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연맹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
총연맹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8.02.12 14:37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든 노동자 아우르는 민주노총 되기를
[커버스토리] 안녕? 스물두 살 민주노총 ⑤
“우리는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조직의 확대 강화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산업별 공동투쟁과 통일투쟁에 기초하여 산업별 노조에 기초한 전국중앙조직으로 발전할 것이다.”
1995년 11월 11일 민주노총은 창립선언문에서 산별노조 지향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16개 산별 가맹조직은 민주노총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이다.
강령과 규약이 아무리 명쾌하게 규정해 놓았다고 해도, 노총과 산별의 역할과 책임, 권한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 이야깃거리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일이 되게 하는 민주노총, 잘 굴러가는 민주노총을 위한 현재의 고민은 무엇인가?

민주노총은 80만 명의 조합원, 16개 산별 가맹조직, 16개 지역본부로 구성된 거대 조직이다. 그만큼 다양한 견해와 입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가맹조직들이 민주노총에 기대하는 점도 많다. 단위사업장의 투쟁을 지원하는 역할, 법·제도 개선을 위해 정부와 교섭하는 역할, 비정규직 및 최저임금 대상자의 권익을 증진하는 역할까지 다양하다. 가맹조직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마주한 현안 속에서 민주노총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주노총이 민주노총에게

민주노총은 선언을 통해 “민주노조운동의 성과를 계승”했다고 밝히고 있다. 민주노총 창립선언문에는 “해방 이후 우리 노동자들은 독재 정권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 민주노조를 지켜왔고,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2,000여 명에 이르는 구속자와 5,000여 명이 넘는 해고자를 낳는 등 온갖 탄압 속에서도 조직을 확대 발전시켜 왔다”고 적혀있다. 민주노조운동의 근간은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에서 찾을 수 있으며,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본격화 됐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지난해 9월 6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꼬회관에서는 87년 노동자대투쟁 30주년 기념 토론회가 민주노총 주최로 열렸다. 김승호 전태일대학 대표는 주제발표에서 “어용적 노조 활동에 대한 비판과 대안 모색은 단위사업장이나 기업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전국 중앙 수준에서도 함께 이루어져야 했다”고 회고했다. 자본이나 국가 권력에 종속되지 않은 전국중앙조직이 필요했고, 그것이 민주노총 창립의 의의라는 얘기다.

민주노총 창립이 민주노조운동의 성과라면, 오늘날 민주노총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민주노총은 2016년 8월 22일부터 1박 2일 동안 정책대의원대회를 진행했다. 민주노총 20년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된 정책대의원대회에서는 ‘민주노총이 바라본 민주노총’에 대해 토론이 진행됐다. 민주노총은 이날 정책대의원대회에 앞서 5월부터 7월까지 단위조직별로 의견을 공유하고, 그 결과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취합했다. 민주노총 정책대의원대회의 목적은 미래 전략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민주노총은 “현재의 16개 산별연맹 구도에서 조직대상자들이 일부 중첩되면서 조직 갈등이 증가하고 있고, 이러한 경향이 정치적 이견에 따른 분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상당히 존재한다”고 스스로를 진단했다. 또 “산별노조운동이 정체되고 과도기적 단계를 뛰어넘지 못하면서 여전히 노조 활동의 우선순위가 기업별 조합원에 집중됐다”고 평가했다.

대표성의 문제,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도 주요한 의제였다.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6년 노동조합 가입자 수는 196만 6,881명으로 노조 조직률은 10.3%였다. 이중 민주노총 조합원은 64만 9,327명(33.0%)이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 대상 노동자 1,917만 2,000여 명 중 3.4%만이 민주노총 조합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민주노총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표성에 대한 지적은 꾸준히 있었다.

가맹조직은 ‘통합력’을 원한다

형식에 그친 산별노조, 매우 저조한 조직률, 그리고 조직 간 갈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민주노총 가맹조직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공통된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전국중앙조직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각자가 속한 산별조직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조상수 전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공공부문의 노동조합과 정부 간 교섭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고임금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들이 함께 있는 만큼 이들의 요구를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총연맹의 역할에는 단위사업장이나 산별조직의 투쟁을 지원하는 일도 있겠지만, 전체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1차적인 역할”이라며 ILO 핵심협약 비준, 노동법 개정 등의 투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창형 전국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회복투) 위원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조창형 회복투 위원장은 공무원노조 설립신고 반려와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와 관련해 “민주노총이 한 것은 각 산별에 맡겨놓는 것이었지, 주체적인 역할을 한 부분은 없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공공부문 해고자들의 복직이 선례가 돼 민간부문 해고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서비스업종에서는 단연 최저임금 문제가 우선이었다. 김광창 서비스연맹 조직실장은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고 있는데, 총노동 차원의 대응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김광창 조직실장은 “재벌과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자 사이의 공정한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개별 연맹이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장옥기 건설산업연맹 위원장 직무대행은 노동의 양극화 축소를 위한 노력을 주문했다. 건설노동자들은 일용직이거나 특수고용형태 종사자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고용이 매우 불안정한 탓에 별도의 법률(건설근로자법)로 보호를 받고 있다. 장옥기 직무대행은 “건설근로자법은 양대 노총이 노정교섭을 통해 함께 발의에 참여했다”면서 “이에 대한 책임과 후속조치가 따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산별 가맹조직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입장은 조금씩 달랐지만, 내부의 조직 갈등을 조정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바람이었다. 가맹조직별로 조직 대상이 겹치면서 생기는 갈등이 대표적이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조직 간 갈등 때문에 소모적인 싸움을 해왔다”며 “가맹조직과 산하조직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광창 서비스연맹 조직실장 역시 “최근 서비스연맹에서 올해 10만 명을 조직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조직 갈등이 있을 수 있다”면서 조정자 역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