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청소노동자 92% 근골격계질환 시달리며, 높은 업무 피로감 호소
비행기 청소노동자 92% 근골격계질환 시달리며, 높은 업무 피로감 호소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1.0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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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8일 대한항공 비행기 청소노동자 건강실태조사 결과 발표
“회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해…고용노동부 철저한 조사와 처벌 촉구”
▲ 5일 오전 10시 30분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한국공항비정규지부가 근무환경 개선과 최저임금 인상안의 제대로 된 반영을 요구하며 파업집회를 열었다. ⓒ 김민경 기자 mkkim@laborplus.co.kr

파업을 시작한 지 10일차에 접어든 대한한공 비행기 청소노동자들이 소속 인력업체인 ㈜이케이맨파워가 사용자로서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으며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공공운수노조와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한국공항비정규지부(이하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는 8일 오전 11시 고용노동부 중부지방노동청 앞에서 ‘한국공항의 하청 ㈜이케이맨파워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주장했다.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는 대한항공의 지상조업을 수행하는 한국공항의 하청업체 ㈜이케이맨파워에 고용돼, 비행기 기내 청소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올해 조직한 노조다. 해당 업무를 하는 380여 명의 직원 중 260여 명이 조합원이다. 이들은 근무환경 개선과 최저임금 인상안의 제대로 된 반영을 요구하며 작년 12월 29일 파업에 돌입했다.

3일 건강실태 조사 실시, 근골격계질환 92.4%

이날 이들은 파업 중이던 지난 3일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인 건강한노동세상에 의뢰해 실시한 조합원들의 건강권 실태조사 결과, 92.4%가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는 147명의 조합원이 참여했다. 응답자의 평균연령은 54.6세이고, 여성의 비중이 83.6%를 차지해 남성보다 높았다. 이들의 근속연수는 평균 3년 9개월로 최근 일을 시작한 20여 명을 제외하면 5년 이상 10년 이하 근무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같은 결과의 주요 원인은 비행기 내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불편한 자세로 반복적인 청소업무를 장시간 수행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청소 노동자들은 사람 한명이 지나갈 정도의 폭인 비행기 내부 통로를 오가며 밀테이블(meal table, 이하 승객식탁)을 닦고, 의자 머리 커버 교체, 담요 수거와 재정비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실제로 노동시간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을 분석했더니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0.4시간,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9.7시간으로 나타났다. 장시간 노동만큼 심각한 문제는 업무 중 제대로된 휴식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중 비행기 이착륙 스케줄에 따라 청소 업무 시간이 빈번하게 바뀌어 하루 중 정해진 휴식시간을 보장받지 못한 채 청소업무를 하고 있는 경우가 87.8%에 달했다.

근골격계 질환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 항목은 위장질환(31%)과 호흡기 질환(21.2%)이었다. 특히 노조는 호흡기 질환과 관련해 “기내 청소작업은 환기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뤄진다”며 “기내 모포 등을 정리하면서 발생하는 먼지와 청소작업에 사용되는 화학세제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지만 적정한 보호구조차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강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아울러 조사 대상자의 97%가 자신들의 작업이 힘들다(매우 힘듦 32%, 힘듦 65%)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제조업 노동자들의 평균수치보다도 2배 넘게 높은 수치로, 비행기 청소노동자들이 업무에 따른 피로감을 상대적으로 높게 느끼고 있었다.

“근로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조사 시급”

이날 노조는 고용노동부 중부지방노동청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업주로 이케이맨파워를 고발했다.

공공운수노조는 “나이가 많은 노동자들이 업무에 따른 근골격계 질환이 산업재해임을 알지 못한 채 개인의 문제로 여겨 병원치료를 병행하며 일하고 있다”며 “이는 사업주로서 ㈜이케이맨파워가 노동자에게 알려야할 안전에 대한 교육 등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비행기 청소노동자들이 건강권을 위협받고 있는 이 같은 상황이 사업주에 의해서가 아닌, 최저임금 위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노조의 파업 과정의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됐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사측이 산업안전보건법의 ▲제10조 산업재해 발생은폐 금지 및 보고 등 ▲제19조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제24조 보건조치 등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제10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산업재해 발생시 노동부에 신고해야할 의무가 있으나, 노동자 개인의 휴가를 사용하게 하거나, 퇴사해 치료가 끝난 뒤 재입사를 하는 방식으로 산재처리를 하지 않고 은폐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또 제19조에 노사가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사 동수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회의를 분기별로 열도록 정하고 있지만,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개최에 대한 제안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제24조에서 ‘단순반복작업 또는 인체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작업에 의한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에 영향을 미치는 유해요인에 다한 조사나 관리가 시행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비행기 기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청소하는 업무환경을 고려해 화학세제와 유기용품의 사용방식을 세심히 살피고, 보호구를 지급해야함에도 기본적인 장갑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비행기 청소노동자 건강권 재조명

지난 2009년 전문 개정된 바 있는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히 해 산업재해를 예장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여행객들은 비행기를 ‘깨끗함’, ‘안락함’ 등의 이미지로 떠올리지만, 그 이면에는 대한항공이라는 업체의 도급(한국공항)과 하청(이케이맨파워)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고용 구조 속에서 건강하게 일할 권리에 대한 교육조차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하루에도 10시간 넘게 일하는 비행기 청소노동자들이 있다.

이번 대한항공 비행기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으로, 한국 사회에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던 비행기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업무방식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 될지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한편 인천공항의 항공사 비행기 청소 노동자들 중 이케이맨파워는 그나마 규모가 큰 업체에 속한다. 이보다 적은 노동인력을 고용하고 있거나, 일반 기내 청소와 달리 집중클리닝으로 불리는 청소업무를 맡고 있는 업체의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 실태는 훨씬 열악하다는 것이 현장 노동자들의 증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