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의 앞날은 정부의 손에 달렸다
조선업의 앞날은 정부의 손에 달렸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8.03.1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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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을 넘어 경쟁력 강화할 대책 나와야
[커버스토리] 대한민국 조선업, 지금! ②정부의 조선업 대책

대한민국의 조선업은 1970년대 이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며 경제성장의 상징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제조업의 중심이 중화학공업에서 반도체로 옮겨가는 와중에도, 선박은 자동차·가전 등과 함께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효자 수출품이었다. 한국 조선업은 일본을 제치고 선박 수주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영광의 시기를 보냈다. 그러던 조선업이 비참하리만큼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조선업 위기의 신호탄이었다. 전 세계적 경기침체로 물동량이 크게 줄면서 해운업이 타격을 받았다. 해운업의 충격은 1~2년 뒤 조선업으로 이어졌다. 세계 해운업체들의 신규 선박 발주는 급감했다.
조선사들은 수주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해양플랜트로 눈길을 돌렸다. 배럴당 100달러를 가볍게 넘길 정도의 고유가 국면에서 해양플랜트는 조선사들의 새로운 먹거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고유가 행진은 곧 끝났다. 대형 석유회사들이 유전을 개발할 동기를 잃고, 투자를 철회했다. 그들에게서 해양플랜트 설비를 수주했던 한국 조선사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조선업 위기의 원인을 놓고 다양한 지적들이 쏟아졌다. 가격은 중국에 밀리고 기술은 일본에 밀린다는 견해부터 극단적으로는 사양산업이라는 주장도 있다. 높은 수출의존도와 외부 환경에 민감함도 제기된다. 하청 중심의 생산구조로 인한 높은 재해율과 낮은 숙련도를 문제 삼는 이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조선업의 침체는 지역의 고용,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른바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소가 밀집한 거제와 울산의 고용은 초토화됐다. 울산의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는 2013년 6만 1천여 명에서 2017년 8월 기준 3만 8천여 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거제의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는 9만 3천여 명에서 8만 1천여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고용의 감소는 곧 지역 상권의 붕괴로 이어진다.
위기를 바라보는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의 시각은 어떨까? 그리고 조선업의 변화를 위한 큰 그림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이른바 ‘빅3’로 불리는 대형조선소 3사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이후 조선업의 침체는 그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조선사의 발주가 2016년 대비 늘어났다고는 하나 본격적인 회복세에 들어갔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는 강력한 자구안을 업계에 주문했다. 그 핵심은 도크 수와 인력 규모를 줄이는 것이었다. 정부는 3월 ‘조선산업 혁신성장 추진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중·일 모두 정부가 구조조정을 주도

세계 선박시장은 한국과 중국, 일본이 주도해 왔다. 시장점유율 기준으로 패권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가 중국으로 넘어가는 듯 보인다. 일본 조선업은 1970년대까지 주도권을 유지해 왔으나 1990년대 이후로 한국이 치고 올라오면서 하락세를 경험한다. 한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부동의 1위를 지켜왔다. 가장 마지막 주자인 중국은 정부의 강력한 육성 정책을 바탕으로 한국의 지위를 위협했다. 경기변동의 파고가 높아지는 가운데 일본은 재기를 시도하고 있다. 세계 조선업은 한·중·일 삼각구도로 형성돼 있는 모양새다.

일본 조선업은 3국 중 가장 먼저 구조조정을 경험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10여 년 동안 선박 건조 능력과 고용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이 기간 동안 일본 조선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수는 4분의 1로 크게 줄었다. 설비와 인력을 너무 많이 줄인 탓에 2000년대 들어 조선업이 호황일 때 성장의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일본은 조선업과 해운업, 해양산업 간 긴밀한 연계를 통해 국내 수요를 창출했다.

3국 중 가장 후발주자인 중국은 국가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조선업을 육성했다. 중국 내에서 사용되는 선박은 중국에서 건조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건조 능력을 대폭 키워 세계시장으로 진출했다. 그러나 2010년 무렵부터 중국 조선업도 세계적 불황에 직면하게 된다. 국가 주도로 설비 과잉을 해소하고, 규모가 작거나 건조 능력이 미미한 기업의 폐업을 유도했다. 호황 국면에 따라 급격한 양적 성장을 했으나 그만큼 불황 국면에 취약점을 드러냈다.

한국의 조선업은 일본의 침체를 틈타 성장해 왔다. 2008년 이전까지 유래 없는 호황을 구가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게 됐다. 키코(KIKO)사태로 중소조선사가 큰 타격을 입는 한편 대형조선사도 수주량 감소로 곤경에 처해졌다. 정부와 업계는 선박 건조의 대안으로 해양플랜트 사업에 눈길을 돌렸으나 저유가 국면으로 인해 실패를 경험한다. 2015년 ‘빅3’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수주잔량이 바닥을 드러내자 한국 정부는 설비 축소와 고용 감축을 골자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요컨대 3국의 조선업 구조조정은 정부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금 줄게, 자구안 다오’ 정부·채권단의 레퍼토리

한국 조선업의 구조조정은 재작년부터 본격화 했다. 국내 조선사는 극심한 선박 수주가뭄과 저유가에 따른 해양플랜트 채산성 악화 및 발주사의 인도 거부 등으로 적자가 쌓인 상황이었다. 적자가 누적되면서 채무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16년 빅3의 은행권 채무는 50조 원을 넘기기에 이르렀다. 재무건전성이 나빠지면 기업은 현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고 이는 또 다시 부실로 이어지며 악순환이 발생한다.

