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왜 노동을 만났을까?
광주는 왜 노동을 만났을까?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8.01.09 10:18
  • 수정 2018.06.2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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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형 일자리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커버스토리] ① 광주의 새로운 시도, 노동과 발을 맞추다
광주가 주목받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지역혁신 전략의 핵심으로 ‘광주형 일자리’를 꺼내들었다. 그로부터 3년. 누군가는 새로운 지방행정 모델을 발견했다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실체 없는 뜬구름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광주는 무엇에 ‘광주형 일자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인가. 광주는 왜 ‘광주형 일자리’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인가. 지금 광주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추적해 봤다. 아울러 윤장현 광주시장, 그리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당사자인 광주시청 청소노동자를 만나봤다.

한국사회만큼 격동의 20세기를 보낸 곳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일까, 21세기 우리의 삶에 대한 기대는 더 컸다. 하지만 우리가 맞이한 21세기는 장밋빛이 아니었다. 다양한 원인에서 출발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저출산, 고령화, 청년실업, 저성장과 양극화 같은 ‘만만치 않은’ 과제들을 가리키는 표현이 너무나 익숙한 오늘날을 살고 있다.

진단과 해법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넓은 범위에서 ‘노동’은 이러한 문제들의 중요한 요소로 가로지르고 있다. 얽힌 매듭을 풀어내듯, 노동의 교차점을 찾아 한국사회의 적체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로 삼으려는 시도가 ‘광주, 노동을 만나다’라는 제목의 특별기획이다.

▲ 광주광역시청

광주형 일자리의 다양한 면면

<참여와혁신> 2018 신년호 특별기획 ‘광주, 노동을 만나다’의 시작과 마무리는 ‘광주형 일자리’를 제외하곤 앙상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민선 6기 광주광역시의 핵심 사업이자, 광주를 넘어 국가적인 관심사로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위원회까지 이어진 정책 브랜드가 되었다.

‘유명세’에 뒤따르는 논란도 여전하다. 지역(광주형)의 특정 분야(일자리)로 이름 지어진, 지방정부의 정책이 왜 이렇게 관심거리일까? 3년 반 가량 기간 동안 각계각층으로부터 찬사와 옹호, 몰이해와 오해, 심지어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어왔던 광주형 일자리는 대체 무엇일까?

민선 6기 시장으로 광주형 일자리라는 핵심 정책을 지속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은 “지역사회가 연대와 혁신으로 노사관계와 생산 방식을 바꾸고, 일자리의 질 개선과 신규 투자를 유치하며, 노동시장의 구조화된 왜곡을 개선해 사회통합을 강화하는 지역 혁신운동”이라고 광주형 일자리를 정의한다.

광주광역시 사회통합추진단 정경자 정책TF팀장은 “어떤 완결된 정책구조를 가진 게 아니라, 노동소외, 노동에서의 소외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정직한 고민에서 출발한 참여형, 확장형 정책”이라고 부연한다.

광주광역시의 이와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광주형 일자리의 외연을 협소하게 보는 시선도 많다. “지역산업 특화형 일자리정책 아이템 중 하나”라고 보는 시각이라든지, 광주형 일자리가 회자되던 초기에 흔히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이던 “반값(4,000만 원) 일자리”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이러한 내용은 다 광주형 일자리의 조각 중 하나다. 2018 신년호 표지에 나열된 각각의 단어들도 광주형 일자리가 무엇인지를 규정하거나, 이를 부연하거나 혹은 부정하는 개념이다.

