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출발하는 민주노총, 시스템 바로 세워야
새로 출발하는 민주노총, 시스템 바로 세워야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8.0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명의 손끝에서 조직운영 질서가 훼손될 수 있다
[커버스토리] 안녕? 스물두 살 민주노총 ⑥

옛말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말이 있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 하나가 집단에 해를 끼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달리 해석하자면 아무리 깨끗한 집단도 그 안에 소속된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으로 욕을 먹을 수 있으니 모든 행동을 함에 있어서 삼가고 조심하라는 경계의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더구나 그 사람이 집단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다면 행동 하나하나에 있어 더욱 조심해야 함은 당연하다. 특히나 민주노총의 임원처럼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위치에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사건의 발단, 안전보호구 납품

2016년은 민주노총이 한창 어려움을 겪던 시기다. 한상균 위원장은 2015년의 민중총궐기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상태였고, 민주노총의 살림을 총괄해야 할 이영주 사무총장도 같은 이유로 수배된 채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경향신문 건물 밖으로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거기다 2대 지침을 비롯한 각종 노동개악을 폐기하고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평상시에도 마찬가지지만 이 같은 비상시기라면 더욱 더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 상식적인 자세다. 더구나 민주노총의 고위 임원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혹여 작은 행동 하나가 큰 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노총 부위원장 K씨의 행위는 이 같은 상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 시기 민주노총이 처한 상황을 감안해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사과하는 선에서 무마됐지만, 사건과 직접 연관돼 있는 금속노조에서는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사건은 2016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준에 미달하는 보호구가 납품됐다는 제보가 금속노조에 도착했다. 피로예방매트를 납품하던 곳으로 E사가 있었는데, E사 제품은 샘플로 제출했던 것과 달리 성능이 떨어지고 문제가 있다는 제보였다.

제보를 받은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노안실)에서는 즉시 사업장별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각 사업장에 설치된 E사의 피로예방매트를 수거해 성능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G지부에서 제보와 같은 하자를 확인할 수 있었고, G지부 노안실에서는 회사 관계자와 함께 문제의 매트를 납품한 E사 대표를 불러 제대로 된 제품을 납품하라는 취지로 엄중 경고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E사 대표가 이 같은 경고에 대해 ‘협박하는 거냐’는 반응을 보이면서 고성이 오가는 상황이 됐다는 점이다. 급기야 E사 대표는 G지부가 갑질을 한다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에 이르렀고, G지부 노안실에서는 더 이상 E사로부터 납품을 받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E사 대표는 이런 상황이 되자 G지부 노안실에 전화를 걸기도 하고 ‘사과하고 싶다’ ‘만나자’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서 마무리됐다면 불량제품을 납품한 업체를 배척하는 노동조합의 통상적인 업무가 진행된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민주노총 부위원장, 사업장에 직접 전화하다

하지만 여기에 새로운 변수가 끼어들었다. 2016년 5월 30일 저녁 무렵, G지부 노안실장은 민주노총 K 부위원장의 전화를 받게 된다. K 부위원장은 이 통화에서 “알고 지내던 E사 대표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는데 요즘 G사 때문에 힘들다고 하더라”면서 “E사 대표는 부당한 방법으로 사업을 하는 친구가 아닌데 혹시 오해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했다.

G지부 노안실장은 “개인적으로 억하심정이 있는 것은 아니며, 최근 납품 받은 안전보호구 품질조사를 하고 있으니 결과에 이상이 없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이어 K 부위원장으로부터 “다음에 E사 대표를 만나면 내가 이런 전화를 했다는 것을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전화를 끊었다.

통상적이고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G지부 노안실장은 곧바로 G지부와 금속노조에 이 같은 상황을 보고했다. E사의 매트 문제와 관련하여 G지부뿐만 아니라 전 지부에 대해 해당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지 여부와 해당 제품의 하자 여부를 조사하고 있던 금속노조는 G지부 노안실장의 보고를 받고, K 부위원장이 지위를 이용하여 납품업체와 사업장 단위노조 사이에서 부당한 알선을 행한 것이라 판단했다.

