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 있는 에너지 정책 펴야”
“정부,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 있는 에너지 정책 펴야”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12.0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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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노조, 원전 안전 위해 적극적 역할 할 것
[인터뷰]김병기 한국수력원자력노조 위원장

지난 10월 20일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화위)가 활동을 마무리했다. 3개월 간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시민대표단의 최종 결정은 ‘건설 재개’(59.5%)였다. ‘건설 중단’ 응답은 40.5%에 머물렀다. 이로써 일시 중단됐던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가 결정됐다.

탈원전 정책에 대해 53.2%가 지속해야한다고 답한 내용도 크게 주목을 받았다. 시민대표단이 공정률 30%에 달한 신고리 5, 6호기는 짓되, 탈원전 추진이라는 절묘한 결론을 냈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한국수력원자력노동조합(이하 한수원노조)은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공론화위 운영에 일관되게 문제를 제기했다. 공론화위 활동 기간 동안 한수원노조의 고민은 에너지정책연대 탈퇴와, 상급단체를 정하는 조합원 총투표로 이어졌다. 지난 9일 김병기 한수원노조 위원장을 만나, 한수원 현장 분위기와 향후 노조 활동 방향을 물었다.

공론화위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와 탈원전 정책 추진을 정부에 권고했다. 한수원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많이 불안했다. 공론화위 최종 결정이 건설 중단으로 나오면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진다. 현재 인력들의 고용안정을 보장한다지만, 실질적으로 쉽지 않다.

동시에 현장 노동자들은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 안 된다는 확고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원전 기술이나 안전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론화위의 건설 재개 결정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공론화위 결정이 알려진 직후, 정부가 탈원전 로드맵을 발표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 현장의 분위기다. 최소한 신한울 3, 4호기나 청진 원전까지는 계획대로 진행해야한다. 이는 전 정부가 7차 전력수급계획에서 결정했던 내용이다.

정부가 집을 짓겠다고 해서 땅도 사고 자재도 구입해뒀는데, 이제 와서(8차 전력수급계획에서) 빼겠다고 하면 그 비용은 누가 책임을 진단 말인가.

한수원노조는 ‘공론화’ 과정이 시작되는 것 자체에 문제제기를 해 왔다.

공론화위는 운영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공론화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다. 법에 의해 승인받고 진행된 공사를 느닷없이 공론화를 통해 결정한다고 중단시켰다.

공론화위 운영 자체가 법적인 결정을 위반한 것이며, 불필요했다는 지적이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에 대한 공론화를 안 했으면 공사는 3개월 미뤄지지 않았다. 이로 인한 손실이 1,300억 원이다. 공론화위 운영에도 46억 원이 들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공론화 과정에서도 건설해야한다는 의견이 19%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만약 정말 공정하게 공론화를 거쳤다면 이 차이는 더 컸을 것이다.

공론화 과정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보는 이유는?

공론화위 활동기간 동안 한수원을 비롯한 원전계통의 모든 홍보를 중단시켰다. 반면 청와대와 산업부가 원전의 부정적인 측면을 알리기 위해 만든 ‘에너지전환정보센터’는 운영됐다.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나중에 공론화위원회가 나서 잠시 폐쇄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탈원전이라는 결론을 내놓고 공론화를 추진했다. 어떻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가? 신고리 5, 6호기 건설 외의 원전 정책 자체에 대해 질문을 한 것도 월권이다.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일반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으며 논의에 주체적으로 참여한 것에 대해 의미 있었다는 평가가 중론인데?

한국은 대의민주주의, 의회민주주의 국가이다. 숙의민주주의는 좀 맞지 않다고 본다. 공론화라는 명분으로,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포퓰리즘 정책을 펼 것이다. 한 3개월 정도 공론화 과정을 거치며 숙의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면피용이 될 수 있다.

에너지 정책은 사상과 이념, 정파를 넘어서 정부가 바뀌더라도 거의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에너지 믹스 즉, 에너지 전체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포괄적인 에너지 분야에 대한 논의를 한다면 한수원노조는 언제든지 참여하겠다.

전력 수급은 국가 운영에서 아주 중요하다. 정부는 전력수급기본계획과 국가에너지기본계획 등을 주기적으로 발표하고, 많은 전문가 자문단도 두고 있다. 현재의 에너지 믹스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나?

