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경기는 회복되지만...
조선업, 경기는 회복되지만...
  • 윤찬웅 기자
  • 승인 2018.03.1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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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탈출 청신호, 호황와도 과제는 여전
[커버스토리] 대한민국 조선업, 지금! ①조선업 현황

대한민국의 조선업은 1970년대 이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며 경제성장의 상징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제조업의 중심이 중화학공업에서 반도체로 옮겨가는 와중에도, 선박은 자동차·가전 등과 함께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효자 수출품이었다. 한국 조선업은 일본을 제치고 선박 수주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영광의 시기를 보냈다. 그러던 조선업이 비참하리만큼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조선업 위기의 신호탄이었다. 전 세계적 경기침체로 물동량이 크게 줄면서 해운업이 타격을 받았다. 해운업의 충격은 1~2년 뒤 조선업으로 이어졌다. 세계 해운업체들의 신규 선박 발주는 급감했다.
조선사들은 수주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해양플랜트로 눈길을 돌렸다. 배럴당 100달러를 가볍게 넘길 정도의 고유가 국면에서 해양플랜트는 조선사들의 새로운 먹거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고유가 행진은 곧 끝났다. 대형 석유회사들이 유전을 개발할 동기를 잃고, 투자를 철회했다. 그들에게서 해양플랜트 설비를 수주했던 한국 조선사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조선업 위기의 원인을 놓고 다양한 지적들이 쏟아졌다. 가격은 중국에 밀리고 기술은 일본에 밀린다는 견해부터 극단적으로는 사양산업이라는 주장도 있다. 높은 수출의존도와 외부 환경에 민감함도 제기된다. 하청 중심의 생산구조로 인한 높은 재해율과 낮은 숙련도를 문제 삼는 이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조선업의 침체는 지역의 고용,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른바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소가 밀집한 거제와 울산의 고용은 초토화됐다. 울산의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는 2013년 6만 1천여 명에서 2017년 8월 기준 3만 8천여 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거제의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는 9만 3천여 명에서 8만 1천여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고용의 감소는 곧 지역 상권의 붕괴로 이어진다.
위기를 바라보는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의 시각은 어떨까? 그리고 조선업의 변화를 위한 큰 그림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지난 1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은 새해 첫 현장 방문으로 대우조선해양 미포조선소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 수년간 우리 조선 산업은 수주 감소로 사상 최악의 불황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저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가진 우리 조선 산업의 저력을 믿는다. 이 힘든 시기만 잘 이겨 낸다면 우리가 다시 조선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문 대통령은 위기 극복과 재도약을 위한 조선업 혁신성장 방안을 올 1분기 마련해 이행하겠다고 덧붙였다.

한국 산업 발전의 부흥을 이끌었던 조선업이 수년째 위기에 놓였던 가운데 드디어 업황이 회복세를 보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수주 감소로 인한 위기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지만 객관적 지표 회복의 관측으로 정부도 본격적으로 산업 구조 개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객관적 지표 변화로 시황 낙관

흔히 조선업 업황 확인을 위해 3가지 지표를 든다. 수주량, 건조량, 수주잔량이다. 국내 조선업 지표는 금융위기에 따른 해상물동량 감소, 선박 과잉공급 등으로 2016년 최저점을 찍었다. 그러나 신조선 발주량으로 본 2017년 한 해 국내 조선업 시황은 ‘수주절벽’으로 일컬어진 2016년의 충격에서 벗어난 모양새다. 조선해운시황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 2017년 한국의 선박 수주량은 645만CGT, 척수로는 176척으로 2016년의 216만CGT에 비해 198.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CGT는 선박 건조 난이도를 고려해 가중을 둔 표준화물선 환산 톤수다. 그러나 수주잔량은 1,625만CGT로 2016년 1,989만CGT에 비해 18.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수주실적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수주량이 연 건조량의 크게 못 미쳐 수주잔량 감소가 불가피하였던 것.

