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성폭행, 적극 문제제기해야
직장 내 성희롱·성폭행, 적극 문제제기해야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2.1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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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제이자 건전하지 못한 직장문화의 반증
[인터뷰] 황현숙 서울여성노동자회 부회장

오는 5월 29일부터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사업주의 의무가 강화된다. 작년 11월 국회 본회의에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사업주가 문제 상황에 대한 신고를 받고도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 가해자 징계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징역형까지 받는다.

지난달 11일 황현숙 서울여성노동자회 부회장을 만나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끊이지 않았던 직장 내 성희롱·성폭행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 남은 과제를 살펴봤다. 여성노동자회는 1995년부터 여성노동상담실 ‘평등의전화’를 운영해 왔다.

90년대 초, 사회적 논의 시작

지난해 공공기관과 민간사업장을 불문하고 직장 내 성희롱·성폭행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최근 관련 상담건수도 증가했나?

직장 내 성희롱·성폭행 상담 건수는 많다. 최근 들어 증가하는 추세라고 보진 않는다. 예전부터 많이 발생해 온 문제다. 다만 과거에는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생각자체를 하지 못했다. 피해 상황을 알리면 손해만 본다는 생각도 컸다.

심각한 수준의 직장 내 성희롱·성폭행 문제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문제로 대두했다. 최근 피해자들은 과거에 비해 문제해결을 위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

언제부터 사회적인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나?

1992년 발생한 서울대 화학과 교수의 성희롱 사건이 계기였다. 한국사회에서 직장 내 성희롱이 크게 이슈가 됐다. 그 말 자체가 사회적 용어로 사용되지 않던 때였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는 여론이 생겼다. 사건을 어떻게 명명할 지, 어떤 용어가 적합할지에 대한 논의도 시작됐다. 당시 성희롱의 ‘희롱’이라는 단어가 사적인 문제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있었다. 전문가들과 현장 활동가들의 의견을 모아 최종적으로 지금의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됐다. 외국에서는 ‘섹슈얼 해러스먼트(Sexual harassment)’ 즉, 성적 괴롭힘이라고 표현한다. 1999년 직장 내 성희롱 금지 조항이 남녀고용평등법에 신설됐다. 꾸준히 이어진 사회적 문제제기가 토대였다. 이후 성희롱에 대한 개념과 내용이 구체화돼 왔다.

올해 사업주 의무 강화한 개정안 시행

여성노동자회는 상담 사례를 분석하고 전문가 토론회를 열면서 그동안 지속적으로 법 개정의 필요성을 말해왔다. 지난해 통과된 개정안에 대한 평가는?

앞서 기본적인 내용의 법안이 만들어졌지만, 내용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조사와 처리 과정에서의 사업주의 책임에 대한 내용이 허술했다. 사업주의 법적 의무가 현장에서 정립되지 않았다. 피해자 보호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가해자가 징계를 받기보다 피해자가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불이익을 받는 2차 3차 피해를 겪는 경우가 많았다. 법은 제정됐으나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조차 개선되지 않았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18년 만에 나온 개정안의 의미는 크다. 누구든지 직장 내 성희롱 발생사실을 사업주에게 신고할 수 있고, 문제 상황을 알게 된 사업주는 사실 확인 조사와 피해자 보호조치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근무장소를 변경하거나 유급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의 피해자 보호조치도 구체적으로 담겼다.

여전히 과제는 남아 있다. 지난해 국회에서 단 한 표의 반대도 없이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현장에서 적용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개정안이 기존 법의 미흡했던 부분을 다 보완한 것도 아니다. 현실에서 일정정도 법을 통해 바뀔 수 있겠다 싶은 부분이 반영됐다.

성희롱 전담근로감독관·판정 위원회 필요

현장에서 법이 뿌리내리기 위해 남은 과제라면?

직장 내 성희롱 문제 담당 부처는 고용노동부다. 그런데 전문성을 갖춘 근로감독관들이 없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의 본질과 특성을 잘 알지 못한다. 성희롱에 대한 진정을 넣으면 임금체불을 담당하는 근로감독관들이 지역을 나눠서 처리한다.