석탄, 신재생에너지, LNG, 원전 등 각 에너지 부문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노동자, 지역주민, 학계, 국회까지 총 망라해서 더 큰 범위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간 정부들은 원전 확대든, 축소든 일방적으로 에너지 정책을 정해온 경향이 있다. 에너지 정책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종합적으로 논의해야한다.

원전을 대체할 만한 에너지원이 상용화되어도 탈원전이라는 방향성 자체가 옳지 않다고 보는가?

무조건 다 원전으로 하자는 건 아니다. 신재생에너지도 같이 가야 한다. 정말 원전보다 청정하고 안전한 에너지가 있다면 도입해야 한다. 이때 경제성도 고려해야 한다.

먼저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향상하고 사용을 높여 보라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의 단가가 충분히 낮아졌을 때, 원전을 줄여도 문제없다. 원전을 없애면 신재생이 발전할 듯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다.

미세먼지, 온실가스 때문에 석탄은 줄여야하는 상황에서, LNG 가격이 폭등했다고 가정해보자. 환경 여건 때문에 신재생에너지가 목표했던 비중만큼 확보가 안 되는데, 전기는 부족하다. 원전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역으로 묻겠다.

여전히 원전의 안전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수원에서 36년째 일하고 있다. 누구보다 상황을 잘 아는 이들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원전시설과 가장 가까운 관사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는 한수원 노동자들은 답답하다. 원전은 충분히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

원전이 정말 위험하다면, 자기 자식이 원전에서 일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녀가 한수원에 입사하면 목에 힘을 주고 자랑스러워한다.

안전은 공학적 안전과 사회적 안전으로 나뉜다. 사람이 만든 것이 100% 완벽할 수는 없다. 과학적으로 다양한 위험성을 고려해 설비를 만들고 최대한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 바로 공학적 안전이다.

반면 사회적 안전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안전이다. 사람들마다 그 기준이 달라 안전성을 수용하는데 온도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재난 영화를 보며 불안해한다. 잘 알지 못해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이다. 그래서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동안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원전에 대한 정보와 결정이 비공개이기 때문에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다. 앞으로 노조에 의심이 가는 부분을 묻고 정보를 요청해 달라. 노조의 역할은 종사자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회사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은폐하고 있다면 내부고발도 가능하다. 한수원 입장에 얽매이지 않고 투명한 정보공개를 위해 노조가 최대한 협조하고 알려 나가겠다.

작년 11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기치로 내걸고 에너지정책연대에서 의장을 맡았다. 지난 9월 말 공식 탈퇴했는데, 그 이유는?

장기적으로 제대로 된 에너지 정책을 에너지 분야 종사자들이 논의하자는 것이 에너지정책연대를 만든 이유였다. 그런데 새 정부의 탈원전 기조 아래 에너지정책연대 일부 구성원들이 탈원전 선언을 하지 않으면 연대체가 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처럼 압박을 해 왔다. 정당, 시민단체 눈치를 살피며 5,6호기 공론화 이전에도 원전 백지화까지 이야기했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난 10월 16일과 17일 한수원노조의 상급단체를 정하는 조합원 총투표가 진행됐다. 노조 설립이후 5번째 상급단체 논의였지만 무산됐다. 성급하게 추진했다는 의견이 많은데?

실제로 성급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론화위 결과가 오차 범위 내로 나올 것이라는 분석을 했다. 실제로 결과가 그렇게 나왔으면 노조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상급단체의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싶었다.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판단했다. 조합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절실한 심정으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두 선택지를 올렸다. 그런데 한국노총 26.9%, 민주노총 27.5% 무효표 46%가 나왔다.

위원장이 불필요한 분란을 만든다고, 만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위원장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모든 것을 해야 했다. 고소 · 고발 법적 투쟁도 했고, 집회와 기자회견도 열었다. 마지막 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앞으로 한수원노조의 중점 사업은?

사실 노동조합의 기본은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이다. 그러나 고용안정의 틀을 넘어서 우리나라의 미래와 에너지의 미래를 위한 에너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미래 에너지 정책이 제대로 수립되면, 그에 따른 고용부터 모든 부분이 예측이 가능해진다. 한수원노조가 거듭 강조하고 추구하는 바는 탈원전이 아닌 예측 가능한 제대로 된 에너지 정책에 대한 공론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