다른 업황 지표 중 하나인 클락슨의 신조선가 지수는 2016년 말 122에서 2017년 말 125까지 올랐다. 신조선가 지수는 1998년 1월의 신조선가를 100으로 두고 계산한 상대적 지표로 2008년 경제위기 이전 호황기에 185를 고점으로 하락세를 이어온 것이 2016년 이후 소폭 상승한 것이다. 전 세계 조선 수주량 증가와 더불어 시황이 드디어 바닥을 벗어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2018년, 완전한 회복까지 조선업 버텨줘야

2018년 전망은 어떠할까. 국내외 전문가들의 예상은 조심스러운 회복세 전망이 주다. 클락슨은 지난해 9월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2018년 2,780만CGT, 2019년 3,220만CGT, 2020년 3,470만CGT, 2021년 3,840만CGT, 2022년 4,270만CGT로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의 ‘2017년도 조선·해운 시황 및 2018년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해운 시황 개선, 낮은 신조선가의 투자 매력 등이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 세계 신조선 발주량은 약 27%, 한국의 수주량은 33% 증가한 수준이 될 전망이다.

더불어 국제해사기구의 평형수 처리장치 규제(선박 운항에서 균형 유지를 위해 필요한 평형수가 배출될 때 해양 생태계 교란을 막기 위해 버리기 전 해양 생물을 말끔히 제거하도록 국제 항로를 다니는 모든 선박에 처리장치 탑재를 의무화하는 내용) 및 황산화물 배출 규제(선박연료유의 황산화물 상한선 비율을 현행 3.5%에서 0.5%로 줄이는 규제) 시행 역시 예정되어 있어 신조선 수주량 증가 예측에 더 힘이 실린다.

다만 해외경제연구소의 동 보고서에 따르면 황산화물 배출 규제를 둘러싼 해운사들의 대응 방식의 불확실성, 유가와 LNG가격 변동에 대한 불확실성 등을 종합하면 2018~2019년은 금융위기 이후에 시작된 국내 조선산업 위기의 마지막 고비가 될 전망이다. 수주 시황 개선은 지속하겠지만 수주 회복에 이은 건조량 회복 지연을 고려할 때 조선업계가 완전한 시황 회복까지 조금 더 버텨줘야 한다는 것.

중소형 조선소 지원, 산업 생존 차원에서 절실

업황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과제는 남아있다. 중소형조선소 문제다. 규모로 보나 기술로 보나 중소형조선소는 같은 시기 수주 감소에 따른 타격을 더 크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2006~2008년까지 은행들이 중소조선소의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에 끼워팔았던 환헤지파생상품 키코(KIKO, Knock-In Knock-Out)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환율 급등으로 천문학적 손해가 되어 돌아왔다. RG 발급을 위해 은행의 권유를 거절하기 어려웠던 중소형조선소들이 조 단위의 환차손을 입고 무너졌다. 수주 감소에 키코에 의한 유동성 악화가 겹쳐 21세기조선, 세광, SPP조선과 같은 상당수의 중소조선소가 도산한 것이다. 이후 살아남은 성동조선해양이나 STX조선해양 같은 조선소들도 수조 원의 공적자금지원을 받고 정부의 수차례에 걸친 실사 과정을 밟고 있다. 성동조선해양의 수주잔량은 2016년 말 71만CGT에서 2017년 말 13만CGT로 감소했고 STX조선해양의 수주잔량도 같은 기간 40만CGT에서 29만CGT로 줄어들었다.

전 세계 신조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중소 조선 산업이다. 조선 시황이 회복되면 각 지역 거점을 책임지는 중소조선소는 지역경제와 고용창출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중소형 조선소는 톤수는 적지만 많은 척수를 생산, 기자재 산업에의 발전 기여도도 높다. 조선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사정학 연구 모임인 ‘4차 산업혁명과 조선해양산업 연구모임(조선 4.0)’의 대표이자 한국조선학회 중소조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순흥 KAIST 교수는 “정부 지원을 한다고 하면 산업의 허리 쪽에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며 “산업은 피라미드 구조로 성장하는 것인데 우리 조선업은 지금 허리가 잘록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위기는 넘기더라도 이후 대형 조선사만 살아남고 중소 조선소 및 기자재 산업 분야가 축소된다면 산업 전체 발전에 부정적인 전망이 예상된다는 것.

