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원히 민주노총이 자랑스럽다
나는 영원히 민주노총이 자랑스럽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8.02.1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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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와 투쟁, 다양한 전략 고민해야
[커버스토리] 안녕? 스물두 살 민주노총 ③ 신승철 민주노총 지도위원

2013년 7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1년 6개월. 짧았지만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시기였다. 경찰 병력이 사상 처음으로 민주노총 본부로 진입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첫 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 직접선거가 치러졌다. 정권 초 서슬이 시퍼렇던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언급하며 노동계를 압박해 왔다.
신승철 민주노총 전 위원장(현 지도위원)은 숨 가빴던 1년 6개월을 마치고, 금속노동자로 되돌아갔다. 그는 80만 조합원의 무게를 내려놓고, 공장에서 막 출하된 자동차를 카 캐리어에 올려놓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철도노조의 2013년 12월 파업을 이끈 김명환 위원장이 민주노총 집행부를 이끌게 되자 “묘한 감정이 들었다”고 전했다.
신승철 지도위원은 1직 근무 후 피곤한 와중에도 민주노총의 미래 전략과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의 조직 분리 총회까지 여러 주제에 대한 생각을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그에게는 민주노총이라는 말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 신승철 민주노총 지도위원

민주노총 위원장이던 당시는 박근혜 정부 초기이면서 민주노총에는 고난의 시기였던 것 같다. 위원장으로서 대정부 투쟁을 기획하고 조직하면서 고민이 많았을 텐데?

이명박 정권의 본질을 확인했고, 박근혜 정권이 들어섰다고 해서 악화되면 악화됐지 더 나을 건 없다고 알고 있었다. 그걸 힘으로 조직해 내려는 노력이 필요했는데 어려웠다. 박근혜 정권 초기여서 퇴진 구호를 걸지 말지 고민들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언급한 게 민주노총 침탈 때다. 경향신문사 13층과 15층까지는 경찰이 들어왔지만 위원장실과 사무총국이 있는 14층에는 못 들어왔다. 그때 처음으로 중집이 결의해서 박근혜 퇴진을 내걸었다. 이후에 총파업 시기의 문제가 있었다. 즉각 총파업을 했을 경우 분노로 조직될 수 있는 가능성 있던 반면에 2월 25일로 결의했을 때에는 이성적 판단과 확신을 가진 조직이 가능했다. 돌아보면 즉각 총파업을 때렸을 때 더 큰 분노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어떤 게 옳으냐의 문제는 아니다.

총파업은 한상균 집행부에서도 계속 시도됐지만, ‘총’파업이 아니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단위노조가 연맹을 만들고 연맹의 가입으로 민주노총이 구성된다. 의결구조가 각자 있는 거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결의하면 금속노조 의결구조 안에서 결의돼야 하고, 그걸 수임 받은 단위노조에서도 결정돼야 한다. 운동 초기에는 지침이 획일적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지금은 민주노총 구성원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진 만큼 지침이 하부로 내려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정치적 문제로 위에서부터 하부로 내려가면 많이 약해지는 것 같다. 간부들이 노력하지만 민주노총 전체의 총파업으로 만들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지난한 직선제 도입 과정에 종지부를 찍은 위원장으로 남았다. 두 차례의 직접선거가 치러지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직선제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고, 부정적 요소도 있다. 나는 대의원대회에서 결의된 직선제를 집행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직접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직선제를 통해서 민주노총이나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관심과 자기 의사를 직접 표할 수 있다는 긍정적 판단을 내렸다. 이제는 민주노총의 조직 발전 전망과 노동조합 내 민주주의를 어떻게 완성할 것인지와 관련해 변화가 있어야 한다. 검증되고 확인된 사람들이 제대로 민주주의를 수행할 수 있는 구조가 직선제인지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노동운동 상층부에 대해 조합원들의 관심이 떨어진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더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텐데, 되게 어렵다. 조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한 달 반 가까이 매달려야 할 정도로 금전적, 시간적 손실이 있는 게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이 민주노총 입장에서는 위기일까, 기회일까? 어떤 것에 가깝다고 보는지?

항상 위기는 극복하면 기회가 되고 놓치면 위기다. 박근혜 정권이라는 조건은 위기였다. 그것을 극복하면서 조직이 유지됐다면, 문재인 정부 이후에는 고민이 많아졌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 온 국민이 광화문에서 정권을 주저앉히고 새 정부를 뽑았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권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거라고 본다. 그만큼 수구세력의 저항이 분명 있을 거고. 기득권의 저항이 노동조합에는 직접 피해로 온다. 정권은 최저임금 인상이나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의지를 갖고 있지만 의도와 달리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는 구조다. 박근혜 정부가 내려가고 옛 새누리당은 분열됐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아예 정권과 자본이 한 색깔이면 싸우면 된다. 자본은 교활하고도 교묘하게 적대적인데 정권은 우호적인 것 같은데, 그러면 민주노총이 과거처럼 투쟁일변도로 갈 수 있을지 점검해 봐야 하지 않겠나. 조직 내부도 마찬가지다. 정규직 노조가 있는 반면에 절반에 가까운 인원은 비정규직, 최저임금 대상자다. 교섭력과 투쟁력이 있는 정규직 노조는 자기중심의 요구를 놓고서는 대화를 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정권이 정규직 전환하라고 했는데 공공기관에서조차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는 마당에 문재인 정부를 욕할 수도 있다. 신중하고 깊게, 다양한 입장과 정책적 대안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어려워질 거라고 본다.