금속노조는 민주노총에 공문을 보내 K 부위원장의 사업장 보호구 납품 개입행위 진상조사와 징계를 요구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진상조사위원회(진조위)를 구성하되 징계는 진상조사 결과 이후에 논의하기로 결정했고, 6월 20일에 금속노조 담당임원을 포함하는 총 4인의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진조위는 해당 사건에 관련된 3명을 불러 진상조사활동을 진행했다. 우선 G지부 노안실장으로부터는 사건의 발단이 된 E사와의 이전 상황에 대해서 파악한 후, K 부위원장과의 통화내용을 들었다. G지부 노안실장은 조사를 마친 후 “이번 일과 같이 오해받을 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집행부가 바뀌어서 현장으로 복귀해 라인 작업을 하고 있는 당시 G지부 노안실장은 <참여와혁신>과의 통화를 통해 “당시 사안이 과연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사업장 노조간부에게 직접 전화를 할 만한 사안이었느냐”면서 “전화를 받았을 당시에는 노조 체계상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전화한다고 해서 뭔가 바뀌지도 않았을 것이고 나도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만일 초급간부가 그런 전화를 받았다면 충분히 압박으로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K 부위원장에게서는 E사 대표와 수년 전에 소개로 알게 되어 선·후배 관계로 지내왔다는 점을 확인했다. K 부위원장은 최근 3년간 E사 대표와 별다른 교류가 없었는데 5월 말경에 E사 대표로부터 “G지부 노안실장에게 전화해서 전화를 받거나 만나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E사 대표를 만나면 이런 전화를 했다는 것을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것은 공정하게 처리하겠다는 말을 해달라는 것이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밝혔다.

K 부위원장에 대한 조사 이후, 금속노조는 전화통화 횟수를 확인해 진상을 보다 명확히 파악하고자 진조위에 최근 3개월간 K 부위원장과 E사 대표와의 통화내역 제출을 요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진조위도 이를 받아들여 통화내역을 제출하라고 요청했으나, K 부위원장은 “내 행동에 대한 반성 속에서 진조위 조사에 충실하게 임했는데도 ‘최근 3개월간 E사 대표와의 통화내역 제출’ 요청은 진상조사 내용의 핵심을 벗어난 무리한 요청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를 거부했다.

진조위는 E사 대표를 불러 K 부위원장과의 관계와 전화를 하게 된 과정을 물었다. E사 대표는 G지부 노안실장과의 일을 설명한 후 “G지부 노안실장에게 정중히 사과한다는 문자를 발송하고 전화통화도 시도했으나 답변이 없어서, K 부위원장에게 전화를 해서 ‘오해를 풀 수 있도록 전화를 받거나 만날 수 있게 전화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면서 “그 이후 K 부위원장으로부터 ‘G지부와 통화했는데 제품 테스트에 문제가 없으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E사 대표는 “절박한 심정에서 하소연을 한 것인데, 상황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고 이야기했다.

일단은 덮고 넘어갔지만

진조위는 3명에 대한 대면조사를 통해 진상조사를 진행했지만, K 부위원장은 금속노조가 요청한 통화내역 제출을 거부하는 등 진상조사에 충실하게 임한 것은 아니었다. 진조위가 강제적인 수사권을 갖는 것은 아니고, 통화내역은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요구가 자신의 행동으로부터 시작됐으며, 책임 있는 민주노총의 임원이라면 공식 의사결정기구인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결정한 내용에 따라 진조위의 요구에 충실하게 따랐어야 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금속노조 간부 P씨는 “대공장에서 보호구는 원체 많은 조합원들이 사용하므로 큰 단위로 납품되는데, 보호구 업체와 사업장의 안전담당 총괄책임자를 부당하게 알선하려고 한 것으로,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민주노총 임원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것”이라며, “K 부위원장은 별 일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고 절대로 민주노총 임원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금속노조는 당초 이 사건과 관련하여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사건의 전말을 보고하고 K 부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제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K 부위원장의 사퇴 요구는 제기되지 못했다. 대신 진조위가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 진상조사 결과를 보고하고, 당사자인 K 부위원장이 중앙집행위원들에게 자신의 행동이 부적절했음을 밝히고 사과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당시 민주노총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총파업을 조직하고 있던 민주노총은 단 한 명이라도 아쉬운 실정이었고, 더구나 이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공론화되면 민주노총을 표적으로 삼아 공격거리를 찾고 있는 세력에게 빌미를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장 준비하고 있는 총파업의 정당성에도 손상을 입을 우려가 있었다. 이 때문에 금속노조 간부 P씨의 표현에 따르면 “눈물을 머금고 그냥 넘어간 것”이다.

