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지역 경제는 안녕하십니까
경남 지역 경제는 안녕하십니까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03.1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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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산업 위기가 지역의 위기로 번지다
[커버스토리] 대한민국 조선업, 지금! ⑥지역의 위기

대한민국의 조선업은 1970년대 이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며 경제성장의 상징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제조업의 중심이 중화학공업에서 반도체로 옮겨가는 와중에도, 선박은 자동차·가전 등과 함께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효자 수출품이었다. 한국 조선업은 일본을 제치고 선박 수주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영광의 시기를 보냈다. 그러던 조선업이 비참하리만큼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조선업 위기의 신호탄이었다. 전 세계적 경기침체로 물동량이 크게 줄면서 해운업이 타격을 받았다. 해운업의 충격은 1~2년 뒤 조선업으로 이어졌다. 세계 해운업체들의 신규 선박 발주는 급감했다.
조선사들은 수주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해양플랜트로 눈길을 돌렸다. 배럴당 100달러를 가볍게 넘길 정도의 고유가 국면에서 해양플랜트는 조선사들의 새로운 먹거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고유가 행진은 곧 끝났다. 대형 석유회사들이 유전을 개발할 동기를 잃고, 투자를 철회했다. 그들에게서 해양플랜트 설비를 수주했던 한국 조선사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조선업 위기의 원인을 놓고 다양한 지적들이 쏟아졌다. 가격은 중국에 밀리고 기술은 일본에 밀린다는 견해부터 극단적으로는 사양산업이라는 주장도 있다. 높은 수출의존도와 외부 환경에 민감함도 제기된다. 하청 중심의 생산구조로 인한 높은 재해율과 낮은 숙련도를 문제 삼는 이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조선업의 침체는 지역의 고용,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른바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소가 밀집한 거제와 울산의 고용은 초토화됐다. 울산의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는 2013년 6만 1천여 명에서 2017년 8월 기준 3만 8천여 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거제의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는 9만 3천여 명에서 8만 1천여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고용의 감소는 곧 지역 상권의 붕괴로 이어진다.
위기를 바라보는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의 시각은 어떨까? 그리고 조선업의 변화를 위한 큰 그림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조선 산업 위기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조선소 밖으로 나가야 했다. 거제에서 만난 한 시민은 “조선소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오토바이 행렬이 끊이지 않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것도 어느새 10년 전 이야기가 돼버렸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지역의 고용 및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특히 주요 중대형 조선소 및 조선기자재업체들이 밀집한 경남의 경제는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조선 산업의 물량 감소와 조선소에서 실시하는 구조조정은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니다. 조선소 작업복을 입고 식당으로 들어오던 노동자들의 발길이 끊겨버린 것이다.

조선소 안에서 밖으로 이어진 경남의 오늘

경남 지역민들은 조선 산업의 위기 그리고 경남의 오늘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대형조선소가 위치한 경남 거제에서 만난 대다수 시민들은 지역 조선소의 몰락, 그에 따른 거제의 몰락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거제가 다 죽었습니다. 대우조선, 삼성중공업에서 사람들이 다 나왔으니까. 거제를 찾는 사람들 발길도 다 끊겼죠.” - 거제 고현버스터미널 버스운전기사

“저기 아파트 보이죠? 이 지역 알짜배기 땅에 새로 지은 아파트인데 입주하는 사람이 없어요. 이사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있나. 집을 내놔도 집이 안 팔리는 상황인데. 심각합니다.” - 거제 거주 40대 남성

“거제에 온 지 올해로 32년 됐는데 이렇게 심각한 경기 상황은 처음 느껴봅니다.”  - 홍성태 대우조선노조 위원장

“예전에는 지역시장이 활기찼는데 지금은 썰렁해요. 상인들이 물건을 들여오면서 ‘이걸 팔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 하원호 노동자생존권보장 조선산업살리기 경남대책위원회 상임대표

거제 바로 옆에 위치한 통영도 다르지 않다. 홍지욱 금속노조 경남지부 지부장은 “통영시는 SPP, 신아에스비 등 중소형 조선소들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중앙시장과 몇몇 관광지 정도만 남았다”며 “조선이 통영의 핵심 제조업이었는데 조선소들이 문을 닫으면서 통영은 폭삭 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전했다. 금속노조 신아에스비지회 마지막 지회장을 지냈던 김민재 전 지회장은 “통영 미륵도 안에서만 1만 명에 가까운 인원이 경제활동을 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주변 상권을 포함한 경제가 다 죽어버렸다”고 말했다.

지역 당사자들의 이야기처럼 경남 고용문제에 적신호가 켜진지는 오래다. 지난달 2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하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시군별 주요 고용지표 집계 결과에 따르면 거제(6.6%)와 통영(5.8%)이 실업률 상위 지역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이는 조선업 불황에 따른 구조조정의 결과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거제의 경우 2016년 하반기 2.6%였던 실업률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를 보였으며 인구도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거제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시 인구는 25만 4,073명으로 1년 전 같은 기간 25만 7,183명에 비해 3,110명(1.21%)이 줄었다. 거제시는 지난 1991년 이후 꾸준하게 증가하던 거제시 인구가 26년 만에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거제·통영·고성 해안벨트를 중심으로 위치한 선박부품단지 내 기자재 전문업체들은 조선 산업 침체에 공동 대응하고자 지난 2016년 8월 경남 조선해양기자재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한국 조선해양기자재협동조합, 부산 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에 이어 국내 세 번째 조선해양기자재협동조합이 만들어진 것이다. 경남 조선해양기자재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는 나영우 휴먼중공업 대표이사는 “조선 산업 위기에 남 탓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협동조합을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100여 개의 회원사와 함께 ▲조선해양기자재협동화단지 조성사업 ▲공동물류사업 ▲원·부자재 공동구매 지원사업 ▲국제 LNG산업기술 전시회(LNG EXPO 2018) 주관 ▲조선기자재기업 정밀 실태조사 등의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소비가 얼어붙자 지역 상인들도 조선소 정상화를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통영 안정국가산단 상가번영회는 “상가 80~90%가 폐업했고 나머지는 개점휴업상태”라며 “안정국가산단 300여 명 상인과 600여 명 종업원 그리고 그 가족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지방정부도 조선업 살리기에 힘써