여성노동자회는 직장 내 성희롱 사건 위한 전문화된 근로감독관을 배치해달라고 꾸준히 요구해왔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해당 문제를 전담으로 하는 근로감독관을 둬 지속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게 하고 전문성을 가지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요즘은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은 여성근로감독관에게 맡겨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막상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조직 내부적으로 성희롱 관련 매뉴얼을 만들어서 근로감독관들에게 배포하기도 하는데, 근로감독관들 중에 매뉴얼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근로감독관 개인이 성희롱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고용노동부 본부가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지방노동청 단위로 책임 있는 위원회를 구성해 판단토록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진정이 접수된 성희롱 판정을 근로감독관 개인의 역량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화해야 한다.

실제로 피해 상담과정에서 아쉬웠던 부분은?

답답한 부분이 많다. 성희롱 또는 성폭력을 당해도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때 담당기관은 더 면밀히 조사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회사 측에 치우친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회사는 문제가 확대되지 않도록 사건을 축소하고자 한다.

근로감독관은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 입장을 균형 있게 들어야 하지만,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개념과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종합적인 정황상 판단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기 어렵다. 근로감독관의 전문성과 성희롱 문제를 판단할 지방노동청 내 위원회 구성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다.

성희롱 행위자 제대로 처벌해 선례 남겨야

직장 내 성희롱·성폭행의 특징이라면?

권력관계다. 성희롱 행위자(가해자)는 대체로 사업주 또는 상사다. 여성노동자회가 2016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상사 61% ▲사장 23% ▲동료 14% 순으로 그 수치가 84%에 달했다. 이는 같은 해 직장 내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의 57%가 직장 내 성희롱 문제제기로 인해 회사로부터 불이익 조치를 받았고, 72%의 피해자는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응답에서도 확인된다.

물론 100%는 아니다. 하급직원이 성희롱 행위자인 경우도 있다. 동료들 간의 성희롱 문제가 발생한 경우는 정서상의 권력관계로 분해해서 볼 수도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업무의 중요성을 맡은 고참과 신참 등이 그 예이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놓인 조직내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권력관계다.

성희롱 발생 후 해당 직장에 재직 중인 피해자가 28%에 불과하다는 수치는 충격적이다.

회사에서 업무상 중요한 사람이 성희롱 행위자다. 여기에 한국에서는 상사의 문제를 인정하고 하급직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을 조직의 위계를 무너뜨리는 일로 여기는 잘못된 문화가 있다. 구시대적인 조직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조직 문화를 바꾸고, 현실적으로 문제 발생을 줄이려면?

사회적인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한국사회는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개인과 개인의 문제로 여긴다. 특히 ‘너의 잘못은 없느냐’는 식으로 성희롱 피해자에게로 원인을 왜곡해 돌려버린다. 직장 내 성희롱은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다. 직장에 건전한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범법행위다. 회사 차원에서 해결해야하는 문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업장 내에서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성희롱 행위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가 축적되면서 직장 내 성희롱이 줄고, 사회적 인식도 달라진다.

직장 내 성희롱·성폭행을 당했을 때 바람직한 대처법은?

어렵더라도 거부의사를 명확히 표현해야 한다. 회사에 문제를 알리고, 성희롱 행위자를 처벌해 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 회사에서 문제제기가 수용되지 않으면 전문기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전문가와 상담을 하고, 고용노동부 등 관계기관에 진정을 넣을 수도 있다. 자신의 잘못으로 발생한 문제가 아님을 명심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때 입증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희롱을 당할 때 증거를 확보하기란 어렵다. 그렇다면 이후 통화녹음이나 이메일,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문제가 된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성희롱 행위자 스스로 당시 정황에 대해 진술하게 만들어야 한다. 포착한 증거는 잘 챙겨둬야 한다. 부정하는 경우가 많아 이 또한 사실 쉽지 않은데, 이때도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받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