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맞춘 경강선 KTX, 직원들은 “싫어요”
올림픽 맞춘 경강선 KTX, 직원들은 “싫어요”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8.01.2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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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없는 쪽방에 깨진 천장, ‘총체적 난국’
기피 대상 전락… “시설-운영 분리가 원인”
▲ 강릉역 전경.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지난 12월 22일 개통한 경강선 KTX(서울-강릉)가 총체적인 부실로 직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참여와혁신> 취재 결과 선로와 역사, 차량기지 등 주요 시설에서 각종 문제점이 드러났다.

경강선 KTX는 서울 도심과 강릉 사이를 1시간 50분대에 연결하여 강원지역의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릉시에 따르면 경강선 KTX 개통 이후 20일 동안 KTX를 이용해 강릉을 방문한 관광객 수는 11만 5천여 명에 이른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경강선 KTX 이용객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에 신설된 노선은 강원 원주시 서원주역에서 강릉시 강릉역까지 120.7km 구간이다. 이곳에 만종, 횡성, 둔내, 평창, 진부역 등이 새롭게 지어졌다. KTX-산천 차량을 정비하기 위한 차량기지 한 곳도 강릉시 외곽에 마련됐다.

새 역사의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직원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초라했다. 지은 지 두 달 밖에 안 된 건물 천장에 물이 새는가 하면, 야간근무자들은 창문 하나 없는 쪽방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직원들의 불만이 가장 많이 터져 나온 곳은 시설사업소와 차량사업소다. 시설사업소는 열차가 고속에서 안정감 있게 움직이도록 궤도를 유지·보수하는 일을 한다. 차량사업소는 열차가 고장을 일으키기 않도록 차량의 각 부분을 정비한다.

시설사업소 휴게실은 ‘강원도 쪽방촌’

시설사업소의 경우 열악한 휴게시설이 문제로 지목됐다. 시설사업소 직원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해 있었다.

이들의 불만에는 이유가 있었다. 총원 12명이 근무 중인 경강선 A 시설사업소의 휴게공간은 비좁기 짝이 없었다. 성인 남성 네 명이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였다. 침대나 소파는커녕 맨 바닥에 장롱 하나가 전부였다. 게다가 사방이 막혀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창문 하나 없는 실내는 신축 건물 특유의 냄새로 가득했다. 하루 수만 명을 수송하는 선로를 책임지는 직원들의 휴게공간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현장에서는 ‘강원도 쪽방촌’이라는 자조가 들렸다.

▲ 경강선 KTX가 지나는 구간의 선로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한 시설사업소 내 직원 휴게실 모습. 세 평도 채 되지 않는 공간에 5~6명이 쪽잠을 청하는 곳이다. 창문 하나 없어 환기조차 잘 되지 않았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시설사업소 야간근무자들에게 중간 휴식이 중요한 이유는 안전 때문이다. 이들은 오후 7시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9시에 퇴근한다. 일반적으로 오후 10시부터 자정까지, 다음 날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4시간 동안 수면시간이 부여된다. 중간 휴식 없이 피로한 상태에서는 집중도가 떨어져 인명사고의 위험이 커진다.

야간근무자들만 휴게실에서 잠을 청하지는 않는다. 야간에서 주간으로 근무주기가 바뀔 때에도 휴게실에서 숙박을 해결한다. 경강선의 역 대부분이 출퇴근이 어려운 곳에 떨어져 있어서다. 시설사업소에서 휴게실은 관사의 기능도 맡고 있었다. 해당 시설사업소 직원 B씨는 “야간근무자들만 휴게실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면서 “사람이 많을 때에는 대여섯 명씩 끼여 잔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전국철도노동조합 관계자는 “A 시설사업소뿐만 아니라 경강선의 모든 시설사업소가 열악하다”면서 “교대근무자들이 휴식 여건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1인 1실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했다.

뻥 뚫린 벽, 물새고 부서진 천장은 “애교 수준”

경강선 KTX의 종착지인 강릉에 위치한 차량기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강릉역에서 차량으로 20여 분쯤 걸리는 곳에 위치한 강릉차량사업소는 완공조차 되지 않았다. 강릉차량사업소 한편에서는 굴착기가 흙을 퍼내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막 입고된 열차를 검수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무실과 직원 휴게실이 위치한 종합관리동은 그나마 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나 곳곳에서 부실공사의 흔적이 포착됐다. 천장에서 누수가 발생해 누렇게 얼룩져 있었고, 심한 곳은 금이 가거나 내려앉았다. 화장실과 사무실은 완전히 격리되지 않아 틈새로 악취가 그대로 전해질 우려가 컸다.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 지난 12월 18일 본격 운영에 들어간 강릉차량사업소 종합관리동 내부 모습. 새로 지은 건물이지만 누수로 인해 천장 마감재가 깨져 있다. 천장 파손 흔적은 건물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강릉차량사업소 직원들의 편의시설에 대한 불만은 폭발 직전이었다. 강릉차량사업소의 근무인원은 100명이 넘는 데 반해 편의시설은 그 절반인 50명이 사용하기에도 벅차기 때문이다.

강릉차량사업소 종합관리동은 사무실 외에 침실과 세탁실, 체력단련실, 식당 등을 갖추고 있다. 야간근무자의 휴식과 원거리 출퇴근 직원의 생활 편의를 위해서다. 그러나 1인 1실 기준으로 만들어진 침실의 개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세탁실에는 가정용 세탁기 두 대와 건조기 한 대만 놓여 있었다. 체력단련실은 발 디딜 틈조차 없어 운동기구를 갖다놓은 창고처럼 보였다.

▲ 강릉차량사업소 종합관리동 1층에 위치한 세탁실. 1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사용하지만 17kg 용량의 가정용 세탁기 2대와 건조기 1대가 전부다. 일부 직원들은 세탁실 이용을 포기하고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채 출퇴근하고 있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 강릉차량사업소 종합관리동의 체력단련실. 공간을 마련한 곳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지만 운동기구를 들여놓은 곳은 한국철도공사다. 비좁은 공간에 운동기구를 우겨넣어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강릉차량사업소에 근무하는 직원 C씨는 “침실을 늘리고 싶어도 공간이 없고, 세탁기를 더 놓으려고 해도 수도배관이 없다”며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출퇴근하기 일쑤였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그래도 지금 수준이면 많이 나아진 것”이라며 “처음 발령받아 왔을 때에는 그야말로 공사판이었다”고 말했다.

기피 근무지로 전락한 경강선, “시설-운영 분리가 문제”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경강선은 철도공사 직원들로부터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각 역 및 사업소 인근에 마땅한 주거·상업시설이 없는 데다 구내 편의시설도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A 시설사업소와 강릉차량사업소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업소는 신입직원들로 채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른바 ‘고참’ 직원들도 인근 지역에서 차출됐다.

사실상 ‘울며 겨자 먹기’로 경강선에 배치된 직원들은 “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이다. 철도공사 소속인 이들은 한결같이 한국철도시설공단을 주범으로 지목했다. 운영기관 입장에서 필요한 사항을 설계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지난 2004년 옛 철도청의 건설부문이 떨어져 나와 고속철도건설공단과 통합하면서 설립됐다. 운영부문은 현재의 한국철도공사로 출범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경강선 KTX의 부실은 시설공단과 철도공사가 분리되면서 초래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