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마주한 뒤 다시 열린 세계
나와 마주한 뒤 다시 열린 세계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2.1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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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분노-좌절-수용, 이제 다시 꿈꾸다
[인터뷰] 강원래 꿍따리유랑단 단장

사회에 대한 질문도, 개인적인 부분에 대한 물음도 강원래 꿍따리유랑단 단장의 대답은 자기 내면으로 향했다.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먼저 개개인이 바뀌어야함을 강조했고, 중년 가장의 외로움에 대해선 자기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클론이라는 가수로 활동하며 최고의 위치에 올랐을 때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시 무대에 섰다. 현실을 마주하고 스스로와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키운 내면의 힘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사회 곳곳에서 힘들어 좌절하고 주저앉아 버린 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겪은 강 단장을 만나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강 단장은 2014년 자신을 쏙 빼닮은 아들 선이를 만나 “여태 살아온 인생 중 가장 행복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지난 2014년 발행한 저서 <우리 사랑 선이>를 읽었습니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 삶에 대한 설계, 그리고 자기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글쎄요. 교통사고 이후 나를 좀 더 사랑하게 됐어요. 내가 누구보다 잘났다기보다는 ‘내가 나를 좋아해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좋아해 주겠나’라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먼저 피했어요. 지금은 같이 쳐다보죠. 이런 부분에서부터 자신감을 가지려고 했어요. 어떻게 보면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 같아요.

‘휠체어와 사귀는 중’,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표현을 많이 하시는데.

제가 가진 편견, 생각이 달라진 거죠. 처음엔 휠체어를 타는 것이 싫었어요. 보기도 싫고. 그런데 점점 배가 고파지고, 영화가 보고 싶어지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져요. 휠체어가 아니면 방법이 없더라고요. 휠체어와 점점 더 친해지고 더 예쁜 것을 타게 되고 관리하게 됐죠.

이승복 박사가 존스홉킨스병원 전문의일 때 미국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전신마비가 있어 본인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분이죠. 박사님의 휠체어가 너무 예뻐서 ‘얼마인지, 어디서 샀는지’ 물었어요. 근데 “몰라, 그걸 왜 알아야 해?”라고 답해요. 미국에서는 의사 진단이 있으면 휠체어를 주죠. 고칠 때도 사람들이 찾아와서 봐준대요. 그러면서 밖에 신호등이 얼마인지 모르는 것처럼 휠체어도 나라에서 다 만들어주는 것이라 모른다고 비유를 해요. 놀랐죠.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어요. 장애는 개인의 몫이에요.

의지로 극복해야하는 문제와 받아들여야하는 문제는 다릅니다. 그러나 사실 그 차이를 알기란 쉽지 않은 거 같아요.

대한민국에서 장애는 곧 극복해야하는 대상이에요. 장애인이라고 장애인증을 주고선 인정하지 말라고 해요. 장애인들에게 하는 유일한 칭찬이 ‘너는 장애인이 아니다, 너 장애인처럼 안 보여’라는 말인 이유예요. 그런데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의 대상이에요. 장애인 90% 이상이 ‘극복하세요’, ‘힘내세요’ 라는 말을 싫어해요. 그래서 장애극복상이 올해의장애인상으로 이름이 바뀌었죠. 그냥 칭찬이면 좋은데, 너는 을이고 나는 갑인데 힘을 줄 테니 너는 받아야해. 그런 측면의 어떤 강요가 있어요. 저도 많이 느꼈고요. 한국사회에서 사람들은 장애는 극복해야하고 이겨내야 한다고 배우는 것 같아요.

그런 한국사회가 변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바뀌는 것이죠. 우리는 어릴 때부터 여유보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방어적이게 자라는 것 같아요. 다양성에 대한 교육도 부족하고요. 가진 것을 떠나서 사람들이 조급해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살면 좋겠어요. 스스로도 들여다보고요.

제도적으로 갖춰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은 뭔가요?

영화에서 장애인이 비치는 모습이 좀 평범하면 좋겠어요. 저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악당뿐만 아니라 엑스트라 중에도 장애인이 많아요. 우리나라 영화에서 장애인은 어떤 사건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깔려요. 필요한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영화 출연자의 몇 퍼센트 정도는 장애인이 출연하도록 정하는 제도에 대해 주변사람들과 이야기 한 적이 있어요. TV 어린이 프로그램도 한 명 정도는 휠체어를 탄 아이가 나와서 함께 율동하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어요.

사고 이후 삶에서 달라진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생각하시는 측면이라든가.

별로 없어요. 생각은 원래 많았어요.

물론 다치기 전과 비교하면 할 수 없어서 빨리 포기해버리는 부분은 있죠. 예를 들면 혼자서 전등을 갈아 끼우는 것과 같은 일이요. 아침에 일어나면 사무실에 가서 춤을 추던 사람이 병원을 다녀야하고, 배려라고 하지만 친구들이 이전과 나를 다르게 대하는 게 답답하기도 했죠.

