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의 눈물과 택시협동조합
택시기사의 눈물과 택시협동조합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12.0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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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속에서도 꽃은 피어나는가
[커버스토리]택시협동조합 이대로 괜찮나

2015년 7월 서울 마포구 옛 서기운수 자리에 한국택시협동조합이 둥지를 틀었다. 택시운송업계에서는 처음으로 협동조합 설립이 시도된 사례였다. 한국택시협동조합은 ‘사납금 없는 택시’, ‘노란 택시’ 등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택시협동조합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비판이 나온다. “협동조합의 탈을 쓴 지입택시”라는 말도 들린다. 많은 택시협동조합의 내부 역시 조용하지 않다. 택시협동조합 2년, 무엇이 문제일까.

택시협동조합, 택시운송업의 이단아

지난 10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는 고함소리가 울렸다. 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이날 고성은 국회 본관이 아닌 의원회관의 소회의실에서 나왔다. 예정된 일정은 노동자협동조합들이 주최한 토론회였다. 국내 노동자협동조합의 사례를 발표하고 시사점을 찾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청중석은 빈틈없이 꽉 들어차 있었다. 노동자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생산조직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듯했다. 여느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행사를 주최한 협동조합의 대표자들이 인사말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박계동 한국택시협동조합 이사장도 포함돼 있었다.

박계동 이사장이 입을 떼자 기습 피켓시위가 벌어졌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전택노련) 소속 조합원 수십 명이 “토론회를 중단하라”, “박계동은 내려와라”며 언성을 높였다. 이들은 자신들을 “택시협동조합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전택노련 조합원들과 주최 측의 승강이가 벌어졌다. 사회자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전택노련 조합원들은 쉽게 분을 삭이지 못하는 듯 보였다. 이 날은 한국택시협동조합이 출범한 지 2년 3개월 만에 노조와의 충돌이 처음으로 실현된 날로 기록됐다.

택시운송업의 이단아가 등장한 때는 2015년이었다. 정치에서 사실상 은퇴한 박계동 전 국회 사무총장은 2013년 협동조합운동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가 관심을 보인 곳은 택시운송업이었다. 1년여 동안 택시운전을 한 경험은 택시협동조합 설립의 시발점이 됐다. 박계동 이사장은 ‘사납금제는 사업주 선이익 보장제’라며 ‘사납금 없는 택시’를 표방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국택시협동조합 출범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기존 택시와는 다른 차량 색상을 허용해 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노란색의 협동조합 택시는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첫 경적을 울렸다.

이전까지 택시운송업은 개인택시와 법인 소속 택시, 즉 일반택시(회사택시)로 양분돼 있었다. 택시협동조합 역시 일반택시의 한 유형이지만, 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1인 1표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점에서 기존 회사택시와 다르다. 회사택시의 경우 극소수의 오너 일가가 소유하고, 직접 경영하는 게 일반적이다.

회사택시의 노동자들은 심각한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대중교통의 확대와 마이카 시대는 택시 승객 감소로 이어졌고 운송수입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회사에 내는 돈인 사납금은 꾸준히 올랐다. 사납금을 채우지 못하면 택시기사가 자비로 충당해야 한다. 운송수입 감소와 사납금 인상은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을 초래한 원인이다.

회사택시 운전자들에게 개인택시는 훌륭한 도피처다. 택시업계에 발을 들인 이상 하나의 목표이기도 하다. 개인택시 사업면허를 받는 순간 사납금의 압박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일한 만큼 가져가고, 원하는 만큼 쉴 수 있다. 개인택시 면허 신규발급이 지방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는 공식처럼 통한 적도 있었다.

▲ 전국에서 모여든 전택노련 소속 조합원들이 노동자협동조합들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택시기사들이 협동조합 문을 두드린 이유

개인택시 사업면허 취득을 갈망하던 회사택시 노동자들에게 훌륭한 대체제가 나타났다. 업계에서 ‘프리미엄’ 또는 ‘번호판 값’으로 불리는 개인택시 사업면허의 시세는 수요-공급의 법칙을 철저히 따른다. 서울의 경우 개인택시 면허가 더 이상 발급되지 않는 가운데 번호판 값이 9천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을 호가한다. 반면 한국택시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기 위한 출자금은 2,500만 원에 불과하다. 소득이 매우 낮은 택시기사들에게 큰돈이지만, 개인택시 번호판 값에 비하면 매우 저렴하다.

‘사납금 없는 택시’는 회사택시 노동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나 다름없었다. 사납금 압박에 시달리던 회사택시 노동자들은 한국택시협동조합으로 모여들었다. 2,500만 원을 출자하면 ‘내 차’가 생기는 셈이었다. 한국택시협동조합의 노동자 조합원은 180여 명으로 늘었고, 조합원이 되고자 기다리는 사람들은 400명을 넘겼다.

