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 저성장 한계를 극복한 기업들의 생존 전략
[타산지석] 저성장 한계를 극복한 기업들의 생존 전략
  • 참여와혁신
  • 승인 2007.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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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지 않으면 넘어진다
기업 생존의 필수조건 ‘성장’

유호현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젝 웰치의 뒤를 이어 GE의 수장으로 선출된 이멜트의 취임 일성은 ‘성장’이었다.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추앙 받는 GE도 주저하지 않고 기업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성장’을 내세운 것이다. 이처럼 기업의 성장이란 기업 활동의 지속을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성장을 이루어야만 기업이 존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30년을 넘기지 못하고 수명을 다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나라 상장 기업의 평균 연령은 약 35년이고, 80년 이상의 장수 기업은 5개에 불과하다. 서구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1955년에 포춘 500대 기업에 들었던 회사들 중에 1994년까지 무려 전체의 68%인 340개 기업이 사라졌다. 이러한 사실들은 지속적인 성장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한국 제조업

일반적으로 기업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외부요인으로 해당 산업의 성장을 꼽는다.
대표적으로 마이클 포터를 비롯한 경쟁 전략가들은 이러한 산업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기업을 바라보았다. 즉, 성장 산업을 찾아 재빠르게 사업 모델을 구축하고 경쟁자들이 손쉽게 모방할 수 없도록 진입 장벽을 쌓는 것이 기업의 성장과 발전의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의 제조업은 그 동안 국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자 한국 기업들의 성장 원천이었다. 기업 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던 60년대 이후 한국의 제조업은 성장 산업 그 자체였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회복은 철강, 반도체, 조선, 자동차, 휴대폰, 가전 등 주력 제조업의 성장 덕분이었다.

그러나 시장의 성숙으로 인한 내수 시장의 포화, 중국의 급격한 성장과 공급과잉, 글로벌 경쟁의 격화 등으로 인해 한국 제조업이 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기업경영성과분석 자료를 통해 2000년에서 2005년간의 산업 총 매출을 분석한 결과 산업 세분류 기준(SIC 산업코드 세자리)으로 제조업 51개 산업군 중 약 39.2%인 20개 산업군이 연평균 GDP 성장률('00~'05 CDP CAGR=6.98%)을 밑도는 산업 성장률을 보였다. 한국 기업의 발전을 이끌었던 산업 자체의 성장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저성장 산업을 극복한 고성과 기업들

이에 저성장 산업에 속해 있으면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낸 국내 기업들의 경영 활동을 살펴봄으로써 한국 제조업이 직면한 산업의 성장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해보고자 한다.

국내 산업 환경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외감 법인 이상 15,054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했으며, 산업 특유의 경영 환경 요인을 제어할 목적으로 표준산업분류기준으로 세분류 산업군을 대상으로 했다. 분석 기간은 국내 표준산업분류기준의 최근 개정 시점이 1999년이라는 점과 IMF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2000년부터 2005년까지의 6년간을 설정하였다.

저성장 산업은 한국은행의 기업경영성과분석 자료의 산업별 매출 증가율과 동기간 국내 명목 GDP 증가율을 비교하여 선정했다. 이를 통해 산업 전체의 매출 증가율이 국내 GDP 증가율보다 낮은 저성장 산업들을 추려냈다.

또한 저성장 산업 내 고성과 기업들을 발굴하기 위해서 산업의 평균 매출 성장률과 평균 영업이익률을 도출한 후 해당 기업의 매출 증가율과 평균 영업이익률을 비교했다. 이를 통해 외형과 내실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수익을 동반한 성장(Profitable Growth)을 달성한 기업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들 기업들 중 기업 벤치마킹 대상으로 적합한 규모를 반영하기 위해 2005년 기준 자산 총계 및 매출 총액이 1,000억 원 이하인 기업들을 제외했으며, 2005년 영업이익률이 (-)인 기업들과 최근 연도에 매출의 역신장 추세가 뚜렷한 기업들을 제외했다. 마지막으로 고성과의 객관성을 갖추기 위해 동기간 제조업 전체 평균 영업이익률인 6.7%보다 성과가 낮은 기업들을 탈락시켰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내 저성장 산업 환경을 극복한 21개 기업을 도출했다.