경남의 위기를 실감한 지역 주체들은 결국 지역단위 대책위원회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2016년 8월 31일 노동자생존권보장 조선산업살리기 경남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세상에 나왔다. 대책위에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민중당, 노동당, 녹색당경남도당 등 6개 정당과 민주노총 경남본부, 경남진보연합, 경남시민사회단체, 18개 시군이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의원 면담, 정책간담회, 대정부 건의문 채택, 토론회 등의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지난달 7일에는 경남 지역민이 함께 중형조선소 회생을 요구하는 경남도민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대회에는 성동조선해양, STX조선해양 노동자를 포함한 4천여 명의 경남도민들이 함께했다. 이들은 경남지역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두 중형조선소를 살려야 한다며 “노동 생존권 사수”와 “중형조선소 회생”을 외쳤다. 이날 대회에 참가한 한경호 경남도지사 권한대행은 “지금 조선산업 시장 상황이 호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에서 중형조선소를 포기한다면 경남의 지역경제, 나아가 국가경쟁력에도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며 중형조선소를 정상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편 지역 중심 조선업 살리기 활동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박행오 통영시 지역경제부서 관계자는 “지방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고용노동부를 통해 고용유지 지원금을 지원하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며 “결국 채권단과 조선소 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조선 산업 정책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하원호 경남대책위 상임대표는 “노동자들이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부술 망치는 정부와 채권은행이 쥐고 있다”며 “경남대책위에서는 그 벽을 허물기 위한 요구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경남도에서는 “산업현장의 의견과 지역 여론을 바탕으로 한 내용들이 중앙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조선업 위기극복을 위한 대정부 건의문’을 기획재정부 등 관련 중앙부처에 제출하기도 했다. 건의문의 주요 내용은 ▲중견조선소 생존을 위한 지원방안 조속마련 ▲중견조선소 RG발급 지원확대 ▲자율협약 기업에 대한 경영 자주성 보장 및 조선위기 극복을 위한 협의체 구성, ▲발주량 확대를 위한 정책금융 강화, ▲고용유지지원금(유급휴직, 무급휴직) 등이다.

또한 지난 12월에는 경남지역 민·관이 모여 중형조선소 정상화 추진 민관협의체를 만들었다. 민관협의체에는 국회의원, 도의원, 시·군, 중형조선소, 조선해양기자재협동조합, 지역 언론, 시민단체, 노조, 상공회의소, 경영자총협회, 연구기관, 대학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중형조선소 정상화 시기까지 상시 운영될 계획이다. 박행오 통영시 지역경제부서 관계자는 “이미 통영시는 신아에스비의 전례를 밟은 바 있다”며 “지역의 위기를 막기 위해서라도 관련 활동을 이어나갈 것”을 강조했다. 김정광 경남대책위 집행위원장은 “STX와 성동이 이대로 청산절차를 밟게 된다면 경남경제는 지금보다 더 큰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동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신아에스비는 1946년 최기호조선소로 시작한 조선소이다. 통영의 향토기업 중 하나로 통영 경제를 받들어 왔지만 지난 2015년 최종 파산선고를 받았다. 당시 신아에스비에서 빠져나온 노동자들은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STX·성동조선해양 등 인근 조선소의 협력업체로 들어갔다. 김민재 전 지회장은 “퇴직금으로 가게를 차린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역 자체 경기가 안 좋다 보니 다 접고 인근 조선소 협력업체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살아남은 조선소들도 협력업체를 정리하고 있는 상황이 닥치자 노동자들의 2차, 3차 실직은 계속됐다. 건설 현장으로 눈을 돌린 노동자들도 적지 않았다. 타워크레인을 운전하던 노동자들이 인근 건설현장으로 옮겨가면서 경남 건설현장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출범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에는 거제·통영·고성지역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소속되어 있다. 김동성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은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두 조선소에서만 3만 명 이상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며 “지금도 조합원 중 1/3은 물량이 없어서 조선업에 종사하고 있지 않음에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조선경기 불황에 일자리를 잃고서도 혹시라도 다시 일감이 생길까 떠나지 못하는 조합원들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김동성 지회장 역시 대우조선해양의 한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였으나 2년 전 업체가 폐업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조선소 밖으로 나가는 것을 눈 앞에서 보게 된 조선소 안 노동자들도 편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2016년과 2017년 사이 성동조선해양에서 3번의 희망퇴직이 이루어진 후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은 선동조선해양 노동자 236명을 대상으로 건강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노동자들은 ‘미래에 대한 고통(57.63%)’과 ‘경제적 고통(33.47%)’을 가장 힘들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심리적 스트레스 진단에서는 잠재적 스트레스군이 49.79%, 고위험군이 41.56%를 차지하면서 노동자들이 높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조선소 안이나 밖이나 결국 노동자들은 한 지역의 울타리 안에 있다. 지역에 삶의 터를 내린 노동자들은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지갑은 열리지 않는다. 지금 경남은 안녕하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