택시기사들의 관심에 힘입어 택시협동조합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한국택시협동조합 계열의 택시협동조합이 포항, 경주, 광주, 대구에도 설립됐다. 11월 15일에는 경북 구미에서 한국택시구미협동조합의 출범식이 열렸다. 한국택시협동조합 계열이 아닌 다른 택시협동조합도 곳곳에 생겨났다. 전국적으로 40여 곳의 택시협동조합이 설립된 것으로 파악된다. 공유와 민주적 의사결정이라는 협동조합의 기본 가치가 희망이 없던 택시운송업에 숨을 불어넣을 거라는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개인택시를 갈망하던 택시기시들에게 ‘내 회사’라는 주인의식까지 바라기는 무리였던 듯하다. 조합에 애정을 갖거나 능동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조합원들은 많지 않았다. 많은 경우 2,500만 원을 주고 산 ‘내 차’라는 인식이 강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구지역 한 택시협동조합의 조합원 A씨는 “일반 택시회사는 사납금 입금하라고 2시부터 10분 간격으로 전화가 온다”면서 “개인택시처럼 규제를 안 받는 게 (택시협동조합의)장점이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협동조합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시에서 공무원이 설명해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노동자들의 이기심 혹은 무관심을 탓할 수만은 없다. 오랫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 온 그들에게 ‘사납금이 없다’는 말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메시지는 없었을 것이다. A씨는 회사택시에서 일할 때 한 달 100만 원도 못 벌다가 지금의 협동조합으로 옮긴 후 230만 원대로 소득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한 푼이 아쉬운 사람들에게 택시협동조합이 갖는 의미는 협동조합의 가치와는 사뭇 달랐다.

한국택시협동조합의 지난 2년간 성과를 보면 그 의미를 조금 더 들여다 볼 수 있다. 한국택시협동조합은 2016년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택시 평균 가동률을 82%로, 조합원 월 평균소득을 248만 8,565원으로 자체 분석했다. 옛 서기운수와 비교할 때 가동률은 34%p, 종사자의 월 평균소득은 135만 원 늘어난 수준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택시운송업의 만성적인 저임금을 해소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셈이 된다.

마찬가지로 직무만족도 또한 한국택시협동조합 조합원들이 회사택시 노동자들보다 더 높았다. 2016년 서울노동권익센터 조사에 따르면, 한국택시협동조합 조합원들의 직무만족도는 5점 만점에 3.2점이었다. 회사택시 2교대 근무자(2.4점)와 1차제 근무자(2.2점)보다 각각 0.8점, 1점 높은 수치다. 타 회사 또는 직종으로의 이직을 고민하는 비율도 회사택시 2교대 근무자(74.8%)나 1차제 근무자(81.3%)보다 절반이나 낮은 40.8%였다. 이 또한 낮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회사택시보다는 사정이 훨씬 낫다.

‘월 100만 원’ 많은 수입, 가능한가… 허와 실

한국택시협동조합은 택시운송업 내 노동자협동조합의 상징적인 곳이다. 그럼에도 한국택시협동조합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제기되는 비판과 의혹의 핵심은 한국택시협동조합의 성과가 알려진 바와 달리 상당 부분 부풀려진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택시협동조합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 중에는 과거 박계동 이사장과 한솥밥을 먹던 ‘내부자들’도 있다.

이들이 제기하는 첫 번째 의혹은 앞서 언급된 월 평균 250만 원의 급여가 과장됐다는 점이다. 적자에 허덕이면서도 무리하게 특별수당을 지급해 급여를 높게 지급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올해 2월 열린 정기총회의 자료를 보면 2015년 법인세 납부 전 손실이 1억 248만 6,983원이었다. 지난해에는 다소 개선됐으나 1,676만 7,028원의 손실을 입었다.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르면, 손실금을 보전하고 법정적립금 10%와 임의적립금 등을 적립한 후 조합원들에게 잉여금을 배당할 수 있다. 남는 돈이 있어야 배당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사납금 없는 택시’라는 점에 대해서도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박계동 이사장은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납금제는 사업주 선이익 보장제”라며 한국택시협동조합에는 사납금이 없다고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택시협동조합에도 사납금은 있다. 택시기사 조합원이 벌어들인 운송수입 전액을 조합에 입금하면 여기에서 사납금과 운송비용을 제하고, 기본급과 각종 수당 및 배당을 지급한다. 만약 사납금을 채우지 못하면 급여에서 차감된다. 이름만 ‘납입기준금’일 뿐 사실상 사납금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일종의 ‘변형된 사납금제’라는 주장의 근거다. 2016년 정기총회 자료집에는 아예 “일별 사납금인 27만 2,000원”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총회를 거치지 않고 출자금을 임의 배당한 사실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은 박계동 이사장과 김 모 전 본부장에게 협동조합기본법 위반 혐의로 각각 벌금 200만 원과 100만 원을 선고했다. 서울서부지법은 “피고인들은 탈퇴 조합원에 대한 출자금을 환급해주기 위해서는 사전에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받아야 함에도 이를 거치지 아니한 채 총 7명의 탈퇴 조합원들에게 모두 1억 7,500만 원의 출자금을 환급해 주었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한국택시협동조합 측은 적극 반박했다. 이경식 한국협동조합택시 본부장은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배당을 지급한 데 대해, “전체 매출액 대비 인건비가 67%로 배당금은 인건비에 포함됐으며, 손실금은 배당금을 지급한 후에 발생한 것”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결코 무리한 배당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는 사실상의 사납금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은 납입기준금을 항상 못 맞추는데, 열심히 일해서 다른 사람 월급을 맞춰야 하느냐는 형평성 문제가 있다”면서 “기준금은 사주(조합원)간의 약속이다”라고 밝혔다. 출자금 임의 반환의 경우 “지금은 총회를 거친 후 지급토록 조합원들에게 설명하고 있지만, 재산이 없는 택시기사들의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택시운송업의 특성을 고려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는 견해도 있다. 택시기사들의 소득이 매우 낮기 때문에 배당이나 출자금에 관한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많은 조합원들이 2천만 원에서 많게는 6천만 원에 달하는 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에 의존하고 있다. 그마저도 신용등급이 낮아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를 통해서만 가능한 실정이다. 박강태 일하는 사람들의 협동조합연합회장은 “개인의 사정을 고려한 것이 규정 위반이기는 하지만 악의적이지는 않았다”면서 “법 적용을 보다 노동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야 한다”고 전했다.