 

어떻게 그들은 저성장 환경을 극복했는가

이들 기업들이 저성장 환경을 극복한 지혜는 부정적인 산업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들에게 시사점을 준다. 한국야쿠르트, 한국타이어, 아주산업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자.

>> 게임룰을 바꾸어 시장을 선도한다
산업의 지배자는 경쟁의 법칙을 깨는 경쟁 법칙 창조자(Game Rule Maker)였다. 경쟁 법칙 창조자는 기존의 경쟁법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새로운 경쟁법칙을 정립, 경쟁자가 모방하기 힘든 근원적 경쟁력을 누리기 때문이다. 이는 저성장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산업이 성숙해감에 따라 성장은 정체되고 모두가 다 아는 게임룰에 집중한다. 그러나 고성과 기업들은 발상을 전환함으로써 경쟁법칙의 창조자가 되었고 시장을 선도했다.

한국야쿠르트의 사례를 보자. 현재 한국야쿠르트는 국내 발효유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1971년 유산균 발효유를 국내에 최초로 도입한 '야쿠르트'를 시작으로 발효유 시장을 개척해온 이 회사가 지금까지 그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대표 브랜드인 윌과 쿠퍼스의 성공 덕분이다.

유산균 발효유를 국내에 처음 도입한 것처럼 한국야쿠르트는 윌과 쿠퍼스를 통해 장 건강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경쟁 법칙을 무너뜨렸다. 최초로 위, 간 등 유산균 음료의 부위별 기능성을 강조함으로써 발효유 업계를 기능성 음료 시장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시장 선도적 게임룰 전환은 다른 업체와 차별적인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 내었고, 뒤늦게 이 시장에 뛰어든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 전략적 의지를 가지고 과감히 미래에 투자한다
성숙 산업의 기업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산업의 역사와 함께 기업의 역사가 오래되었고, 새로운 신규 사업 투자가 상대적으로 활발히 전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고성과 기업들은 벤처 기업들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인 타이어 전문 회사로 우뚝 선 한국타이어의 성공 사례를 보자. 국내 타이어 시장이 성장 한계에 직면한 1998년 봄, 외환위기 여파로 경쟁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는 그 시기에 한국타이어는 중국에 3000억 원의 투자집행을 결의했다.
열악한 자금 상황과 해외 진출 경험이 부족한 시기였지만, 한국타이어는 신성장 동력 발굴의 전략적 의지를 갖고 뚝심 있게 추진했다. 중국 시장의 성공을 위해 노후화된 영등포, 인천 공장을 폐쇄하는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고, 필사적으로 현지 시장의 거래선을 발굴 했다.

결국 한국타이어는 중국 진출 4년 만에 중국 내 승용차 타이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현재 중국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4대 중 한 대는 한국타이어 제품일 정도의 큰 성공이었다. 이러한 성공의 원천은 한 박자 빠른 과감한 투자결정을 내려 현지 선발업체로서 프리미엄을 확보한 데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 적극적으로 외부의 성장 동력을 취한다
공급과잉으로 인한 성장 둔화는 산업의 성장 주기에서 성숙단계에 진입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성숙 산업에서는 소위 비유기적 성장(Inorganic Growth)을 통해 규모의 경제 달성 및 목표 시장 확대를 추진한다.

