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청소노동자, 여성의날 결국 집단 삭발식
동국대 청소노동자, 여성의날 결국 집단 삭발식
  • 윤찬웅 기자
  • 승인 2018.03.10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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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전향적 제안 했음에도 거절 당해
"삭발식 이후 직접고용 투쟁으로 전환할 것"
ⓒ 윤찬웅 기자 chanoi@laborplus.co.kr

동국대 청소 노동자들이 결국 집단 삭발을 택했다. 노조탄압 의혹이 있던 용역업체 태가비엠의 퇴출과 정년퇴직자 충원을 요구하며 39일째 농성을 이어가던 지난 3・8 여성의날, 동국대 본관 앞에서 108배를 의미하는 18명의 청소노동자들이 집단 삭발식을 거행했다.

쌀쌀한 저녁 무렵 진행된 삭발식은 여성의날을 맞아 동국대 청소노동자를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모임, 동국대 총여학생회 ‘무빙’, 동국대 행동하는 페미니스트 쿵쾅, 청소노동자 문제해결을 위한 동국인 모임의 연대발언 및 학교 규탄 기자회견으로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청소노동은 성별화된 노동이고 저임금 고용에 불안정한 일터”라며 “동국대는 청소노동자들의 삭발은 운동 주체로서 여성의 결의이자 외침”이라는 뜻을 밝혔다. 연대발언에 나선 한정희 강서양천민중의집 사람과공간 대표는 "여성과 남성에 대한 근본적 차별이 있고 저임금 구조에 내몰리는 부분이 있다”며 "노동자의 문제임과 동시에 여성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노력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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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삭발식이 진행됐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시작한 식은 이내 눈물바다가 됐고 분노한 노동자들의 학교 규탄이 이어졌다. 김선기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조 교선국장은 “우리가 이렇게 힘이 없어서 삭발을 한다”며 “무리한 요구를 한 적도 없는데 이 분들이 정말 보수 언론이 이야기하는 강성노조인가”라고 비판했다. 삭발에 참여한 노동자 대표로 발언에 나선 김다임 서울일반노조 부위원장은 “학교가 민주노조를 깨려고 나선 만큼 이제 우리는 ‘사월 초파일’까지라도 계속 갈 것”이라며 “나이는 먹었지만 우리는 이 투쟁에서 승리할 때까지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노조에 따르면 전날인 7일에도 노사간의 큰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교직원 및 용역업체 직원 100여 명이 청소노동자 파업에 따른 청소작업에 나서면서 파업 효과를 지키기 위해 곳곳에 퍼져 청소를 막던 노동자들과 물리적 충돌을 빚었고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고령의 여성 노동자가 다수 발생했다는 것. 40일여의 농성 기간 내내 노동자들과 교직원 사이의 충돌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고령의 여성 노동자들이 대다수인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에게 욕설과 조롱, 폭력이 발생하여 논란이 있기도 했다.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은 작년 12월 정년퇴직자 8명에 대한 충원이 무산되면서 시작됐다. 그러다 지난 1월 동국대가 기존의 청소 용역업체와의 계약 만료 이후 새로운 두 개의 청소용역업체와 계약하면서 그 중 세브란스 병원 등에서 노조탄압 의혹을 받았던 업체인 태가비엠이 있어 갈등이 증폭됐다. 두 용역 업체로 쪼개진 민주노조 조합원들은 그간 용역업체로부터 인정받았던 교섭권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해 새로운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거부했고 1월 29일 집단 24시간 농성에 돌입, 갈등 해결의 기미 없이 이어지고 있다.

ⓒ 윤찬웅 기자 chanoi@laborplus.co.kr

학교 측의 강경 대응과 진전없는 협상 상황에 노조는 다소 전향적인 안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수 서울일반노조 위원장은 “그간의 사례로 보아 사업장이 많은 태가비엠과 계약을 하게 되면 기존 용역업체와 했던 것 정도의 교섭권조차 얻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그래서 사업장이 적은 그린씨앤에스 쪽에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을 배치하는 것만이라도 해달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태가비엠은 2016년 세브란스병원에서 교섭권을 둘러싼 노노갈등 유도 의혹이 있던 업체다. 용역업체 재입찰이 학교에 거절당하자 노조는 최소한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통한 교섭권 획득을 위해 두 군데로 나뉜 용역업체 중 민주노조 조합원들이 노조탄압 의혹이 있는 태가비엠이 아닌 다른 쪽 용역업체에 소속될 수는 없느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태가비엠 계약 해지 요구에서 노조가 한발 물러섰음에도 불구하고 삭발식이 예정된 시각까지도 결국 합의는 성사되지 못했다.

노조 측은 이날 8명의 정년퇴직자 인원충원에서 출발한 이번 투쟁이 노조탄압 의혹 업체 배제를 넘어 직접 고용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형수 위원장은 “차선책을 냈는데도 다 무산됐다”며 “학교가 노조 파괴에 목적이 없다고 하면 재입찰이라도 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삭발을 해도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면 우리 요구는 바뀌어야 한다”며 “이 문제의 본질인 간접고용을 없애고 직접고용으로 가도록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 윤찬웅 기자 chanoi@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