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경제가 택시기사를 잡아먹는다?
공유경제가 택시기사를 잡아먹는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8.02.1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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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택시업계, 승객 감소 우려에 ‘규제’ 목소리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직장인 A씨(34)에게는 매일 출퇴근이 고역이다. 그의 직장이 있는 서울 강남으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 1회, 지하철 1회, 다시 버스를 1회 타야 한다. 출근만 했을 뿐인데 하루 일을 다 한 것 같다.

다음 날 그는 우연히 알게 된 ‘라이드셰어링’ 어플을 실행했다.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하고 ‘매칭’ 버튼을 누르자 얼마 후 매칭에 성공했다는 팝업 메시지가 떴다. 총 17.9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데 나온 요금은 1만 1,500원. 같은 거리를 택시로 갔다면 1만 8천 원 정도 나왔을 것이다. 택시보다는 저렴하지만 매일 1만 원 넘는 금액을 교통비로 쓰기에는 부담이다. A씨는 급할 때 가끔 이용하면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버가 가고 ‘카풀 앱’ 왔다

공유경제(sharing economy)가 뜨고 있다. 공유경제는 재화를 소유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빌려 쓰는 경제활동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대에서 ‘내 것’을 가졌다면 공유경제의 시대에서는 ‘남의 것’을 빌린다.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을 굳이 살 필요 없다. 공유경제는 자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체제다.

공유경제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 남의 물건을 빌리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수요자가 일일이 공급자를 찾아다녀야 한다면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진다. 플랫폼은 수요자와 공급자를 매개해 준다.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인 ‘중고나라’나 ‘직방’ 같은 부동산 앱은 플랫폼의 대표적인 사례다.

공유경제가 가장 널리 접목되고 있는 분야는 차량 대여 서비스인 듯하다. 카셰어링은 10분 단위로 원하는 차량을 필요한 만큼 쓸 수 있어 이미 널리 이용되고 있다. 차량뿐만 아니라 이동 서비스 자체를 대여할 수 있는 ‘라이딩셰어링’(riding sharing)도 등장했다.

우버는 라이딩셰어링의 신호탄이었다. 승객과 운전자를 연결함으로써 이동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버는 운송사업자이지만 운전기사를 고용하고 있지 않다. 단지 승객과 운전기사를 연결해줄 뿐이다. 우버는 운전기사가 받는 요금의 20% 내외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우버는 출시와 함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우버에 대한 관심은 어느새 우려로 바뀌어 있었다. 우버를 통해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운전기사들을 노동자로 볼 것인지 논란이 됐다. 우버는 운전기사를 직접 고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일반적인 노동자처럼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택시업계의 반발이 컸다. 택시기사들의 수입과 고용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였다.

한국에서도 우버가 출시됐지만, 우버 측은 곧 사업을 접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택시업계의 반발 때문이다. 택시업계는 우버가 자가용 자동차 유상운송, 즉 돈을 받고 승객을 실어 나르는 행위를 금지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우버는 이 법에 저촉돼 사실상 퇴출됐다.

그래서 등장한 게 ‘카풀 앱’이다. 카풀 앱은 출퇴근시간대에 한정해 이동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만 빼면 우버와 똑같다.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운전자와 승객의 이동 경로가 비슷할 경우 둘을 연결해 카풀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풀러스’나 ‘럭시’ 같은 앱이 그 예시다. 풀러스는 2016년 6월에 출시된 후 1년 만에 누적 이용자 수 200만 명을 돌파했다.

풀러스가 서비스 가능한 이유는 여객자동차법에 저촉되지 않아서다. 현행 여객자동차법은 ‘출퇴근 때 승용자동차를 함께 타는 경우’를 자가용 자동차의 유상운송 금지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정부는 도심 교통체증과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여보자는 취지로 ‘승용차 함께 타기’(카풀)를 장려해 왔다. 풀러스는 오전 6시부터 11시까지,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만 서비스를 제공했다.

▲ 풀러스 앱(왼쪽)과 럭시 앱(오른쪽)을 실행한 모습. 스마트폰 캡쳐

출퇴근시간 선택제로 24시간 카풀 가능성 열려

택시업계, “입법 취지 벗어난 꼼수” 강력 반발

택시업계 입장에서는 카풀 앱의 등장이 달갑지 않다. 이들에게는 악당(우버)을 물리쳤더니 ‘대마왕’(카풀 앱)이 나타난 격이다. 가뜩이나 택시의 과잉공급으로 하루 운송수입이 해마다 줄어드는 마당에 카풀 앱까지 등장해 승객을 빼앗아가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카풀 앱의 시장점유율이 3% 수준에 그친다고는 하지만 고사 직전에 놓인 택시업계에게는 그마저도 아쉽다.

