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사각지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사각지대
  • 윤찬웅 기자
  • 승인 2018.03.14 10:03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포트] 대학 산학협력단 내 사업 고용 불안정에 공공성까지 위협

대학 내 산학협력단을 통해 진행되는 공공사업에서 구성원들의 고용 불안정으로 인한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장기적 관점의 사업 운용이 필요함에도 산학협력단의 비정규직 고용 기조 때문에 사업의 안정성과 지속성이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년 지나도 비정규직에, 기금 줄자 잘릴 위기

최근 광주근로자건강센터가 6년째 이어온 운영이 중단될 위기를 맞았다. 김한수 광주근로자건강센터장의 주장에 따르면, 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센터 경영을 위탁받은 조선대 산학협력단이 장기 고용 시 고용 승계 소송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근로자들과 2년 이상 계약 불가 방침을 내세웠다고 한다. 2년 이상 일해 온 7명의 한시적 계약직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일을 그만두게 된 것.

김 센터장은 지난 2월 7일 언론을 통해 “조선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제시한 한시 계약직 고용원칙에 따라 광주근로자건강센터를 운영을 한다면 우리 직원 10명 중 7명이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며 “사업중단으로 그동안 축적된 인적역량과 사업관계망이 해체되는 상황에 대해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밝혔다.

문길주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사무국장은 “2년 이상 된 직원 7명을 다 자르고 가겠다는 건 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며 “그간 업무역량을 축적해온 광주 센터가 신규 센터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근로자 상담 업무 등 인적 역량이 센터 역량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사람을 계속 갈아치우는 형태로는 센터가 운영될 수 없다는 게 문 사무국장의 주장이다.

한편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도 산학협력단 내 사업의 고용 안정 문제가 불거졌다. 한예종청년예술가 일자리지원센터는 한예종 학생, 즉 예술가들의 일자리 지원을 위해 지난 2014년 설립됐다. 그런데 최근 운영자금인 문화체육관광부 체육진흥기금의 축소를 이유로 2년 이상을 근무해온 직원 3명이 2명으로 줄 위기에 처했고, 그 중 임신 9개월인 직원의 출산 휴가 및 육아 휴직에 대한 대책마저 전혀 마련되지 않아 문제가 됐다.

멀쩡히 운영되던 센터가 중단될 위기에 놓였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비정규직노조 측 주장에 따르면 학교 소속이 아니라 산학협력단 소속이라는 이유로 고용 책임을 회피했던 학교였지만 노조 측의 항의로 무기계약직 전환까지는 합의가 됐지만 계약만료 직전인 2월 말까지도 그 이행을 둘러싸고 양측의 갈등이 이어졌다.

출산 휴가 문제의 당사자인 이지혜 씨는 “3월 출산 예정임에도 2월 말까지 고용 전환 문제 해결이 안 되어 출산 휴가를 가지 못하고 출근했다”며 “임금체불이나 고용보험료 대리 납부 등 어려움 속에서도 학교 직원으로 해주겠다는 학교 말을 믿고 참고 기다렸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씨는 “무기계약직 계약서에 무기계약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조항이 있었다”며 “(센터 내) 다른 직원 두 명에게는 까닭 없이 계약만료 직전인 26일까지 계약서를 보여주지 않겠다고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노 측은 무기계약직 계약서에 체육진흥기금 범위 내에서 보수를 지급한다는 조항이 있어 학교 측의 설명과 달리 추후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예종산학협력단 측은 계약서 문제에 대해 산단이 무기계약직으로 계약한다는 말은 기금이 어떻게 되든 산단에서 임금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라며 우려를 일축했다.

외부 기금 및 예산 조달 위한 관문에 불과?