상당히 민감한 문제 같지만 아무래도 소속 사업장이니까 묻자면,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의 정규직-비정규직 조직 분리 총회를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기아자동차 집행부가 조직 분리안을 올렸을 때 전직 위원장들, 제조직 대표자들은 반대 선전전을 했다. 나뿐만 아니라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에서 민주노조 역사를 같이 했던 전직 위원장 전부가 반대했다. 조합원들에게, 정규직 노조가 이긴 통상임금 소송은 즉각 실행돼야 한다고 얘기하면서 비정규직 동지들에게 껄끄러우니까 나가라고 하는 것은 양심을 파는 행위라고 말했다. 일부 현장조직 활동가는 너무 세게 이야기한다고 하더라. 대공장 노동조합운동이 우경화 됐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이해관계가 충돌된다고 해서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지 노동조합이 고민해야 한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나의 임금과 고용이 중요하지 그 이상 산별노조나 민주노총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 않을까?

민주노조운동이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96-97년 노개투(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를 거치는 과정에서 양 날개 전략을 썼다. 하나는 산별노조운동, 또 하나는 정치세력화.

문재인 정부가 산별교섭 강화를 노동공약 안에 넣었으니까 변화가 있겠지만 지금은 산별노조가 역할을 할 수 없는 구조다. 단체협약 효력 확장이나 산별교섭 법제화를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는 조직 형태만 산별일 수밖에 없고 정규직 노조의 수많은 양보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산별노조는 돈과 사람과 조직을 연대하는 평등이 기본 정신인데, 의무사항만 있고 산별노조를 통해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 않나. 그건 노동운동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현 사회구조에서의 어려움이다. 사회 변화의 희망이 없다면 선택은 내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다.

또 아픈 역사이지만 노동자가 정치를 해야 세상이 바뀌는 게 맞다. 그런데 진보정당이 분열됐다. 사람들이 여기에 가졌던 희망을 꺾게 만들었다. 진보정치로 사회가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안 보이니 조합원들이 우경화 된다.

민주노총 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이, 그리고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적이 있었다면 언제였나?

많다. 진짜 많다. 민주노총 침탈 때 200명 정도 경향신문 건물 안에 있었는데 밤 9시에 상황이 종료되고 밖으로 나오는 데까지 2시간 정도 걸렸다. 연단도 없이 스피커 하나를 놓고 그 위로 올라갔을 때 수없이 터지는 플래시에 놀랐고 기다려 준 조합원들의 눈을 보면서 놀랐다. 내가 민주노총 위원장인 게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한 얘기가 ‘민주노총은 경향신문사 14층에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당신이 민주노총이라고 얘기했다.

항상 민주노총이 자랑스러웠다.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때도 있지만 내부의 문제로 운동을 부정당하는 것은 내 과거를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민주노총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에는 여전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떤 집행부든 실기를 할 수 있다. 그건 운영의 문제이지 민주노총이 문제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총은 영원히 자랑스럽다.

위원장을 하면서 꼭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이 있다면?

정말 많다. 전략위원회와 정책대대를 통해서 집행부와 상관없이 유지될 수 있는 민주노총 10년간의 전략을 토론해보고 싶었다. 자본은 자본가에 의해서 회사의 미래 전략이 정해지지만 노동조합의 미래는 위원장의 머리에서 나오면 안 된다. 골간이 되는 조직과 구성원이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워낙 싸움에 지쳤으니까. 딴에는 미래전략위원회를 제대로 못 만든 게 제일 아쉽다. 또 하나는 삼성전자서비스 열사들이나 압구정 현대아파트 열사나 이 땅의 소외된 열사들의 고통을 담아 사회적으로 큰 싸움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것. 그게 우리 사회의 격차를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힘들었던 것 같다.

민주노총 새 집행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내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여전히 수구세력의 탄압이 있는 상황에서 너무 단편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내부가 통합될 수 있는 집행을 했으면 한다. 의견의 대립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교섭이든 투쟁이든, 언론이 좋아하듯 문재인 정부로서는 빨리 대화에 참여하기를 바랄 수 있는데 통합적 사고로 운영해 줬으면 좋겠다. 공동의 목표, 조직적 발전과 성과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의견은 보완적 기능이 있다. 이것을 살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통합력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