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한 것은 없다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12.08 13:26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칼럼] 김민경의 36.5°

“특혜라뇨, 진짜 힘이 쭉 빠집니다.”

지난달 취재 과정에서 만난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노동이사들은 한숨부터 내뱉었다. 한 달 앞서 서울시가 마련한 노동이사제 운영을 위한 개선·발전안이 특혜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노동이사들은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일부 기자들이 미리 ‘특혜’라는 결론을 내 놓고 악의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실은 노동이사가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해 아등바등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이사는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람을 이사로 두는 제도다. 서울시가 국내 최초로 관련 조례를 만들어 시 산하 투자·출연 기관에 노동이사제를 시행하고 있다. 제도가 처음 생기다 보니 서울시는 물론 해당 기관, 노동이사들까지도 우왕좌왕한다. 서울시 노동이사가 전임으로 활동하는 이사가 아니라 ‘비상임’이사인 탓에 노동이사로서의 제 역할에 전념할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현장에서 잇따라 확인되고 있다.

서울시가 마련한 지침에는 노동이사 역할을 고민하기 위한 교육, 경영정보를 요구할 권한, 노동이사 활동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 조치 등이 담겨있다. 이는 노동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해 (노동자들의 의견 전달은 차치하고서라도) 이사로서 활동하기 위해 전제돼야할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다.

특혜 논란은 껍질이다. 본질은 노동이사 자체에 대한 불신이다. 이는 노동이사의 역할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다. 더 정확히는 노동이사의 역할에 대한 논의 자체가 부족했다.

노동이사는 ‘정보 공유’와 ‘노동자 참여’에 방점을 찍는다. 견제를 통한 투명한 경영, 대립에서 상생과 협력으로 노사관계의 전환 등의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경영권 침해는 한국 사회에서 논의된 노동이사제의 노동이사 규모를 따져보면 침소봉대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는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이해당사자이면서도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선’이라고 강요받아왔다. 그러는 동안 공공기관에는 낙하산 인사가 반복적으로 내려왔고, 주인의식이 없는 기관장들의 공익을 침해하는 독선은 끊이지 않았다.

당연한 것은 없다. 여태 당연했던 것들 중에는 당연해선 안 되는 것들이 많다. 진정한 노동존중 사회의 출발점은 어쩌면 그간 한국 사회에서 당연했던 것들을 뒤집어 보는 데서 시작한다. 노동이사제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