개발한 이찬수 한국사무자동화(주) 대표는 긴 시간 동안 보조방향지시등의 장점을 설명했다. 그는 한성상운 외에도 부산의 한 택시업체에서도 보조방향지시등을 설치해 사고 감소 효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사용되던 전구형 제품 대신 유기발광다이오드(LED)를 활용해 특허를 출원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개발한 보조방향지시등은 규제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가 수차례 국토부에 관련한 내용을 질의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안전기준에 대한 시험을 실시하였으나, 앞면과 뒷면으로 빛이 집중되어 안전기준에서 요구하는 빛의 분산과 광도 기준을 만족하지 못한다는 시험결과를 통보받았다”는 것이었다. 이찬수 대표는 “기준에 맞게 제품을 개발했다”면서 “한국에서는 (보조방향지시등 보급이)처음이기 때문에 담당 공무원들이 총대를 안 메려고 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결국 그는 보조방향지시등의 국내 출시를 포기하고, 시장이 활성화 된 영국, 일본, 호주 등으로 진출을 꾀하고 있다.

보조방향지시등은 택시업계로부터 혁신적 제품으로 주목받고도 당국의 소극적 자세와 규제로 인해 상용화에 실패하고 말았다. 반 년 동안 보조방향지시등을 사용했던 택시기사들은 누구보다 이를 안타까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