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 상아탑을 꿈꾸며 기술로 승부한다
품질 상아탑을 꿈꾸며 기술로 승부한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07.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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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공으로 시작해 대표이사가 되기까지

손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 길고 고른 손을 가진 사람은 손재주가 좋다고 했던가. 옛 어른들 말씀처럼 여기 손이 길고 고른 기술공이 있다. 그러나 그는 기술공으로 만족하지 않고 한 기업의 대표 자리까지 뛰어 올랐다. 정밀 치공구 제작, 정밀 금형제작, 정밀 기계부품, 자동화 설비 분야의 명장 대도 ENG 정영계 대표가 바로 그 사람이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운 좋아 실패해 본 적 없다? 운이 아니라 노력의 결과

정 명장은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조선대 부속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도시로 유학을 갈만큼 집안이 유복했다. 그러나 두해 가뭄이 들고 집안의 대들보였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세는 기울었고 어린 동생들을 책임져야했다. 계속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정영계 명장은 17살에 학교를 나와 근로청소년이 됐다.
그렇게 그가 만나 세상은 혹독했다. 그에게 국가보조 무료교육을 하는 인천중앙직업훈련원은 희망이었다. 기술은 그가 세상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로 보였다. 정영계 명장의 공업인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모자란 대로 늦은 21살에 고등학교를 들어갔고, 1999년에는 대학을 들어가 2003년에 졸업했다. 주경야독으로 일궈낸 성과였다.

 

이 열정을 공유할 수 있다면

1988년 다니던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지자 정영계 명장은 자신이 직접 회사를 인수하여 경영에 뛰어들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아니었다. 그와 반대로 그는 이상향을 꿈꾼다. 함께 일하고 평등하게 분배하는 그러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세상의 배려로 기술을 연마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직원들을 교육한다. 그가 대학을 다닌 것도 기술을 배워 직원들에게 전수하기 위한 욕심이 앞섰기에 가능했다. 정영계 명장은 직원들에게 “원한다면 내가 기꺼이 지원해 주겠네”라고 늘 말한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기술공 한 명을 키워내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공대를 나와도 기본부터 가르치는 노력이 필요하죠. 실습도 많이 못 해보고, 가장 기본적인 마이크로메타기를 사용 못하는 공대생도 있습니다. 뭉텅 잘린 나무 같아요. 진짜 문제는 중소기업에서 기초부터 배우려면 그 수준의 임금을 생각해야 하는데 대학 나와서 생각한 것이랑 많이 다르니까 못 버티고 나가버리면 가슴이 쏴합니다. 또 기술을 배워서는 더 많은 임금을 주는 회사로 미련 없이 가버리면 섭섭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죠. 그래도 역시 가르치는 보람은 사람만 한 것이 없다고, 역시 기술은 사람 손에서 완성됩니다.”
정영계 명장은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하여 숙련된 기술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의 현실에 대하여 가장 염려하지만, 곧 그 희소가치를 사람들이 알게 되면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 인재들이 모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시점이 지금이라고 한다.



믿을 것은 기술뿐, 욕심은 없다

일본에서 도면 한 장이 넘어왔다. 일본의 많은 기능공들이 도전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도면이었다. 정영계 명장은 물러설 수 없었다. 기술자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사람의 손으로 못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때부터 정 명장의 잠 못 이룬 날들이 시작됐다. 그러나 아무리 만들어도 도면의 수치와 차이가 났다. 1/100 오차를 책임지는 품질 최우선주의의 그의 신념이 아니더라도 정밀부품은 3/100 오차를 넘는 순간 이미 부품의 생명력을 잃는다. 끼니를 거르며 미세한 오차의 이유를 고민했고, 꿈속에서조차 끊임없이 도면이 떠돌아 다니며 부품을 가공하고 있었다. 결코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 본적도 없고, 이제 와서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이 그의 인생이다.
고뇌에 대한 보상이랄까. 드디어 그의 고민은 결실을 맺었다. 절사기의 와이어가 가공 중 열에 의하여 아주 미세한 차이로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늘어난 와이어의 길이만큼 부품은 배불뚝이 형상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는 결국 모두가 포기한 그 도면으로 부품을 만들었고, 도면을 의뢰한 일본 회사의 계약을 따냈다.
정영계 명장의 기술 노하우는 간단하다. 될 때까지 도면과 똑같이 만들면 되는 것이다. 단순명쾌한 논리는 사업을 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가격을 흥정하려는 거래처는 부품을 공짜로 만들어 주고, 마음에 들면 거래를 하는 것이고 아니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 납품 날짜를 어긴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약속한 날짜, 약속한 품질이 자고 일어나면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는 이 시대를 헤쳐나가는 비결이다.
그에게 500만 엔 수주라는 일본 측의 제의가 있었지만 욕심을 챙기기 전에 품질을 지켜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먼저였고, 지금도 그의 회사는 품질에 대한 상아탑을 세우고 있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조금만 더 가슴을 열면 함께 갈 수 있다

