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담보로 장시간노동 내몰리는 우정노동자
생명 담보로 장시간노동 내몰리는 우정노동자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7.12.08 13:43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망사고 잦은 집배원, 수면·근골격계 질환 노출된 우정실무원
[리포트] 우정산업 인력 문제

계속된 죽음이었다. 최근 5년 사이 70여 명의 동료를 떠나보내야 했던 우정 노동자들의 마음 속은 지난 여름 불볕 더위가 무색하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단순히 2만여 명이 근무하는 거대 기관이어서 벌어진 문제가 아니었다.

통상물량 감소로 미온적 대응 우정사업본부

집배원들의 근로환경은 이미 언론에서 누차 보도된 바와 마찬가지로 열악하다. 우편물이나 택배를 배달해야 하는 이들의 일은 필연적으로 교통사고의 위협에 항시 노출돼 있다.

문제는 인력조차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통상물량 감소를 핑계로 우정사업본부는 부족 인력의 충원에 늘 미온적으로 대처해오고 있으며, 동료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우정 노동자들만이 우리 사회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순히 배달 업무를 수행하는 집배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체국 내에서 우편이나 소포 분류 업무를 하는 우정실무원의 건강 및 안전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정사업본부는 중앙행정기관 내에서도 비정규직이 많은 대표적인 기관이다. 업무들을 외주화하는 과정에서 관련 종사자들은 근로조건 등 다양한 차별을 겪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정봉 연구위원이 정리한 바에 의하면, 우정사업본부 내 우편사업에서 노동부문의 문제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장시간 근로 등 건강 및 안전의 문제이다. 장시간근로에 노출된 대표적인 직종은 집배원이고, 이와 함께 우정실무원은 심야노동, 반복동작 작업 등으로 건강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

둘째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의 문제이다. 우편물을 수집하고 배달하는 집배원은 공무원 신분인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상시계약집배원)이 한 우체국 안에서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근로조건의 차이를 두고 있다.

셋째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의 문제이다. 우편, 택배 분류 업무를 하는 우정실무원은 최저시급으로 기본급이 책정되어 있어, 잔업은 물론 야간노동을 선호하는 경우도 발견된다.

넷째, 간접고용 노동자의 근로자 지위 인정에 관한 문제다. 우체국과 계약을 맺고 대단위 아파트단지 등 특정 지역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는 재택위탁배달원은 개인사업자지만 노동자에 해당하는 조건을 일정하게 갖고 있다. 제택위탁배달원은 우정사업본부 소속의 근로자 지위에 있음을 확인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승소한 바도 있다.

1996년 변화의 기로

우정사업본부는 우정사업을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부 소속 기관이다. 1996년 12월 <우정사업운영에 관한 특례법> 제정을 기점으로 우정사업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해당 법에 근거해, 공사화와 민영화 논란 속에 우정사업본부가 설립되어 책임경영체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정리됐던 것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우편, 예금, 보험 등의 우정사업을 담당한다. 우편사업은 통상우편, 소포우편, 국제특송 등 우편물을 접수하고 배달하는 업무로, 우정사업본부의 핵심 업무이다. 하지만 우편사업은 기술과 통신의 발달에 따라 그 물량이 감소 추세다. 2000년 41억 1,700만 통에서 2016년 기준 38억 9,500만 통으로 13.8%가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쇼핑 등의 발달로 우체국 택배와 EMS 부문은 확대되는 추세다. 우편사업 매출액도 2000년 1조 2,542억 원에서 2016년 2조 8,076억원으로 증가했다.

전국의 우체국 수는 2015년 1월 기준 3,577개이며, 2017년 3월 기준, 전체 인력 41,855명 중 공무원은 30,176명(72.1%), 비공무원은 11,679명(27.9%)이다.

공무원 인력은 행정/기술직과 우정직으로 나뉘는데, 현장 업무를 담당하는 우정직이 대부분(20,653명 68.4%)이다.

집배원 장시간 노동, 사고·사망과 직결

지난 5월에는 대구 지역에서 집배원이 우편물을 배달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6월에는 경기도에서 집배원이 외부 교육을 받으러 가기 전 우체국으로 출근했다가 뇌출혈로 사망하기도 했다. 비단 이러한 사고는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집배원은 우정사업본부 내에서도 대표적으로 장시간 근로를 하고 있다. 집배원의 관할 구역과 숙련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배달을 위해 우체국을 나서는 단계 이전에, 우편물 분류 및 등기우편물 인계 등으로 조기 출근이 이뤄지며, 배달 업무가 끝나도 등기우편물 정리와 다음날 우편물 분류를 위해 정시 퇴근이 어렵다.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는 2016년 집배원의 초과근무 세부내역 분석을 바탕으로 집배원의 주당 펴윤 노동시간을 55.9시간, 연간 평균 노동시간을 2,888시간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는 2017년 2월 전체 집배원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한 결과 주당 노동시간을 48.7시간, 연 2,531시간이라고 발표했는데, 이는 차이가 크다.