조선대의 근로자건강센터 운영사업은 안전보건공단이 직업환경의학과가 있는 대학 또는 산업보건전문기관에 위탁하는 공공보건 사업의 하나다. 한예종의청년예술가 일자리지원센터의 경우는 예술 진흥을 목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체육진흥기금을 받아 국립대학이 운영하는 취업 지원 사업이다. 대학은 법인격 문제로 자기 책임 하에 산학연협력 계약을 체결할 수 없어 산학협력단 법인을 이용해 공공기관과 계약 및 지원금 교부 등의 사업을 진행한다. 대학 산학협력단이라는 독립적 법인은 실질적으로 대학이 외부 기금이나 예산 조달을 위한 사용하는 수단인 것.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산학협력단 내의 고용은 사업 성질과 무관하게 고용유연성을 위해 비정규직으로 체결하는 경우가 많다. 외부 예산을 써서 진행하는 사업 중 지속성 및 안정성이 중요한 사업의 경우라면 자연스레 고용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어느 지방 국립대 산학협력단 노조 관계자는 “산학협력단의 현재의 위치상 노동자들은 대학 직원인지 별개의 회사 직원인지 불명확해 생기는 문제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학 규모가 작은 경우나 노조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 학교 직원에 비해 처우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 선언 이후 고용 떠넘기기 시작

한편, 이 씨를 비롯한 한예종 센터 내 직원들은 2017년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 이후 이뤄진 비정규직 전환심의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허덕희한국예술종합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은 “2017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정책 발표 이후로 학생과에서도 노골적으로 배제하기 시작했다”며 “노조 측에서 전환심의대상에 포함하라고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는데 학교 측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씨 역시 “그 일이 있고 문체부 문서등록시스템 나루에서 저희가 삭제됐다”며 “의미가 있고 보람찬 일이라 견뎌왔는데 이를 이렇게 유령 조직처럼 만든 것이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다.

상시지속 업무에 대한 정규직 전환 의무나 고용 승계 의무 등에 대한 지적에 한예종산학협력단 측은 문제가 된 직원들이 연구용역이며 당 사업은 프로젝트성 사업이라고 힘주어 주장했다. 졸업생과 재학생의 진로 지원 사업이 과연 단기적 프로젝트성 사업인지 판단 여부가 전환 대상 선정의 쟁점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고용노동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은 상시지속적인 연구업무를 수행하는 연구인력(보조 인력 포함)은 원칙적으로 정규직 전환대상이며프로젝트형 연구를 반복적으로 수행하여 사실상 상시 연구인력인 경우도 전환 대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측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에 산학협력단 관련 규정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환 대상 여부는 원칙적으로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업무의 상시지속성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라 “다만 현장에서 업무가 매우 다양할 수 있으니 원칙을 크게 정해 놓고 심의위원회가 재량으로 판단하게 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공공부문, 고용안정 사각지대는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은 현재 3단계로 나뉘어 계획 및 진행되고 있다. 1단계는 중앙행정기관, 자치단체, 교육청 및 국공립 교육기관,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등, 2단계는 자치단체 출연출자기관,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 자회사가 대상이며, 3단계는 민간위탁기관이 대상이다. 같은 산학협력단이지만 한예종은 국공립 교육기관으로 1단계 전환 대상에, 광주근로자건강센터는 3단계 전환 대상에 해당한다. 보통 산학협력단 내 고용은 산학협력단 본부 고용과 사업 내 고용으로 나뉜다. 본부 고용은 학교 직원이 되지는 못하지만 산학협력단 법인의 정규직 혹은 무기계약직으로 고용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앞선 두 사례와 같은 산학협력단 사업 내 고용이다. 외부 예산을 조달하여 진행되는 사업 내 고용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사업 내 고용은 보통은 일정 기간을 둔 프로젝트를 위해 채용되는 직원이고 사업 계획에 따라 1~3년의 채용이 주를 이루는데 이 업무가 프로젝트성이 아닌 상시·지속성을 띠는 경우 문제가 생기는 것.

지난 2017년 말 발표된 교육부의 대학산학협력 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모든 산학협력단 내 직원 3,459명 중 51.8%인 2,047명이 기간제 계약직인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근로자건강센터의 문 사무국장은 “물론 산학협력단 입장에서는 고용을 다 떠안아야 하느냐는 고민은 할 수 있다”며 “그러나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에 무료 건강 상담해주는 곳까지 이렇게 운영해서야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대학 산학협력단 내 사업 중에서도 공적 가치가 있는 사업을 운영하는 데에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것. 문 사무국장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정책 기조도 좋지만 실제로는 문제가 이렇게 생긴다”며 “이런 필수적인 사업을 민간위탁하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1단계 전환도 확정된 것은 아니”라며 “2, 3단계 쪽은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 중이고 앞으로도 연구용역을 거쳐서 추가적으로 실태조사나 기준마련을 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