“대기업에선 대도 설비 보면 일 맡기지 않습니다. 기계가 아무리 좋아도 기술은 사람의 손에서 완성되는 것을 몰라요. 사실 일본 거래처 사람들도 회사에 왔다가 설비 보고 어떻게 그런 부품을 생산할 수 있었냐고 혀를 내두르죠.”
설비가 미흡하다는 정영계 명장의 솔직한 고백은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더욱 빛나게 한다. 일본으로 전면 수출만을 하고 있는 것이 외화를 벌어들이고 한국의 기술력을 인정받는 것이라지만, 그 기술로 만든 부품을 우리나라에서 소화하지 않는다는 것이 단지 편견과 관습 때문이라니 참 슬픈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정영계 명장은 공업인이면서 공과대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금속공예과에서 강의를 한다. 아주 다른 분야는 아니지만 그 이유가 공과대에서 정영계 명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반증이 아닐까. 명장이라는 칭호가 이 사회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정영계 명장은 처음 기술교육원을 나왔을 때부터 느껴야만 했던 학벌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이 조금 더 가슴을 열고 함께 한다면 기술 분야의 발전은 물론이고 한국사회의 경제 발전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정영계 명장은 “아는 자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로 학벌은 성실함을 이기지 못 한다고 강조했다.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77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 건설기계 일로 가서 일했죠. 그렇게 번 돈으로 집 한 채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여전히 집 한 채죠. 최근에 부동산 문제 같은 걸로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 오랜 세월동안 여전히 집 한 채네’ 좀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자기가 할 마음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죠. 지금의 제가 그렇잖아요. 마음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실현 가능한 계획을 세우면 된다”는 정영계 명장의 말은 매우 쉬운 대안이다. 그러나 한 가지 계획을 실행하여 완성하면 다음 계획은 좀더 높은 곳을 바라보아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한 단계씩 밟아나가다 보면 높은 곳에 도달한다는 만고의 진리인 것이다.




 

 

대·한·민·국 ·명·장·의 ·비·밀·노·트
▷신뢰는 감추는 것이 아니다
일본 기업에서 품질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2/100 오차는 80~90% 맞추고, 1/100 오차는 50% 맞출 수 있다.”
이러한 정영계 명장의 답변은 100% 품질을 내세우는 다른 기업들을 제치고, 그 일본회사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거래를 할 수 있는 신뢰를 주었다.

▷배우려면 자존심을 버려라
기술교육원을 나와서 고등학교를 나오지 못했다고 차별을 받았고, 늦게 고교를 졸업하고는 회사 선배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도 있었기에 기술을 배우기가 쉽지 않았다. 나이 많은 후배는 가르치기가 껄끄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어깨 뒤로 배우고, 자존심을 버리고 나이 어린 선배에게 배웠다. 지청구를 들어도 자신이 모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회사주인이다” 생각하라
정영계 명장은 직원들 앞에서 A4용지 한 통을 모두 쏟아서 밟은 적이 있다. 직원들은 깨끗한 종이를 밟는 행동에 놀랐다. 그러나 종이보다 더 비싼 볼트나 너트, 사용한 장갑, 작업복 등을 생각 없이 버리는 직원들의 행동을 꼬집으며 “회사비품 아껴서 사장 주머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라는 정영계 명장의 일침으로 직원들은 나쁜 습관 하나를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