연구기관들은 물론, 집배원들로 구성된 전국우정노동조합(위원장 김명환)은 집배원의 인력충원과 노동시간 단축을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언급된 대구지역의 사고의 경우, 겸배(여하한 사유로 결원이 발생할 경우, 해당 구역의 물량을 다른 집배원들이 나누어 담당하는 것) 중에 발생했는데, 이와 같이 예비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크고 작은 교통사고의 위험을 크게 높이는 것으로 지목된다.

집배원들의 장시간노동 문제는 정부 역시 같은 시각이다. 2017년 5월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관할지역 4개 우체국을 조사해 보니, 집배원들이 1일 평균 1천 통의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월 평균 57시간의 연장근무를 하는 등 장시간근로를 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공무원 신분인 집배원들의 경우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제외되고, 비공무원 집배원 역시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포함되어 있어 연장근로 제한에 해당되지 않는다.

우정실무원 건강 문제도 대두

이러한 장시간 근로가 계속되고 있는 현실은 집배원들의 안전과 건강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또한 집배원이 아니더라도 우정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의 현실이다. 지난 2014년 은수미 전 의원이 근로복지공단과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우정사업본부 노동자의 재해 발생 경위내역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1년부터 2013년 사이 우정사업본부 내에서 1,434건이 재해로 인정을 받았고, 이중 사망은 27명에 달한다. 집배원들의 전체 재해는 1,182건이었고, 사망은 19명이었다.

우정사업본부 발표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우정사업본부 직원의 사망자는 190명에 이르는데, 안전/교통과 관련한 사망이 30명, 심장질환 32명, 뇌혈관질환 9명, 암 56명이었다.

집배원들 이외에도 우정실무원들의 건강 문제도 주목 받고 있다. 우정실무원은 집중국에서 우편물 이동과 분류 작업을 맡고 있다, 우편집중국은 전국에서 오는 우편물을 분류, 배송하기 위해 24시간 운영된다.

우정실무원은 집중국의 우편물량에 맞춰 다양한 근무시간대에 일한다. 또한 다루는 우편물 종류에 따라 역할이 나뉜다. 동서울 우편집중국의 경우 근무형태를 살펴보자면, 일근(9~18시), 발착계 중근(13~22시), 소포/대형/소형계 중근(14~23시), 특수계 중근(16~24시), 석근(19~23시), 야근(21~6시), 조근(7~16시) 등으로 나뉜다. 일근과 조근을 제외하면 모두 야간노동 및 심야노동이 이뤄진다. 따라서 우정실무원 중 야간 근무자는 주간 근무자에 비해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우쳔집중국 소형계에서 일하는 우정실무원들은 서서 일을 하고, 반복적으로 우편물을 분류하며, 우편물 묶음을 올리고 내리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근골격계질환을 겪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제도 개선과 병행돼야 할 예산 구조

이처럼 우정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환경요인이 드러났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인력확충, 심야근로 축소 등의 대응방안 마련과 함께,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우편업 제외와 같은 제도적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우정사업본부의 예산 구조도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정사업은 3개의 특별회계, 즉 우편사업특별회계, 우체국예금특별회계, 우체국보험특별회계로 운영된다. 우편사업특별회계는 2011년 이후 경영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결손은 우체국예금특별회계의 이익잉여금으로 보전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결손 보전은 사후적인 조치라 앞서 언급한 우정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체국 창구망의 감소, 비정규직 증가와 같은 문제점 역시 해결이 어렵다. 그 뿐만 아니라 노후 우체국이 늘어나면서 시설물의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전남의 한 우체국에서 주차장 담장이 무너져 직원이 사망한 사고가 있기도 했다. 전체 우체국 중 30년 이상 된 곳은 280여 곳에 달한다.

게다가 온라인 쇼핑 등의 증가로 우편물의 변화는 계속되고 있는데, 물류시설의 확충도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아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제한이 따른다.

지난 2015년 국정감사에서 이와 같은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우정사업은 정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이기 때문에 적자가 불가피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정사업 적자는 정부가 책임질 필요가 있고, 이에 우체국예금특별회계의 결산상 이익금을 일반회계로의 전출보다 우선하여 우편사업특별회계의 적자 보전을 할 것을 미방위 수석전문위원회에서 제시한 것이다.

양 특별회계 상호간의 결손 보전뿐만 아니라, 투재재원의 조달을 위해 전출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는 <우정사업 운영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과 다른 것보다 우선적으로 전출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도 발의되었지만, 모두 폐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