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조합의 과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조합의 과제는?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12.1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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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노동’ 배제되지 않도록 참여와 역할 강화해야
▲ 11일 오후 1시 30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4차 산업혁명과 노동조합의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 김민경 기자 mkkim@laborplus.co.kr

한국사회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노동자가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노동조합의 참여와 역할을 강화해 4차산업 혁명 시대에 ‘사람과 노동’이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1일 오후 1시 30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4차 산업혁명과 노동조합의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과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에는 노동계와 학계, 정부관계자 다수가 참석했다.

이날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노동조합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인식과 대응실태’를 주제로 발제에 나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노조간부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노조 대응 부족

황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한국에서는 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들이 핵심 이해당사자인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조를 비롯한 시민사회 대표를 배제한 채 정부와 기업관계자, 기술전문가 중심으로 수립돼 왔다”며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정보통신기술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는 고용과 노동조건, 고용형태, 노사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회의 발전방향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폭넓은 인식공유와 참여, 논의가 필요하다”고 조사를 실시한 배경을 밝혔다.

실제로 지난 9월 정부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기구인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해 공식 활동을 시작했지만, 위원장을 포함한 20명의 민간위원 중 노동계 대표는 한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해당 조사는 지난 10월 23일부터 11월 10일까지 한국노총 산하 제조업과 금융업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약 1,200부를 우편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중 총 472부(39.5%)가 수거됐다. 제조업과 금융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4차 산업혁명에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대상으로 특정했다. 조사 사업장의 60%이상이 300인 이하 사업장인 특징을 보였다.

황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조사 결과, 사업장에서 실질적으로 기술변화가 진행되지만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 다수의 노동조합이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년간 사업장에서 기술변화가 있었다는 사업장은 75%(354개)였고, 이와 관련한 의사결정에 노동조합이 참여하지 못한다는 응답은 61.6%(사전통보 34.5%, 사전통보 없이 회사 결정 27.1%)에 달했다. 특히 금융업의 경우 사전통보 없이 회사가 결정한다는 사업장이 61%로 기술변화가 기업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기술변화와 관련된 내용을 단체교섭 안건으로 제출한 사업장은 18.4%, 관련 조항이 단체협약에 포함된 사업장은 17.2%에 그쳤다. 아울러 노조간부들은 4차 산업혁명 기술변화에 대한 노조의 정책대응능력이 부족하다(68.6%)라고 평가했다.

노동조합의 대응이 필요한 8가지에 대한 중요도를 물은 항목에서 응답자들은 ‘숙련향상을 위한 교육훈련 강화’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았다. 이어 ‘노동조합의 개입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역량과 전문성 강화’, ‘빠른 기술혁신으로 인한 스트레스로부터 건강보호’, ‘개인정보 보호’, ‘일과 생활의 조화를 위한 규정 마련’, ‘기업, 산업별, 지역별, 중앙차원 교섭 체계 구축’, ‘사회적 대화 참여’ 등의 순이었다.

노조, 4차 산업혁명 논의 참여하고 주도해야

이 같은 결과에 대해 황 선임연구위원은 “노조는 노동자가 급격한 기술발전에 적응해 신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기술 산업 혁신이 일방적으로 기업의 이윤추구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4차 산업혁명 등 기술변화와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해야한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의 미래는 노조의 역할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 관련 논의나 정책은 일자리 유지와 창출, 일자리 질 향상, 노동자의권리, 사회적 보호 등을 우선순위에 두기 보다는 산업 경쟁력과 효율성 향상, 비용절감, 규제 완화 등 유연화에 집중됐다”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4차 산업혁명 정책이 추진될 경우 많은 시행착오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커치고, 기술발전의 혜택은 소수 자본에게 집중돼 인간과 노동이 배제되는 사회구조가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승렬 어고노믹스 대표도 ‘공정한 전환’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노조의 참여를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고 지칭하는 현상에 대해 유럽은 ‘디지털화’, 영국과 미국 등에서는 ‘신기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급격한 디지털화로 직업의 영역이 변화한다 점은 같다”며 “국제적인 노동단체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대응하면서 공통적으로 ‘공정한 전환’과 ‘차별해소’를 모든 전략에서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또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기술도입을 위해 노조의 참여를 전제하고, 노동자들의 교육 훈련도 중요한 이슈로 논의했다”고 말했다.

또 “기술진보나 디지털화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혼란이 아닌 성장 확보”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 한국의 노동정책은 공정한 전환을 위한 산업구조의 진화라는 점으로 접근해야한다. 기존 아날로그 시대의 노사관계를 노사정 관계로 확대해 재정립하고, 좋은 일자리는 확대하는 한편 불평등은 줄여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독일의 산업 4.0과 노조의 대응을 소개했다. 독일의 산업 4.0은 디지털 기술을 생산과정에 접목시킨 제조업 혁신을 일컫는다. 그는 독일의 산업 4.0에 따른 노사정의 입장과 노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쟁 지점을 짚으며 “독일의 노조는 참여를 통해 조절된 디지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였다. 기술이 갖고 있는 양면성을 보고, 기회요소는 살리고 위협요소는 제거하는 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노조의 대응 전략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술혁신은 사회적 혁신과 결합되지 않을 경우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 발생하는 노동의 양적 질적 문제는 노사관계로 풀기에 한계가 있다. 여러 사회적 혁신이 동반돼야한다.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이유이고 노조가 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의지와 역량을 키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노조가 정책영역을 ▲고용 ▲교육 ▲사회복지 ▲작업조직 ▲일과생활의 조화 ▲노동조건 ▲노사관계 등으로 구분해 체계적으로 대응정책을 세워나가야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3명의 발제 직후 이어진 토론에는 최장윤 금속노련 정책국장과 공광규 금속노조 정책실장을 비롯해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경제연구원 노동법제실장, 박종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능정보사회추진단 미래일자리팀장, 이창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 등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