오해가 더욱 깊어져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들린다든지, 모든 일을 해결해 줄 만능열쇠인 정책처럼 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광주형 일자리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몇 가지 카테고리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선 광주형 일자리란 정책은 어떤 계기로 싹트게 되었으며, 기존의 익숙한 그림처럼 시기성과 단위의 닫힌 구조의 정책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방향이 목표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또한 광주형 일자리가 정책으로서 핵심으로 품고 있는 타깃 아이템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과정은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 역시 광주형 일자리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광주형 일자리 추진 현황

2014년 9월 1일 광주시 사회통합추진단 신설
2015년 2월 6일 광주시 사회통합지원센터 설치
2015년 2월 광주시-공공운수노조 사회공공협약 체결
2015년 3월~ 기아차 노사 공동교육 및 노동경영계와 상생 간담회
2015년 7월 광주형 일자리 창출 모델 구축 연구용역
2016년 2월 친환경 자동차 클러스터 사업(자동차 100만대 생산기지 사업 수립)
2016년 6월 15일 광주시 노동정책 기본계획 수립
2016년 7월~ 더나은일자리위원회 구성 및 운영
2016년 8월 18일 광주시-금호타이어 노-사 공동협약 체결
2017년 6월 광주형 일자리 기초협약 체결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노사상생형 일자리 모델 전국적 확산)
2017년 9월 한국노총,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 광주형 일자리 지지 행사

▲ 빛그린산단 조성 공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시작, 위기의식의 확산

두려움과 절박함. 광주에서 만난 많은 취재원들은 저마다의 색깔로 위 두 단어를 말한다. 지금은 비록 일자리를 갖고 있지만, 그것이 지역 내에서 최고 수준의 일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그 일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의 경우 삶을 제대로 꾸려갈 수 없다는 절박함.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어서 인턴이나 알바를 전전해야 하는 청년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물질적, 사회적으로 큰 격차 때문에 느끼는 자괴감. 나야 지금은 먹고 살지만 앞으로 내 자식들은 제대로 자리 잡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비단 광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논리로 현상을 분석하진 못해도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다. 삶 속에서. 내가 삶을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해 “사실 멘붕이 온” 것이다.

구성원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가운데, 그리고 실제로 현실의 모습이 이렇다면, 과연 공동체는 지속발전이 가능할까? 이런 상황에 대해 비판적 성찰과 대안 모색은 시도되고 있을까? “공동체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 행정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 아닐까요? 행정은 여기서 지금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이걸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방기입니다.” 광주시 정경자 정책TF팀장의 말이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지점이다. 그리고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래서 광주형 일자리가 처음부터 완결된 정책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보다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해서, 더 정직하게 우리의 현실 문제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공감대가 깊어질수록 좀 더 확실한 대안이 나오는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초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진화해 왔다.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이 동력이었다. 햇수로 4년째, 광주형 일자리와 관련해 사회적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당사자들의 이해는 점점 더 깊어졌다.

핵심, 격차해소 통한 일자리 창출

아무리 그 취지가 좋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소기의 성과 없이는 정책이 비판받기 십상이다. 광주형 일자리가 흔히 실체나 성과가 없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기반으로 한 ‘광주광역시 더나은일자리위원회’는 2017년 6월 의미 있는 내용의 기초협약을 체결했다. 원하청 관계 개선, 적정 임금, 적정 노동시간, 노사 책임경영이라는 우리 사회에서 대단히 폭발력 있는 이슈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지역의 노사민정 22개 기관과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위원회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실현을 위해 이와 같은 내용을 개선해 나가겠다는 획기적인 내용을 약속했다.

광주광역시가 스스로 사용자의 입장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했던 점, 노사 책임경영 실천을 위한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한 것, 광주형 생활임금 조례를 도입한 것 등도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가져온 주요한 성과다.

광주형 일자리 정책의 내용적 측면(contents)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은 전기차를 중심으로 한 친환경 자동차 생산공장의 유치 및 관련 자동차 부품산업의 육성을 위한 신규 산업단지의 육성을 꼽을 수 있다.