무대가 완벽해야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지난 2008년부터 여러 장애인들과 함께 꿍따리 유랑단을 이끌고 있는데, 함께 열심히 준비한 공연을 관객들에게 제대로 보여드리기 위해서 조명이나 음향 등을 더 꼼꼼하게 살펴요. 사고 나기 전이나 후나 똑같아요.

한국사회에서 중년인 아버지들은 외로움을 많이 느낍니다. 가족들과 함께해 행복한 것과는 다른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저서에도 외롭다는 표현을 좀 하셨는데?

많이 외로워요. 혼자라고 느껴질 때.

저는 외로울 땐 바람을 피죠. 남녀관계 바람이 아니라, 자꾸 할 일을 만든다는 점에서의 바람이요. 시나리오도 쓰고 최근엔 연극에 음향감독으로도 참여하고 있어요. 내가 뭘 한다는 것이 덜 외롭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을 자꾸 만들어 내요.

어제도 밤새 선이 로봇을 만들었어요. 나노 블록으로 선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주는데, 던져도 부서지지 않게 본드로 하나하나 붙이다보니 굳은살이 박힌 것처럼 손이 단단해졌어요. 가만히 있지 않아요. 이런 일을 찾아 하루하루를 안 지겹게 보내려고 노력해요.

한 가족 안에서 가장의 책임이 굉장히 큽니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들은 스스로에 대한 많은 부분을 포기합니다. 그것이 어느 순간 외로움으로 오는 것 같아요.

가장이라는 부담은 많았어요. 앞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진짜 막 힘들다가도 그 다음날이 되면 또 마음이 안정돼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의사에게 내 이야기를 했어요. 종교적으로 기도하거나, 점쟁이를 찾아가 좋은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나아가는 탄력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죠. 나의 고민, 내가 잘못한 것, 내 안에 있는 상처들을 되새겨 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이를 통해 내 콤플렉스를 장점으로 바꾸기 위한 생각도 해볼 수 있고요.

정말 힘이 들 땐 꼭 한번쯤은 손을 내밀어 봐야 해요.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잡아줄 사람들이 있어요. 혼자서만 앓으면 진짜 병이 생겨요. 꼭 정신과 치료가 아니라, 상담을 받을 수도 있겠죠. 진짜 도움을 주는 전문가가 아니어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상대 경험도 듣고요.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이혼남들이 모여서 같이 우는 장면이 나와요. 선진국에는 그런 활동을 활발하게 많이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못하는 점이 아쉽죠.

재활의 교과서라는 표현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강원래처럼 잘 살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표현이었어요. 사고 이후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했죠. 나중에는 장애가 없어져서 이 상황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고, 변하지 않는 상황에 화가 나서 미쳤어요. 물건을 때려 부수고 자해도 했죠. 그러다가 죽어버릴까 고통스러워하기도 하고. 그 시기를 거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으면서 현실을 수용했어요. 장애에 대해 제가 겪었던 ‘부정-분노-좌절-수용’의 과정을 보여드리려고 했어요.

어느 정도 이루고 계십니까?

1년에 두 번 정도 국립재활원에 가요. 환자들이 계속 그대로 있어요. 그러면 ‘여러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은 휠체어를 타고 밝게 생활하는 것입니다’고 말하죠. 제가 의사한테 들었던 말이기도 해요. 당시엔 저도 욕을 했어요. 그 의사가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서 춤을 추는 것입니다”라고 했을 땐 먹던 커피를 쏟아버렸고요. 지금은 재활운동을 하는 이들을 만나면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퇴원을 해서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해줍니다. 꼭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만은 아니에요. 같은 상황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해이해지는 스스로도 다잡아요.

가장 좋아하는 일은 춤을 추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고, 지금 꿍따리유랑단의 단장입니다. 지금 현재의 꿈은 무엇입니까?

지금 제일 큰 꿈은 클론이라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겁니다. 영화수업을 듣고 있는데, 교수가 갈등, 성공, 실패, 사랑 등을 영화적인 요소라고 설명해요. 이 모든 요소가 클론에 다 담겨있어요. 준엽이와 나의 우정, 다툼 그리고 사고. 또 재기와 사랑. 영화를 만들기에 이만한 소재가 없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클론은 한 번밖에 못 쓰는 소재예요. 잘 만들어야 하죠. 준엽이와 한번 영화화에 대한 이야기해봤는데, 저와 생각이 달라요. 저는 가요톱텐 1등이 시작인데, 준엽이에게는 엔딩이더라고요. 그 이후 이야기가 더 재미있는 것이라고 얘기해줬어요, 아직은 의견 대립이 있어서 찬찬히 더 생각해봐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