▲ 동대구역 택시정류장에서 한 승객이 택시에 탑승하고 있다. 대구는 택시의 만성적 과잉공급으로 전국 주요 대도시 중 택시운송업 여건이 가장 열악하다.

이전투구의 장으로 전락한 택시협동조합,
이대로 괜찮을까

다른 지역의 택시협동조합들은 어떨까. 현재 택시협동조합이 설립된 것으로 알려진 지역은 부산, 대구, 광주, 경기 화성, 전북 전주, 경북 포항, 경주, 구미 등이다. 이중에서도 대구광역시는 택시협동조합의 확산세가 독보적인 지역이다. 40여 곳의 택시협동조합 중 대구에만 10곳이 포진해 있다. 그중 실질적으로 택시를 운행하는 곳은 7개 협동조합이다. 나머지 세 곳은 휴면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는 서울을 비롯한 주요 대도시 중 택시운송업의 여건이 가장 열악한 지역이다. 2015년 기준 서울지역 택시가 한 시간에 1만 6,289원을 번 반면, 대구지역 택시는 한 시간에 1만 2,697원 밖에 벌지 못했다. 하루 10시간 동안 운행한다고 가정하면 대구지역 택시기사들이 서울지역 택시기사들보다 3만 5,920원 적게 벌어들이는 셈이 된다. 자연히 택시기사들이 가져가는 급여도 매우 적다. 그만큼 택시기사 숫자도 줄어 전국 시·도 중 유일하게 사람보다 차량이 더 많은 지역이 대구다.

이 때문에 택시협동조합이 회사택시 노동자들에게 더 각광받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대구지역의 일부 택시협동조합은 택시운송업에 적용되는 기본적인 법률조차 지키지 않고 있었다. B택시협동조합은 운송수입금 전액을 기사들에게 입금토록 하는 대신, 한 달에 한 번씩 결산일을 정해 사납금을 받았다. 이곳 택시기사들은 차량을 한 대씩 받아 한 달 동안 알아서 영업하고 사납금만 채워 넣는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이는 처벌 대상이다. 대구지역 택시협동조합 세 곳은 회사가 부담해야 할 운송비용을 택시기사들에게 떠넘겼다가 대구시로부터 행정처분을 받기도 했다.

대구지역에서 택시협동조합이 이전투구의 장으로 전락한 사례에 대해서는 이외에도 수없이 들을 수 있었다. C택시협동조합은 서로 다른 회사로부터 사업면허를 헐값에 사들인 후 조합원들에게 대당 수백 만 원 비싼 출자금을 받아 차익을 남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D택시협동조합은 개인택시 사업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회사를 인수하고 개인택시 사업면허가 없는 조합원들을 모집해, 사실상 지입제로 운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기웅 전택노련 대구지역본부 조직정책국장은 “부실 업체들이 협동조합의 이름으로 탈바꿈하면서 조합원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면서 “택시운송업에서만큼은 협동조합 설립이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국택시협동조합 측은 물론 노동자협동조합 운영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은 이들에 대해 ‘유사·다단계 협동조합’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택시협동조합의 경우 숱한 논란이 있었지만 ‘초기의 시행착오’ 또는 ‘운영상의 미숙함’을 겪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한 이들의 생각은 여전히 택시운송업에서 협동조합의 역할은 유효하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