사업 다각화로 수요변동 대비해야

중소형 조선소가 맡아온 고용 역할 축소로 인한 지역 경제 파탄은 물론, 선박 척수가 중요한 기자재업의 축소, 향후 한국 조선업의 포트폴리오 균형의 붕괴 등으로 이어져 중국, 일본에게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한국 중소 조선업계가 첨단어선, 해양플랜트 지원선, 크루즈선 등 중형선이지만 고부가가치의 특수선 분야에 진입할 기술력은 갖추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약 300억 불의 세계시장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는 레저 선박 시장이나 시황에 비탄력적인 연안 선박 시장 등을 주력으로 고려하면 상선 시장의 수요 변동성에 따른 위험을 보완할 수도 있다. 한 교수는 “일본의 대형조선소들은 (80년대 구조조정 이후) 다 사라졌지만 중형 조선소들이 잘 하고 있다”며 “유럽도 호황이라는 크루즈선 만드는 조선소들이 다 중형”이라고 밝혔다. 중소형조선소들의 사업 다각화가 위기를 극복할 키가 될 수 있다는 것.

한 교수와 함께 ‘조선 4.0’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정미경 독일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은 “우리는 대형 선종 위주의 생산구조를 갖고 있는데 앞으로는 4차 산업혁명, 중국의 물동량 감소를 고려하여 대형, 중형, 소형의 선종 포트폴리오 균형으로 수요변동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정부가 대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게 되면 대기업 기술을 중형 조선소에 이전하는 조건을 달아서 자금지원을 한다거나 해서 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선의 수요변동성이 큰 만큼 상선과 더불어 요트, 여객선, 크루즈선 등 국내 조선업의 대중소형 선종 포트폴리오 구성을 통한 동반성장을 위해 정부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대형 조선소는 대형·고급상선(LNG선, LPG선, 대형컨테이너선·탱커), 해양플랜트 등이 주력이다. 중소형 조선소는 탱커, 벌크선, 컨테이너선, LPG운반선 등 상선을 주로 생산하는 점은 동일하나, 중형 크기의 선박에 집중하고 있다. 중소형 선박은 대형 선박 건조에 주력하는 대형조선소들이 커버하기 어렵다. 또한 대형이 고부가가치의 대형선박에 집중해온 것처럼 중소형은 크루즈선과 같은 사이즈에 맞는 고부가가치 사업이나 신수요 사업에 뛰어들 수도 있다.

금융 지원, RG 발급 외에도 정부 역할 있어

RG 발급 등 금융 부문 지원도 절실하다. 엄밀히 보아 금융은 조선업 바깥의 영역이지만 조선업은 사업 규모상 금융 서비스 없이는 성립될 수가 없다. 금융위기 이후 중소조선소는 어렵게 선박 수주를 해도 RG 발급이 안 되어 건조 계약이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의 RG 발급 유도를 포함한 국내 조선·해양산업 금융시장 육성, 관공선 RG 발급 생략 등이 문제 해결을 위한 우선적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지난 2017년 8월 정부가 RG 발급 지원 방안을 내놓는 등 중소조선소 지원에 나섰으나 보다 본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소장은 “한국 금융 쪽에서 산업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니 호황기에 분석도 없이 마구 빌려줬다가 손해를 보고 이제는 발급을 잘 안 해주는 경향이 있다”며 “정부가 될 사업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전문가들을 금융 쪽에 연결해서 수익을 제대로 낼 수 있는 중소조선소에 대해서는 지원을 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금융산업이 세계 1위인 조선 산업의 기술 발전에 못 따라온다”는 것이 정 소장의 촌평이다.

산업 구조조정 및 정부 지원도 보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한편 주기성을 가진 조선업 시황을 고려할 때 현재 구조조정 위주의 논의로 축약된 조선 산업 발전 논의가 새로운 산업 수요창출의 방향으로 진행될 필요도 있다. 한 교수는 “해운 조선 연계에서도 서로 협력할 부분이 많다”며 “해운 조선 협력이 잘되는 일본은 교통성 산하에 조선 산업, 해운 산업, 항만 산업, 항공 산업이 같이 들어가 있는데 우리는 산업부에 조선이 들어가 있고 해양부에 해운이 들어가 있어서 부처 협력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준비하는 조선업 혁신을 좀 더 큰 산업 생태계 관점에서 고려하여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

정 소장은 “상선 시장도 곧 바람이 불 것인데 지금부터 대비해도 시간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올 3월 내로 발표될 예정인 정부의 조선 산업 혁신방안은 업황은 물론 산업 포트폴리오 및 고용 전반을 고려한 비전 아래 마련된 정책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