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청소노동자,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말하다
비행기 청소노동자,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말하다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2.1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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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의 무신경함, 노동자 건강권 위협하는 최대의 적
[리포트]비행기 청소노동자 건강권

“알지도 못하는 화학세척제로 기내 식탁(meal table)을 닦았어요. 비닐장갑조차 끼지 않고 청소작업을 한 노동자들의 건강도 염려되지만, 그 식탁에서 음식을 먹는 고객들은 과연 괜찮았을까요?”

작년 12월 29일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 내부를 청소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사측이 지난 3년 동안 최저임금 인상분을 착복했다고 고발하고, 올해 최저임금 인상분을 제대로 반영할 것을 관철하기 위해서다. 파업 7일차, 인천공항에서 김태일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부 지부장을 만났다. 그는 임금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며 청소할 때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노조가 의혹을 제기한 화학세척제부터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위해 사업주가 의무적으로 실시해야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교육 미비, 열악한 노동환경 등 기내 청소노동자의 건강 위협 요소들을 진단했다. 그 중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현장 노동자들의 어렵다는 호소에도 꿈쩍 않았던 무신경한 사측이었다.

운항 스케줄 맞춰 속도전으로

대한항공 비행기 청소노동자들은 인력파견업체 이케이맨파워 소속이다. 대한항공은 항공운수보조업을 한국공항에 맡겼다. 한국공항은 해당업무 중 기내 청소업을 다시 이케이맨파워에 줬다. 다단계 도급 구조다. 대한항공 기내 청소노동자 380여 명 중 240명이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에 조직돼 있다.

청소노동자들은 비행기 운항 일정에 따라 대기와 속도전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비행기 연착에 따라 24시간 공항에 있기도 한다. 오전 6시에 출근해도 오후 8시가 넘도록 퇴근을 못하는 날이 많다. 노조는 노동자들의 연장근무를 한 달 평균 60~70시간정도라고 추산한다.

모든 비행기 청소는 20~30분 안에 끝내야 한다. 비행기당 청소비용이 지불되는데, 청소 상태를 최종 점검하는 대한항공 관리자(FM)가 5분이라도 청소마무리가 늦어졌다고 보고하면 돈을 받지 못하는 시스템이다. 기내 청소 노동자들은 크게 ▲남자 객실팀 ▲여자 객실팀 ▲바큠(Vacuum, 진공 청소기) 등으로 구분된다. 이들은 담요와 시트 교체·정리부터 식탁 정비, 신문과 책자 비치, 바닥 진공청소까지 수행한다.

신입 직원의 눈에 들어온 ‘독(毒)’

한국공항 비정규직지부는 작년 4월 조직됐다. 지난 13일간 총파업으로 이들의 임금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졌지만, 노조 결성 후 가장 먼저 제기한 문제는 청소 작업 중 사용하는 유기용제였다. 기내 청소노동자들은 CH2200과 TEMP라는 화학물질을 10년 넘게 사용해왔다. 물수건만으로는 없어지지 않는 음식얼룩과 볼펜자국도 금세 닦였다.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기내 청소노동자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물질들이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달랐다. 김태일 지부장은 “대졸자인 한 직원이 CH2200이 들어있는 통에 ‘독(POISON)’이라고 쓰여 있다고 사용해도 괜찮은지 묻더라”며 “그 전에는 사용하는 물질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다”고 말했다. 화학물질에 관심을 두고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회사가 유해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노동자에 대한 어떤 법적 의무도 이행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됐다.

노조는 즉각 중부고용노동청 산재예방과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6월 이케이맨파워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이 진행됐다. 회사는 MSDS(Material Safety Data Sheet)와 관련해 시정조치를 받고 과태료를 냈다. MSDS는 물질안전보건자료로, 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위험성, 응급조치요령, 취급방법 등 16가지 항목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는 화학물질을 제조 또는 사용, 저장, 운반하려는 자는 MSDS를 작성해 게시하고,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위해 교육하는 등 적절히 조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중부고용노동청은 문제가 제기된 두 가지 물질의 시료를 채취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분석을 의뢰했다. 이케이맨파워는 노동자들이 CH2200을 옮겨 담아 사용하는 분무기에 MSDS 정보가 적힌 스티커를 붙였다. 약 한 달 뒤 ‘작업환경측정 및 특수건강진단 대상 물질이 아니다’라는 판정이 나왔다. 회사는 산업안전보건공단의 ‘대상 물질 해당 없음’을 근거로 인체에 무해하다며 현장에서 계속 사용하도록 했다. 원청인 대한항공 또한 공문을 통해 CH2200을 다시 사용할 것을 요청했다.

현장 어려움에 무심한 태도가 낳은 불신

노조는 화학세척제를 다시 사용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의 분석 결과가 나온 뒤에도 현장에서 해당 물질을 일괄 수거해 자체적으로 사용을 중단시켰다. 이후 지금까지 이케이맨파워 기내 청소 노동자들은 물수건으로만 기내청소를 하고 있다.