실례로 산업 성장률이 0~4%대인 미국과 일본의 건축자재 산업에서는 M&A를 통한 규모의 경제 확보 및 목표 시장 확대가 일반화 되어 있으며, 대표적인 성숙산업인 철강업체들도 생존을 위해 과감한 M&A로 덩치불리기를 하고 있다. 철강업계 1위인 미탈스틸은 선두를 확고히 하기 위해 올 상반기 2위 업체인 아르셀로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건자재 전문 기업인 아주산업은 인수 합병을 통해 새로운 신사업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대우자동차판매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자동차 관련 사업을 익힌 후 2002년 중고차유통 업체인 자마이카를 설립하고 2003년 세계 최대 렌터카 업체인 AVIS의 한국법인인 KRX(현 아주오토렌탈)를 인수한 데 이어 2004년 오토리스 사업 진출을 위한 아주오토리스를 설립하고, 2005년에는 정비 전문업체 아주오토서비스 설립에 이어 국내 3위 자동차할부금융업체인 대우캐피탈마저 인수해 중고차에서 자동차 금융에 이르기까지 종합 자동차 서비스 업체로 성공적으로 변신했다. 이를 통해 아주산업은 건자재와 자동차서비스를 양 날개로 해서 물류와 관광레저부문을 아우른 계열사 15개 중견그룹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새로운 성장 지역을 찾아 나선다
국내 시장의 수요가 정체되고, 공급 과잉이 심해짐에 따라 기업들은 새로운 성장 시장을 찾아야 했다. 이에 국내 저성장 산업을 극복한 기업들은 남들보다 빨리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자 노력했으며, 시장의 성장세가 높은 신흥 시장으로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러시아 정부에 대항하는 체첸 반군이 먹는 야전 식량이 한국야쿠르트의 용기라면인 ‘도시락’인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가 않다. 1980년대 말 부산의 러시아 보따리 상인들이 자사의 제품을 많이 사가는 것에 주목한 한국야쿠르트는 적극적으로 시장 공략을 추진했다. 열차여행이 잦은 러시아인들은 둥근 대접형보다 네모난 용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유 역시 ‘네모의 안정성’때문임을 파악했다. 잘 퍼지지 않는 쫄깃한 면발도 인기 비결이었다. 회사측은 즉시 ‘튼튼한 용기와 더 쫄깃한 면발’ 작업에 착수했고, 결과는 2004년 한 해 ‘러시아시장 2억개 판매실적’으로 나타났다. 현재 한국야쿠르트는 러시아 라면 시장의 20%, 용기라면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한국 타이어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타이어의 과감한 투자가 빛을 발한 것은 남들보다 한발 앞선 중국투자와 현지화이다. 거대 타이어 기업들이 중국시장에 본격적인 투자를 하기 전에 먼저 시장에 진출하여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제품을 적극적으로 개발한 것이 현재의 성공 기반이 되었다.

>> 차별화된 조직 역량을 만든다
남들보다 우수한 성과를 달성하는 기업들은 다른 경쟁자들과는 차별화된 핵심 자산을 가지고 있다. 특히, 다른 기업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조직 특유의 역량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고, 차별화된 생산성을 발휘한다. 이는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산업 내에서 자사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새로운 제품 등의 확산과 개발에 강력한 힘이 된다. 결과적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하는 핵심요인이 되는 것이다.

앞서 사례를 든 한국야쿠르트를 보자. 내놓는 음료마다 히트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이 회사의 성공 원천 중 하나는 바로 방문 판매조직, ‘야쿠르트 아줌마’들이다. 전국 읍 단위 이상의 지역을 12,000개로 등분해 관리하는 한국야쿠르트의 방문 판매 조직은 1971년부터 운영된 한국야쿠르트의 중심축이다.

1974년부터 상조회를 운영하여 판매원의 복지를 증진시켰고, 일정한 수입 보장, 장기 근속 포상 등의 장점은 판매원의 이직을 줄였다. 결과적으로 한국야쿠르트의 판매조직은 수 십 년의 베테랑 경력자들로 구성된 강력한 조직 역량을 갖추게 되었고, 이는 한국야쿠르트의 신제품을 빠르게 시장에 확산 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윌과 쿠퍼스로 새로운 게임룰을 만들어낸 한국야쿠르트는 ‘야쿠르트 아줌마’조직을 통해 빠르게 신제품을 침투시켰다. 기존과 다른 부위별 기능성 음료라는 다소 난해한 제품 컨셉을 쉽게 전파하면서 시장 구석구석에 제품을 알리고 침투시킨 것이다.

 

성장은 새로움에서 출발한다

기업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성숙산업이나 사양산업은 없다. 개별 기업의 전략 활동, 조직 역량에 의해 산업 자체의 저성장성은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저성장 산업을 극복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보여주고 있는 성장에 대한 갈망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 과감한 미래 준비는 산업의 저성장에 직면한 기업들에게 의미 있는 시사점을 주고 있다.
기존 사업의 틀을 벗어난 역발상으로 과감하게 도전하는 기업만이 성장의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