이상의 문제와 관련하여 K 부위원장은 <참여와혁신>과의 통화에서 “진조위를 구성해 조사를 했고, 진조위에서는 처신에 문제는 있었지만 징계까지 할 사안이라거나 대의원대회까지 가지고 갈 사안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며 통화내역 제출 요구에 대해서도 “진조위에서 검찰조사도 아닌데 통화내역 제출 요구는 너무 심하다고 이야기했고, 만일 통화내역을 꼭 받아야겠다면 차라리 검찰에 고발해서 검찰조사를 받게 해달라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K 부위원장은 이어 “이 사건과 관련하여 화가 났던 것은 노조 노안실이 뭐라고 업체에 갑질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업체에 혜택을 주고자 한 것은 아니다”며 “G지부 노안실장에게 직접 전화한 것은 민주노총 노안실과 금속노조 노안실을 거쳐 공식 절차를 밟았다면 오히려 G지부 노안실장이 곤란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해 따끔하게 전화는 한 번 하되 사건이 커지지는 않도록 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거대한 제방도 손가락만한 구멍으로부터 무너진다

이 사건은 K 부위원장의 사과로 마무리됐지만, 한편에서는 민주노총의 조직운영 질서가 바로서 있지 못함을 보여준 사건이다. 민주노총은 조합원이 80만 명이나 되는 거대조직일 뿐만 아니라,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노동존중사회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조직이기도 하다. 나아가 그동안 민주노조운동의 성과를 자신의 성과로 간직하고 있는 조직으로서 우리 사회의 약자를 대변하고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는 것을 자신의 임무이자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조직이다.

이런 조직의 임원이라면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전후 맥락을 파악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 정해진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야 할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K 부위원장은 납품 개입 사건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문제의 전후 맥락을 파악하지도 못했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도 못했으며,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한 쪽의 말만 듣고 ‘노조가 갑질한다’는 식으로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을 내리고, 그러한 판단에 따라 절차를 무시하고 사업장의 노조 간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문제를 확대시켰을 뿐이다.

자신의 주장처럼 G지부 노안실장에 곤란해질 것을 우려했다면 처음부터 문제의 맥락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스스로는 선의로 그랬다지만, 주관적인 선의가 결과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K 부위원장의 행위는 결국 문제를 악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의 운영시스템을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이다.

K 부위원장은 모 공공기관의 민주노총 추천 사외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해당 공공기관에는 민주노총 소속의 노조가 구성되어 있다. 해당 노조 간부에 따르면 K 부위원장은 전임자에 비해 노조와의 소통 노력이 부족한 것으로 지적된다. 전혀 소통하지 않거나 노조의 입장과 다른 내용을 발언하여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노조와의 소통을 통해 해당 기관의 운영에 대한 사안을 심층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하면 관련성도 전문성도 없는 인물을 단지 임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공기관의 사외이사로 추천하기보다는 추천권을 전문성이 있는 산별연맹에 이양하거나, 반드시 민주노총의 임원이 사외이사를 맡아야 한다면 적어도 공공부문과 연관되는 산별연맹 출신의 전문성을 지닌 임원을 추천하는 것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직으로서 보다 책임 있는 자세일 것이다.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의 다른 조직이나 단체들에 비해 민주적 절차의 수립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출범 이후 정권이나 자본에 의한 압박 속에서도 헌신성을 바탕으로 조합원과 전체 노동자를 위해 노력해 온 임원과 간부들이 더욱 많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임원의 문제와 같은 사례를 체계적으로 걸러내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거대한 제방도 손가락만한 틈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K 부위원장의 행위와 같은 사례를 체계적으로 걸러내지 못하면 결국 조직을 무너뜨리는 발단이 될 수도 있다.

새 집행부 출범과 함께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민주노총이 거대담론뿐만 아니라 얼핏 보기에 별 문제없어 보이는 부분에서도 체계와 원칙을 바로세우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를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