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구체적인 지원정책을 내놔야 할 때
정부가 구체적인 지원정책을 내놔야 할 때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03.1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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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는 조선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것
[커버스토리] 대한민국 조선업, 지금! ⑤박경태 성동조선해양지회 수석부지회장

대한민국의 조선업은 1970년대 이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며 경제성장의 상징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제조업의 중심이 중화학공업에서 반도체로 옮겨가는 와중에도, 선박은 자동차·가전 등과 함께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효자 수출품이었다. 한국 조선업은 일본을 제치고 선박 수주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영광의 시기를 보냈다. 그러던 조선업이 비참하리만큼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조선업 위기의 신호탄이었다. 전 세계적 경기침체로 물동량이 크게 줄면서 해운업이 타격을 받았다. 해운업의 충격은 1~2년 뒤 조선업으로 이어졌다. 세계 해운업체들의 신규 선박 발주는 급감했다.
조선사들은 수주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해양플랜트로 눈길을 돌렸다. 배럴당 100달러를 가볍게 넘길 정도의 고유가 국면에서 해양플랜트는 조선사들의 새로운 먹거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고유가 행진은 곧 끝났다. 대형 석유회사들이 유전을 개발할 동기를 잃고, 투자를 철회했다. 그들에게서 해양플랜트 설비를 수주했던 한국 조선사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조선업 위기의 원인을 놓고 다양한 지적들이 쏟아졌다. 가격은 중국에 밀리고 기술은 일본에 밀린다는 견해부터 극단적으로는 사양산업이라는 주장도 있다. 높은 수출의존도와 외부 환경에 민감함도 제기된다. 하청 중심의 생산구조로 인한 높은 재해율과 낮은 숙련도를 문제 삼는 이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조선업의 침체는 지역의 고용,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른바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소가 밀집한 거제와 울산의 고용은 초토화됐다. 울산의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는 2013년 6만 1천여 명에서 2017년 8월 기준 3만 8천여 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거제의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는 9만 3천여 명에서 8만 1천여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고용의 감소는 곧 지역 상권의 붕괴로 이어진다.
위기를 바라보는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의 시각은 어떨까? 그리고 조선업의 변화를 위한 큰 그림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성동조선해양으로 향하는 통영 안정국가산업단지는 이곳이 정말 국가산업단지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성동조선 반드시 살려냅시다”, “다시 한번 세계 10대 조선소로 우뚝 서겠습니다”를 외치는 금속노조 성동조선해양지회의 현수막과 “조선소가 살아야 통영경제가 산다”는 통영 시민사회단체의 현수막들만 말없이 취재진을 반겼다.

금속노조 성동조선해양지회를 찾아가 ‘왜’ 중형조선소를 살려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중형조선소가 예전의 활기를 되찾을 수 있는지 들어봤다.

 

조선업계에서는 중형조선소 살리기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중형조선소를 왜 살려야 하냐는 질문에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회사와 노동자를 향한 동정론만을 내세워서는 동의를 받기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먼저 산업적인 측면에서 설명하겠다. 중형조선소가 무너지면 조선 산업 생태계가 무너진다. 지금 성동조선과 STX조선이 최후의 보루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값싼 노동력으로 저가 시장을 점령하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 싱가폴,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까지 쫓아오고 있는데 이들이 시장을 넓혀 가려면 우리나라 중형선박 시장을 잡아야 한다. 지금은 성동조선과 STX조선이 막고 있기 때문에 버티고 있지만 두 중형조선소가 사라진다면? 중국이 중형선박 시장까지 점령해버린다면? 값싼 노동력과 정부의 지원으로 국내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까지 진입하는 건 시간문제다. 이를 막을 수 있는 1차 방어선이 중형조선소라고 할 수 있다.

국가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말하는 일자리 정책, 중형조선소가 없어지면 본사와 협력사, 기자재업체들까지 일자리 백만 개 사라지는 건 금방이다. 조선은 자동차, 반도체, 철강과 함께 국가기간산업이다. 이 중에서도 조선은 공정이 다양하고 자동화에도 한계가 있어 적정규모의 인력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 볼 수 있다. 중형조선소가 사라진다면 말 그대로 엄청난 고용을 유발할 수 있는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중형조선소 정책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중구난방이다. 문재인 정부도 조선 산업 혁신성장방안을 내놓기 전인 현재까지 기존 이명박, 박근혜 정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예 중형조선소에 대한 정책이 없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현 정부에서는 지난 정부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부담감이 있을 것이고 결국 자금지원이 필요하니까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할지에 대한 고민도 있는 것 같다.

성동조선은 2010년 자율협약 체결 이후 상시적인 구조조정 체계가 가동됐다. 7년 동안 흑자를 낼 수 있는 원가구조를 개선했고 실제 2016년 396억, 2017년 280억 가까이 흑자를 내면서 2년 연속 흑자를 내기도 했다. 물량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면 흑자로 전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그래서 수주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긴 터널을 지나 이제 햇빛을 봐야 할 때인데 수주 문제 때문에 정상화가 가로막혀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정부가 조선 산업 혁신성장방안에서 어떤 정책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고 보는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첫 번째는 현재 무서운 속도로 따라잡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지난해 클락슨에서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국내 해운사 발주 선박 20척 가운데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선박이 35%, 7척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나머지 13척은 중국 조선소가 가져갔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보자는 거다. 중국은 자국 조선소에 발주한 해외 선주에게 구매자 신용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선박 대금을 지원받고 장기 저가 이자로 갚을 수 있으니 선사 입장에서는 중국에 발주하는 것이 이익인 상황이다.

두 번째, 자국 선사는 자국 조선소에 발주하도록 하는 자국건조주의 정책이 나와야 한다. 중국은 내수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물량을 자국 내 발주로 한정한 정책적인 조치를 취했다. 중국 해운선사는 중국 조선소에 발주하도록. 우리나라도 중국 정부만큼은 아니어도 이에 버금가는 정부의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중형조선소에 존재하는 수주가이드라인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조선소는 수주해서 먹고사는 산업이고 경기 사이클을 타는 산업이다. 가격이 항상 일정하지 않다. 수주가이드라인을 그때그때 경기와 수주 사이클, 시장성과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