광주지역에서 자동차산업은 지역의 거점산업이므로 신규 투자 활성화를 통해 지역의 산업과 경제, 일자리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다. 아울러 광주지역은 물론, 자동차산업 노동시장 전반의 구조적 왜곡을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이는 그간 자동차산업의 국내 신규 투자를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이란 지적과 맞닿는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이론적 기반을 정리한 한국노동연구원은 자동차산업의 ‘구조적 왜곡’을 가리켜 “노동시장의 구조가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상태에 있으며, 그로 인해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산업생태계가 구축되는 것이 방해 받고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고 정리한다.

이는 광주뿐만 아니라 타 지역 자동차산업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원청인 완성차 업체와 하청인 협력업체들 간에는 근로조건과 보상 측면에서 심각한 격차가 존재한다. 이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표현되는, 수탈적 행태의 지배력 행사가 산업조직 전반에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기업의 신규 투자여건을 단순히 규제의 완화와 강화 등으로만 가름할 순 없다. 이는 문제의 중심을 지나치게 정부-기업 간 두 당사자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다. 노동조합과 시민사회 등 지역의 이해당사자들과의 거버넌스를 통해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것이 광주형 일자리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이와 같은 경험은 미국의 위스콘신이나 독일의 볼프스부르크, 슈투트가르트 등의 사례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를 볼 수 있었다.

▲ 지역노사민정 광주형일자리 성공기원 정책협의회

과정, 사회적 대화는 힘이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소기의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국내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시도였으며, 지금까지의 과정 역시 하나의 성과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바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토대로 지역고용 거버넌스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광주광역시 관계자의 표현처럼 지금까지 사회적 대화의 모습과 결과를 감안할 때 “사회적 대화가 과연 힘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래서 ‘실험’이나 ‘도전’이었다는 소회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많은 참여 당사자들은 지금까지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힘이 있다”고 자평한다.

광주광역시와 도시철도공사, 김대중컨벤션센터 등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화하기 위해서 이들은 130회의 사회적 대화를 가졌다. 이와 같은 모습은 행정과 노, 사가 만났을 때 미리 짜놓은 프레임에 따라 형식적 수준의 사회적 대화를 진행했던 여타 예들과 다른 접근이었다.

“진심으로 다가서는 협의를 진행한다면 거기서 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 대화를 추진했다”고 광주광역시 사회통합추진단 관계자는 말한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찾아오거나, 자료를 요청하는 다른 지방정부에서도 이와 같은 노력에는 혀를 내둘렀다.

그에 반해 조례 통과를 통해 내년부터 시행되는 노동이사제 도입의 경우, 서울시의 경우 3년이 걸렸던 과정을 광주는 세 달 만에 결론을 도출했다. 이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130회의 공식 회의를 가졌던 경험 때문에, 이해당사자들의 기본적인 신뢰와 공감대 축적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를 해나가기 위해선, 그리고 이러한 형식이 힘을 갖기 위해선 그 통로를 열어야 한다. 대화의 틀을 만들어가고, 그걸 계속해서 확대해 나가며, 실질적인 당사자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광주도 여전히 안고 있는 숙제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은 구성원들, 당사자들이 서로 신뢰하지 않는 상태에선 요원한 일이다. 그동안 중앙 단위 사회적 대화가 엎치락뒤치락을 거듭하다 지금까지도 소강상태인 점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공무직이 된 광주시청 및 산하기관 노동자들이 신분증을 받고 활짝 웃고 있다.

미래, 자기성찰로 진화하는 정책

광주형 일자리 실현을 위한 사회통합추진단 설치 6개월 만에 벌써 “가시적 성과가 뭐냐?” “빨리 없애라”는 비판을 들었다는 관계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광주형 일자리가 굉장히 주목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또는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초기에 홍보가 잘못됐었다는 자조도 나온다.

앞으로 이어질 2018 신년호 기획특집 ‘광주, 노동을 만나다’의 기사에서 읽을 다양한 목소리에는 몰이해나 오해, 비판의 지점도 담겨 있다. 이를 통해 광주형 일자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나아가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혁신을 통해 사회 발전을 도모하는 길에서 우리가 고려해야할 점은 무엇인지 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