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만들던 손으로 연주하는 기타
기타 만들던 손으로 연주하는 기타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02.1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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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의 노래

농성장 안에는 저마다 여러 사연이 있다.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 농성장에서 만난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장기 투쟁 사업장 중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긴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1월 13일에는 투쟁 4,000일을 기록했다. 어김없이 오는 새해에 올해로 투쟁은 12년째, 그들이 긴 투쟁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연대’ 그리고 ‘기타’였다.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이 공장을 떠나 기타를 치며 투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찾았다.

붉은 머리띠 대신 기타를 손에 들다

“투쟁 시작했을 때 악기를 배웠으면 지금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지 않았겠어?”

투쟁 5년째가 되던 2011년 여름,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던 이들 중 한 명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머리띠 둘러매고 팔뚝질하는 것보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연대하는 시민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냐는 이야기였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이인근 콜텍지회 지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그간 투쟁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이니 기타를 잘 치시겠네요”였기 때문이다.

이 지회장은 1998년 콜텍에 입사하고 회사가 폐업을 선언한 2007년까지 9년을 가까이 기타 공장에서 일했지만 직접 연주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는 다른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한번 해볼까?” 처음엔 그런 마음이었다.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 밴드인 ‘콜밴’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콜밴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었다. 목표 금액인 500만 원 달성은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NO CORT(=콜트 기타를 사지마세요)”. 당시 콜트 악기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있었지만 오랜 시간 제 손으로 만들어온 기타였기에 콜트 기타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 지회장과 조합원들은 고민 끝에 국내 공장에서 기타를 생산하고 있다는 타 회사의 기타와 카혼, 베이스, 통기타를 구입했다. 지금 콜밴의 주인공들은 이인근(보컬, 기타), 김경봉(베이스), 임재춘(카혼) 3명의 콜텍지회 조합원들이다.

“미래에 도래할 경영위기”에 문 닫은 공장

콜트악기와 콜텍은 기타 제조사다. 국내에서 콜트악기는 전자기타를, 콜텍은 통기타를 생산했다. 일자리가 부족한 계룡시 안에서 콜텍 대전 계룡 공장은 가뭄에 단비와 같은 일터였다. 그래서 였을까, 회사는 노동자에게 언제나 철저한 ‘갑’이었다. 먼지투성이 작업장, 불규칙한 출퇴근 시간, 남녀차별, 열악한 임금,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용불안. 어느 날은 “일하다가 창문 밖을 쳐다보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공장에 있는 멀쩡한 창문마저 덮어버렸다.

이를 보다 못한 이 지회장은 2006년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콜텍의 모회사인 콜트악기가 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 노동조합을 설립한 것에 비하면 한참 늦은 노조 설립이었지만 이제라도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해 보자며 노동자들이 하나로 모였다. 노조를 만들자마자 총 직원수 90여 명 중에 67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노조 가입 대상이 현장 주임까지였던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현장 노동자 전원 노조 가입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콜트악기를 일컬어 노조가 점령한 회사라며 무노조인 콜텍은 내 가족이라고 이야기하던 경영진은 콜텍 노조 설립 1년 후인 2007년 경영 위기를 주장하며 폐업을 선언, 콜트악기 포함 국내 생산 공장을 모두 폐쇄한 후 생산 공장을 중국과 인도네시아로 옮겨버렸다. 투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공농성부터 시작해 해외 원정투쟁, 분신과 단식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했다.

콜텍 해고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24조인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을 위반한 해고라며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법원은 회사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2009년 서울고등법원은 콜텍이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매년 60억 원 이상 상당한 액수의 당기 순이익을 낸 점, 특히 2006년에는 76억 원의 당기 순이익을 낸 점, 2006년 9.1%의 임금인상안에 합의하는 과정에서 주문량이 회복되고 있다고 밝힌 점 등을 근거로 정당한 이유가 없는 ‘무효의 해고’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은 원고 패소취지로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을 했다. 이 지회장은 “같은날 오전, 오전 콜트악기 노동자들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났기 때문에 콜텍도 당연히 승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청천벽력 같은 판결이었다”며 그날을 떠올렸다. 2014년의 파기 환송심 판결에서 법원은 “현재는 흑자라 하더라도 장래에 올 지도 모를 경영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판결하며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콜텍 해고 노동자들은 “모든 정리해고를 합법화시키는 판결”이라며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과 “미래에 도래할 경영 위기를 해고 이유로 든다면 우리나라에서 정리해고 못할 사업장이 어디 있겠냐“며 황당함을 드러냈다.