따라서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은 금융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이는 조선사들의 돈줄을 쥔 채권단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된다는 뜻이다. 다른 산업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조선업의 경우 선박 한 척의 가격이 워낙 비싼 데다 선주에 인도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자금 흐름이 매우 경직적이다. 조선사는 그 동안의 건조 비용 등을 마련하기 위해 선주로부터 대금의 일부를 선수금으로 받는다. 또 일부는 은행이나 회사채 발행을 통해 조달한다.

그런데 금융 중심의 구조조정은 산업의 관점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채권단은 조선사가 채무를 상환할 수 있는지 여부가 주된 관심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조선사들이 경쟁력을 갖추고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채권단에게 두 번째 문제라는 얘기다.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은 “오로지 기존의 부실을 털어내고 향후 발생할 부실을 차단할 목적만 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금융 중심 구조조정의 첫 번째 목적은 부실의 청산이기 때문에 유휴 시설 폐쇄 또는 매각과 인력 감축에 초점이 맞춰진다. 정부와 채권단은 빅3에 대해 고강도의 자구안을 요구했다. 자금을 지원해 줄 테니 부실을 어떻게든 막으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2016년 10월 정부가 발표한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에 따르면 조선 3사는 올해까지 도크 수를 23% 줄이고 정규직 인력 규모를 32% 감축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군산조선소를 폐쇄했고,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현대로보틱스 등으로 분사했다. 삼성중공업은 자산 일부를 매각하는 한편 1조 5천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대규모 적자의 원인이었던 해양플랜트 사업을 축소하고 자회사와 부동산을 매각하는 등 강도 높은 자구 계획을 실행 중이다.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 등 중형조선사들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조선업≠사양산업’ 시각 확산

금융 중심의 구조조정은 많은 후유증을 낳고 있다. 조선사들이 문을 닫거나 인력 감축이 단행되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빅3를 포함한 국내 중대형조선사들의 인력은 최근 3년간 7만여 명 줄었다. 정규직 노동자는 1만 8천여 명이 감소하였고, 사내하청 노동자는 5만 명 넘게 줄어들었다. 조선업에서 대량 실직이 발생함에 따라 조선소가 위치한 울산·거제·통영·고성 등의 지역경제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

이에 반해 실직한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정부는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고 여러 지원 대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정부는 일자리를 유지하는 기업에 직원 1명당 1일 5만 원(개선 후 6만 원)의 고용유지지원금을 지급하고, 실직자 대상 직업훈련 지원, 장애인 의무고용부담금 지원, 4대 보험료 납부기한 연장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혜택을 받은 기업 또는 노동자가 적은 데다 지원 내용 또한 미비해 실효성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정부·채권단이 몸집 줄이기를 요구하고 나선 밑바탕에는 조선업이 사양산업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조선사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발표될 때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거나 ‘혈세 낭비’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일각에서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여 한국 조선업이 설 자리가 없다는 다소 사실과 다른 이야기도 나왔다. 쇠퇴하는 산업에 돈을 쏟아부어봐야 별 수 없을 테니 최대한 몸집을 줄여 그나마 경쟁력이 있는 대형 선종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시각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최근의 분위기는 달라진 듯하다. 향후 1~3년간 불황이 지속될 수 있지만, 이 시기만 벗어나면 본격적인 회복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앞으로 강화될 환경규제에 대비해 친환경·고효율 선박을 개발하고, ICT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선박 개발의 주도권을 선점하면 한국 조선업이 재도약할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노후 선박의 교체 수요만 잡아도 상당한 수주량을 확보할 수 있을 거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는 조선업을 살릴 수 있을까

현 정부 역시 이와 같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김동연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관계부처 합동 장관 회의에서는 조선업 대응 방향이 논의됐다. 정부는 내년 이후로 시장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대비해 적극적인 투자와 경쟁력 확보를 꾀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는 우선 단기적으로 조선사들의 자구 계획 이행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한국해양진흥공사의 금융 지원을 통한 국내 선사의 발주를 지원한다. 또한 해양수산부가 오는 2021년까지 연간 1~2척씩 총 9척의 LNG추진선을 발주하는 등 공공부문 발주를 늘리기로 했다. 아울러 조선업의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기간을 연장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주력 선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건조 역량을 높일 방침이다. 또한 대기오염 저감 기자재나 해양오염 방지 시스템, 자가진단 및 고장 예측 시스템을 비롯해 기존에 개발된 국산 조선 기자재의 선박 탑재를 지원한다. 자율주행 자동차와 유사한 자율운항 선박을 개발하는 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다만 현 정부의 보다 구체적인 조선업 구조조정의 밑그림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정부는 주요 정책 과제와 사업 계획을 담은 ‘조선산업 혁신성장 추진방안’을 3월 중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는 ‘해운·조선 상생을 통한 해운강국 건설’이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해 노동계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김형균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은 “대형조선소는 현재 정부의 지원에 비켜가 있다”면서 “중형(조선소) 쪽이 더 큰 문제라서 정부가 여기까지 손을 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홍지욱 금속노조 경남지부장은 “아직은 구체적으로 정부의 입장이나 태도가 제기된 것이 아니어서 신뢰를 하는 건 아니다”라고 전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순흥 카이스트(KAIST) 해양시스템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지원을 하더라도 금융 뿐 아니라 기술 등 다양하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운에 지원을 하면 (선박)주문을 일본, 중국으로 가서 한다”고 지적하면서 해운과 조선, 그리고 담당 부처 간 원활한 협력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특정 산업이나 기업이 위기를 맞으면 어떤 식으로든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왔다. 경기가 좋을 때에는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외치다가도 상황이 어려워지면 정부를 찾는 게 기업의 생리다. 다르게 보면 이는 정부가 산업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함을 의미한다. 조선업 또한 마찬가지로 앞으로의 향배가 정부의 정책에 의해 크게 좌우될 것이다. 정부가 내놓을 ‘조선산업 혁신성장 추진방안’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