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 위한 공동선언? 우리는 결과를 만든다!
보여주기 위한 공동선언? 우리는 결과를 만든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7.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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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정상화 TFT 공동운영하는 경남은행 노사의 새로운 실험

우리 사회 전체가 IMF라는 높은 파고를 넘은 이후 고용 문제가 최우선 현안이 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아직도 임금에 대한 요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바로 생존권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최고의 현안으로 부각되는 것.

이런 상황이 오래 계속되면서 일부 노사가 무분규 선언을 이끌어냈다는 소식도 어렵잖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무분규 선언, 노사 평화 선언 등은 노사간의 합리적 선택이라기보다는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 어느 일방이 너무 강해졌거나, 비공식적인 ‘뒷거래’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무분규 선언을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 않은 편이다.



무엇이 공동선언을 가능케 했나

그런데 최근 경남은행 노사(은행장 정경득, 노조위원장 하외태)가 ‘협력적 노사문화 정착을 위한 노사공동선언문’을 내놨다. 이 선언문은 ▲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공동 노력 ▲ 복지증진 및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 ▲ 양보와 배려를 통한 신바람 나는 일터 만들기 ▲ 2010년까지 무분규 선언 ▲ 임단협 은행측에 일괄 위임 ▲ 지속적인 사회공헌활동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이 노사의 공동선언을 이끌어냈을까. 고용보장?
“저희 전체 직원이 IMF 이전 2500명에서 지금은 1800명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오히려 인력이 모자라죠. 따라서 고용 문제는 없습니다. 최근에는 점포수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일자리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노동조합 홍응일 정책기획국장은 노사 공동선언은 고용보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그렇다면 경영상의 위기?
“다른 지방은행들이 10~15% 성장할 때 우리 경남은행은 30%의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지금 사상 최고의 실적을 나타내고 있죠.”
노동조합 김종석 부위원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경남은행은 총자산과 총수신이 2004년말 12조5천억원, 10조2천억원에서 2005년말 15조4천억원, 12조5천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 9월말 현재 17조8천억원, 13조5천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당기순이익도 2004년 1092억원에서 2005년 1327억원, 2006년에는 1500억원 규모로 튼실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믿음’으로 근로조건 개선 나섰다

하외태 위원장은 공동선언의 배경을 ‘신뢰’라고 설명한다.
“솔직히 현 정경득 행장이 취임했을 때 저희도 경계심을 가지고 견제했습니다. 그런데 취임 이후 2년6개월 동안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성과를 내는 등 일관성 있는 경영 정책을 보여줬습니다”
하 위원장은 “사회와 금융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데 노동운동이 투쟁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보여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경남은행 노사는 임단협을 둘러싼 줄다리기 대신 실제로 구성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다. 그리고 최우선 과제로 준비한 것이 바로 ‘근로시간 정상화’이다.

대부분의 은행들이 마찬가지겠지만 IMF 시기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길어진 근로시간으로 인한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4~5시면 문을 닫는 은행 업무의 노동강도는 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야간 보안장치 작동시간을 토대로 작성된 경남은행의 평균 퇴근 시간은 자못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2006년 9월 22시 40분, 10월 22시 25분, 11월 22시 21분으로 나타났다. 문을 내린 은행 안에는 밤을 밝히는 은행 직원들이 있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경남은행 노사는 ‘근로시간 정상화 TFT’를 구성했다. TFT는 열띤 토론을 거쳐 수십 가지의 업무 프로세스 개선과제를 선정했고 이를 토대로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는 방법을 마련 중이다. 이 중 일부는 이미 시행되고 있고 더디기는 하지만 퇴근시간이 빨라지는 효과를 나타내는 중이다.

하 위원장은 “심지어 저녁 9시 이후에는 시스템을 차단하는 방안에 대해서까지 진지하게 검토할 정도로 노사 모두가 적극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업무 프로세스 개선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1월부터는 확연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더 바빠진 노동조합 집행부

근로시간 정상화를 포함한 직원들의 근무조건 개선을 위한 노력에는 노사가 따로 없었다. 정경득 행장은 자신이 먼저 나서서 “매달 하나씩의 복지 문제를 주제로 선정해 노사가 함께 개선 방향을 만들어내자”고 제안했다.

경남은행 관계자는 “공동선언이 단순히 선언적인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진짜 상호신뢰와 존중,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노사관계 구축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이나 복지개선 등의 추진 방향이 생산성의 저하나 비용의 증가로 인식될 경우 노사간 갈등이 다시 불거지지 않을까. 이에 대해 하외태 위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꼭 필요한 업무를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하게 시간만 낭비하는 업무를 줄이자는 겁니다. 그것은 직원들의 피로도를 낮추고 더욱 생산적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 직원들 뿐만 아니라 고객들에게도 더 좋은 서비스로 다가갈 수 있게 합니다.”

요즘 경남은행 내부에서는 노동조합을 ‘연구소’라고 부른다. 홍응일 정책기획국장은 “임금을 둘러싼 비생산적 다툼이 아니라 업무 개선 과제나 조합원들과의 소통, 또 복지 증진을 위한 방안들을 끊임 없이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 업무가 훨씬 많이 늘었다”고 엄살(?)을 부렸다.

하지만 조합 집행부들은 “늘어난 업무만큼이나 보람도 늘었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최선의 결과’라는 목표를 향해 ‘새로운 과정’을 실험 중인 경남은행 노사의 행보는 2007년 들어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이들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노사가 서로를 ‘믿을만 하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결과에 대한 믿음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