오랜 투쟁을 위로해준 기타

콜밴을 만들어 활동한지도 어느새 7년째다. 처음 기타를 연습할 때 물집 투성이었던 손끝엔 어느새 굳은살이 자리 잡았다. 콜밴이 처음 대중에게 선보인 곡은 민중가수 연영석 씨의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 할 줄 아나>였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몸 버리고 속 버리고 일했는데

이제 와서 필요 없다 이제 와서 나가라니 웬 말이냐”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가 있냐는 질문에 이 지회장은 코드가 두 개인 쉬운 곡을 선택한 것뿐이라고 웃으며 대답했지만 이 노래가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았다는 것은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밴드 ‘푼돈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기타를 배우고 나중에는 노래를 직접 만들기 위해 돌아가면서 가사를 써오기도 했다. 임재춘 씨가 만든 <서초동점집>은 정리해고를 정당하다고 판결한 법원을 점집으로 비유해 풍자한 노래다. 이 지회장은 지난 2008년 양화대교 남단 송전탑에서 고공 단식농성을 한 경험을 <고공>이라는 가사에 담았다.

2011년 12월 28일, 이 지회장은 아직도 콜밴의 첫 공연 날짜를 기억한다. 홍대 라이브 카페 ‘빵’에서 그동안 연습한 성과를 선보였다. 이날 공연에는 수많은 연대단위와 음악인들이 함께했다. 어설픈 연주 실력에도 관객들이 박수를 쳐준 것은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과 절실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힘, 연대

현재 콜트악기지회에는 20명, 콜텍지회에는 25명의 조합원이 조합원 자격을 가지고 남아있다. 이들 중 실질적으로 투쟁을 이어가는 조합원은 콜트악기지회에서 1명, 콜텍지회에서 콜밴의 멤버인 3명으로, 총 4명이다. 투쟁 초기에는 직접 담근 고추장과 된장, 장아찌 등을 판매한 돈으로 생계비를 충당했지만 12년이라는 세월 앞에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투쟁을 뒤로하고 생계를 선택해야 했다.

이 지회장은 파기 환송심 판결 이후 사법부에 대한 배신감으로 투쟁을 이어갔지만 그것도 잠시뿐, 진짜 투쟁을 계속해나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은 연대였다고 전한다. 공장에서 쫓겨나던 날 두발 벗고 현장으로 달려와 준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와 콜밴의 노래를 들어주던 시민들, 인디밴드를 포함한 문화예술인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강조한다. 이 지회장은 “많은 곳에서 연대해주고 지지해주고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 견딜 수 있었던 것이지 그들마저 없었다면 이렇게 긴 시간을 버티기엔 힘들었을 것”이라며 그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콜밴은 지금도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수요문화제 진행 중 홍대 라이브 까페 빵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콜밴은 “이제 기타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긴 투쟁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존재가 됐다”고 말한다. 

고공

- 이인근 작사, 콜밴과 푼돈들 작곡

어둠과 밝음이 만날 즈음 등짐 한 보따리 짊어지고

쇠기둥 가지를 붙잡고 허공으로 올랐다

한참 후에 당도한 땅과 하늘 사이

텅 빈 공간 그곳에 둥지를 틀었다

한쪽 가슴에 아픔을 묻고 다른 가슴에 그리움 품고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다

고프다 고프다 배가 고프다

아프다 아프다 맘이 아프다

서럽다 서럽다 삶이 서럽다

땅 위에선 볼 수 없는 것 느낄 수 없는 것 여기에

세상은 분주하지만 허공은 한가롭다

쇠기둥을 흔드는 바람 흐느낌에 소름끼칠 때

병과 달 마음에 들어와 서럽게 감싸준다

한쪽 가슴엔 아픔을 묻고 다른 가슴엔 그리움 품고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다

고프다 고프다 배가 고프다

아프다 아프다 맘이 아프다

서럽다 서럽다 삶이 서럽다

고프다 아아

아프다 아아

서럽다 아아

아아아

 

서초동 점집

- 임재춘 작사, 콜밴과 푼돈들 작곡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 이백십육 그곳에는

정미넝쿨로 둘러싸인 점집이 하나있네

그곳의 간판엔 자유 평등 정의가 새겨있네

열네 명의 검은 망토 점쟁이가 요상하게 점을 치네

그곳에 시위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

정치판결 파기환송 집어치고 법대로 하자

난생처음 가 본 법원 변호사 살 돈도 없어요

못 배운 게 죄인가요 알아듣게 얘기해요

미래의 경영까지 점을 치는 신 내린 무당인가

미래의 경영까지 점을 치는 개떡 같은 법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