그런데 최근 카풀 앱의 24시간 서비스가 시작됐다. 풀러스는 지난해 출시 1주년을 맞아 풀러스는 이용 가능 시간의 제약을 없앴다. 그러면서 기막힌 논리를 꺼내들었다. 이른바 ‘유연근무제’ 도입이다. 많은 기업들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직원들의 일·가정 양립을 도모할 목적으로 출퇴근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출퇴근시간을 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니 앱 이용 가능 시간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게 업체 측의 주장이다.

택시업계와 카풀 앱 업체의 논쟁은 여기서 시작된다. 택시업계는 카풀 앱 업체가 여객자동차법의 자가용 유상운송 예외조항을 악용한 꼼수를 부렸다고 주장한다. 막상 여객자동차법에는 출퇴근시간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한다는 규정이 없다. 해당 조항이 삽입된 때는 1994년으로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택시업계는 국회가 여객자동차법을 개정해 카풀 앱의 영업을 규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은 이미 한 차례 집단행동을 벌인 바 있다. 지난해 11월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전택노련),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 등 택시 노사 4개 단체는 서울시청 인근에서 카풀 앱 규제 촉구 집회를 열었다. 2014년 우버 퇴출을 요구한 이후 두 번째다.

사태가 커지자 정부는 카풀 앱 업체와 택시업계 간 토론을 기획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산업위)는 소위 4차 산업혁명을 촉진하기 위한 ‘규제·제도혁신 해커톤’이 그것이다. 지난 12월 22일부터 1박 2일 동안 강원 원주에서 열린 해커톤에 양측을 초청해 끝장토론을 벌임으로써 타협을 유도키로 했다.

그러나 택시업계의 해커톤 참여는 성사되지 않았다. “카풀 앱 업체의 영업을 위해 규제를 푸는 일에 들러리를 설 수 없다”는 이유였다. 택시업계는 2월 1일 열리는 ‘1.5차 해커톤’에도 불참을 통보했다. 택시 노사 4개 단체는 1월 22일 공동으로 성명을 내고 “(4차산업위의)위원장과 대부분의 민간위원이 카풀 앱 업계와 IT업계 인사들로 구성돼 택시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해커톤의)객관성이 담보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에 상임위원회에서 관련 사항을 논의하자”고 촉구했다.

택시업계, 이번에도 승리할 수 있을까

택시업계의 주장대로 국회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전택노련 위원장 출신인 문진국 자유한국당 의원(비례)은 1월 8일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객자동차법에 자가용 자동차의 유상운송이 가능한 출퇴근시간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내용이 골자다.

앞서 지난 12월 15일 이찬열 국민의당 의원(경기 수원시갑)도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찬열 의원의 개정안은 여객자동차법 제81조의 “출퇴근 때”를 오전 7시부터 오전 9시까지, 오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로 구체화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찬열 의원은 개정안을 통해 “현행법 제81조 제1항을 빌미로 카풀을 표방한 스마트폰 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자가용을 이용한 불법 유상운송 알선 행위가 무분별하게 확대외어 ‘제2의 우버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며 “택시운수종사자의 생존권마저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찬열 의원의 지적처럼 카풀 앱의 24시간 서비스가 택시업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같은 경로를 카풀 앱으로 이동했을 때의 요금이 기존 택시보다 약 30% 가량 저렴하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시청에서 강남역까지 약 12킬로미터 구간을 택시로 이동할 경우 1만 2천 원에서 1만 3천 원대 요금이 나오는 데 반해, 풀러스를 이용하면 같은 구간을 1만 원에 갈 수 있다. 또한 운전자는 통상적인 출퇴근 때에만 승객을 태울 수 있지만, 승객은 목적에 제약이 없어 택시의 대체 수단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요금 측면에서 카풀 앱에 비해 택시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택시업계가 타 교통수단과의 경쟁에 익숙하지 않은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택시업계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제도를 통해 보호를 받아왔다. 택시의 총량을 규제해 신규 업자의 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제도나 유류비 중 부가가치세 항목의 대부분을 택시기사들에게 돌려주는 제도 등이 그것이다.

택시업계에 적지 않은 지원이 이루어지는 동안 운송시장 환경은 많이 달라졌다. 대도시에는 도시철도가 거미줄처럼 깔렸고, 국민들의 소득 증대로 1가구 1자가용 시대가 열린 지 오래다. 택시를 이용할 때의 이점이 새롭게 발견되지 않는 한 이용객 감소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서울시에서는 5년 만의 택시요금 인상을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부산에서는 이미 택시 요금이 인상됐고, 인천, 광주 등에서도 요금 인상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요인을 감안하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인상폭이 클 경우 택시의 가격 경쟁력은 더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카풀 앱 업계의 손을 들어준다면 택시업계에 큰 타격에 예상된다. 요금 인상에 걸맞은 자구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빈틈을 노린 ‘제2의 카풀 앱’은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