노조는 산업안전보건공단의 결과가 나온 이후인 작년 11월 CH2200 시료를 민간 ‘사람과 환경연구소’에 다시 맡겼다. 김태일 지부장은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나온 기술사가 시료를 떠가면서 유해하지 않다고 단정을 지었다”며 “조사를 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믿을 수 없었다. 민간연구소를 찾아가 50만 원을 주고 시료분석을 맡겼다. 그 결과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고 전문가 의견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노조의 의뢰로 시료를 분석한 최희몬 사람과 환경연구소 연구원은 “CH2200에 에탄올과 MMB라는 물질이 포함돼 있었다”며 “에탄올과 MMB는 유기용제로, 점막과 피부에 자극성이 있을 수밖에 없는 물질”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성분에 대한 동물실험은 일부 진행된 바가 있었는데, 유해성이 입증되진 않았다”면서도 “분무해 사람이 호흡했을 때 어느 정도로 유해한지는 지금까지 조사된 바로는 명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화학물질이든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는 것이 기본자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과 환경연구소는 시료 분석 결과를 정리해 회사에 의견서를 보냈다. ‘CH2200 사용 근로자는 특수건강검진대상은 아니나, 관리대상 물질임으로 특별교육은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최소한 피부 접촉이 많은 손의 경우 비닐장갑과 같은 최소한의 보호구를 지급하고, 피부에 알레르기가 나타나는 경우엔 사용을 중지하도록 교육해야한다고 전했다.

노조가 파업을 하는 과정에서 화학세척제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었다. 사측은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노동자들에게 보호구를 제공하지 않은 점과 관련한 교육이 부족했던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당시 CH2200을 희석해서 사용했으며, 현재 두 가지 화학물질을 모두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 종결된 문제이자, 더 이상의 지적과 비판은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10년간 해당물질을 사용한 노동자들에 대한 건강에 대한 염려는커녕, 책임소재를 회피하기에 급급한 태도였다.

인체 무해? “기내라는 작업환경 고려해야”

파업시기 노조가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와 함께 147명의 기내 청소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안전보건 관련 설문조사 결과 사업자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은 화학물질 사용에 따른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는 진행형임을 알 수 있다.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는 위험성이 존재하는 물질에 대한 MSDS가 비치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12%가 피부 발진 등의 증상을 경험하고도 직업에 따른 질환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개인적으로 치료를 받았음이 확인됐다.

설문에 참여한 한 청소노동자는 “주부습진처럼 손바닥 껍질이 다 벗겨지곤 했다”며 “비닐장갑이라도 낄라치면 중간관리자들이 집 청소를 할 때도 그러냐며 못 끼게 했다”고 증언했다. 또 “회사가 화학세제를 어느 비율로 희석하는지 노동자들은 알 수 없다”며 “기내 청소를 점검하는 정비사 중에는 식탁 얼룩이 잘 안 진다고 원액을 가져오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김태일 지부장은 “가정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락스나 살충제도 환기가 안 되는 밀폐된 공간에서 집중적으로 사용하면 얼마든지 유해할 수 있다”며 “인천공항의 대한항공 기내 청소노동자들은 유해성 논란의 해소되지 않은 화학세척제를 사용하지 않지만, 다른 기내 청소 업체들은 여전히 많은 화학물질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행기 청소노동자들이 사용하는 물질과 작업환경에 대한 조사가 한 번도 제대로 진행된 적이 없다”며 “지금이라도 기내 청소 현장에서 쓰는 화학물질과 사용방식 등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여름에는 청소하기 더 힘들어요. 찜통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오한순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 교육부장은 객실 청소 담당이다. 승객들이 모두 내리면 비행기는 에너지 절감모드로 들어간다. 기온이 27도에서 30도까지 웃도는 한여름에 쇳덩어리인 비행기는 말 그대로 찜통이 다. 아침에 들어왔다 저녁에 나가기 위해 외곽지에 세워 둔 비행기는 더하다. 청소하러 들어가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작업하는 동안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하는 기내 청소노동자들의 하늘색 유니폼은 흠뻑 젖다 못해 땀에서 나온 소금기로 얼룩얼룩 해진다. 좁은 통로를 다니며 좌석 사이사이를 닦고, 커버를 교체하는 일은 그 자체로 근골격계질환의 원인이 된다. 겨울이면 비행기는 냉골이다. 겨울은 겨울대로 또 녹록치 않다.

강충원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기내 청소는 일반 청소와 달리 대부분 순식간에 이뤄져야하기 때문에 내부에 먼지가 많이 발생하지만 환기가 잘 안 된다”며 “유해하지 않은 화학물질이라도 노동자들이 심한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 다른 물질로 대체를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청소작업 중 사용하는 화학물질은 밀폐된 환경에서 그 농도가 더 높아질 수 있고, 땀이 나는 노동 강도와도 관련이 있다. 화학물질을 교체하는 것만으로 해결이 안 될 수도 있다”며 “회사가 노동자들의 고통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느냐가 노동자들이 얼마나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한편 기내에 사용하는 소독약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진공청소기 일명 바큠을 어깨에 매고 바닥 청소를 하는 배상철 인천공항지부 조직부장은 “기내에서 독한 소독약을 너무 많이 쓴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기내가 뿌옇게 될 정도로 소독약을 뿌리고 나면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우리는 마스크도 하나 없이 시간에 쫓기며 무슨 물질인지도 모른 채 그 안에서 청소를 한다”며 “호흡기가 약한 정비사들은 소독약을 뿌리지 말라고 호소할 정도다. 그러면 밖으로 나가거나 틈새로 뿌려버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소독약을 뿌린 비행기는 제대로 환기도 시키지 않은 채 승객들을 태워 나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