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내일은 없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내일은 없다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3.1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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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조선업 산재사망 87% 집중
[커버스토리] 대한민국 조선업, 지금! ⑦조선소 하청노동자 산업재해

대한민국의 조선업은 1970년대 이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며 경제성장의 상징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제조업의 중심이 중화학공업에서 반도체로 옮겨가는 와중에도, 선박은 자동차·가전 등과 함께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효자 수출품이었다. 한국 조선업은 일본을 제치고 선박 수주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영광의 시기를 보냈다. 그러던 조선업이 비참하리만큼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조선업 위기의 신호탄이었다. 전 세계적 경기침체로 물동량이 크게 줄면서 해운업이 타격을 받았다. 해운업의 충격은 1~2년 뒤 조선업으로 이어졌다. 세계 해운업체들의 신규 선박 발주는 급감했다.
조선사들은 수주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해양플랜트로 눈길을 돌렸다. 배럴당 100달러를 가볍게 넘길 정도의 고유가 국면에서 해양플랜트는 조선사들의 새로운 먹거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고유가 행진은 곧 끝났다. 대형 석유회사들이 유전을 개발할 동기를 잃고, 투자를 철회했다. 그들에게서 해양플랜트 설비를 수주했던 한국 조선사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조선업 위기의 원인을 놓고 다양한 지적들이 쏟아졌다. 가격은 중국에 밀리고 기술은 일본에 밀린다는 견해부터 극단적으로는 사양산업이라는 주장도 있다. 높은 수출의존도와 외부 환경에 민감함도 제기된다. 하청 중심의 생산구조로 인한 높은 재해율과 낮은 숙련도를 문제 삼는 이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조선업의 침체는 지역의 고용,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른바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소가 밀집한 거제와 울산의 고용은 초토화됐다. 울산의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는 2013년 6만 1천여 명에서 2017년 8월 기준 3만 8천여 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거제의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는 9만 3천여 명에서 8만 1천여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고용의 감소는 곧 지역 상권의 붕괴로 이어진다.
위기를 바라보는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의 시각은 어떨까? 그리고 조선업의 변화를 위한 큰 그림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한국 조선 산업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했다. 2000년대만 해도 호황을 누리며 세계 1위를 차지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이후 상황은 반전됐다. 발주물량감소, 유가하락, 중국의 시장잠식 등으로 인한 어려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이 올 하반기부터 차츰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은 지금 당장이 최악인 상황이다.
조선업의 위기 속에서 하청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들은 고용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안전상의 위협받는다. 조선업종의 산업재해 발생률은 전체 산업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 그 피해는 하청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한국 조선업을 지탱해온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에게 내일은 없다.

매년 수십 명이 사망하는 ‘죽음의 조선소’

작년 11월 2일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이하 조선업국민조사위)’가 출범했다. 앞선 7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은 산업안전보건의날 행사에 참석해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첫 국민 참여 조사위가 조선분야에 만들어 진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동안 조선소에서는 인명사고를 비롯한 크고 작은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산업 평균 산재율은 0.49%이다. 같은 시기 조선업 산재율은 0.83%로, 평균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조선업의 사망만인률(노동자 1만 명당 사망자수)도 1.39%로 평균(0.96%)을 크게 웃돌았다.

조선소의 산재사고, 특히 사망사고는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됐다. 작년 5월 1일 거제 삼성중공업 조선소에서 크레인이 붕괴로 6명이 목숨을 잃었다. 같은 해 8월 20일 진해 STX조선해양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4명이 사망했다. 이어 지난달 20일 또다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1명이 추락사했다. 숨진 이들은 모두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었다.

이는 최근 5년 동안 조선업계에서 발생한 산재사고 현황에서도 확인된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조선업 300인 이상 사업장별 사망사고 자료’를 보면 지난 2013년부터 작년까지 사업장에서 사망한 노동자 76명 중 87%(66명)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사망자 중 하청 노동자 비율은 년도 별로 각각 ▲2013년 64%(7/11) ▲2014년 94%(15/16) ▲2015 100%(15/15) ▲2016년 75%(15/20) ▲2017년 100%(12/12) 등이었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생산직 중에서 하청노동자들이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많은 것이 1차적인 원인이다. 한국 조선업계에는 다단계 원하청 구조가 만연해 있다. 이로 인해 조선업 노동자들 다수는 사내하청·외주하청·협력업체 소속이다. 조선산업 노동자 수는 2015년 기준 약 20만 3천 명인데, 이 중 13만 6천여 명이 하청노동자들이다. 조선업을 조선부문과 해양부문으로 나눠 하청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전자는 76%, 후자는 91%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사망률은 원청 노동자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 조선업종은 위험의 외주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앞선 2014년 국가인권위가 실시한 ‘산재위험직종 실태조사’에서 조선업의 위험한 업무 상당부분은 하청, 재하청을 통해 이뤄지고 있음이 확인된 바 있다.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가장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안전과 임금, 고용안정성 등 모든 면에서 훨씬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다.

하청노동자에게 안전한 일할 권리는 “신기루”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이광삼(56)씨는 8년차 취부 작업자다. 지난해 7월 작업을 하던 중 이동장비와 구조물 사이에 협착되는 사고를 당했다. ‘취부’는 도면에 따라 철판을 붙여 칸막이를 만들고, 배에 들어갈 블록을 조립하는 등 자재를 세우며 하는 일을 일컫는다. 사고 직후 쇼크로 기절한 이 씨는 사고현장을 발견한 후배가 깨워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당시 상황을 “숨이 안 쉬어졌다. 평소 호흡의 20분의 1도 할 수 없었다”고 기억했다.

이 씨는 사고로 갈비뼈 4개가 부러지면서 간과 폐, 비장 등 장기에 손상을 입었다. 권역외상센터에서 꼬박 10일 동안 사경을 헤매며 치료를 받았다. 이후 집 근처 병원으로 이송돼 두 달, 이후 5개월간 꼬박 통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의학적으로는 회복됐지만 그는 여전히 사고 휴유증을 겪고 있다. 사고 조사 결과 회사 측 과실이 90% 노동자의 부주의 등이 10%로 나왔다. 작업장에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가 있었음에도 회사가 적절히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사고는 ‘다행히’ 산재처리가 됐다. 이 씨는 자신의 경우 “예외적으로 정상적인 절차를 밟았다”고 강조했다. “노동운동을 한 이력 때문에 회사가 사전에 문제의 여지를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작업 중 다치면 회사는 원래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기에 급급하다고 지적한다. 원청에 사고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119도 부르지 않고, 산재처리 대신 소위 ‘공상처리’를 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하청업체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원청으로부터 불이익을 받는다. 원청과 하도급업체의 재계약 조건에 산재 발생을 반영하는 식으로 원청이 안전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의 보안업체에서 일했던 김평주(32) 씨는 “협력업체 직원들의 사고를 많이 목격했다. 회사는 후속처리를 제대로 안 한다”며 “산재가 접수되면 원청이 물량을 줄이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원청과 하청 간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데, 원청에 밉보여선 안 되는 하청업체는 산재를 감출 수밖에 없다”며 “산재 은폐를 조장하는 시스템이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산재 은폐와 공상처리는 심각한 문제다. 사고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넘김으로써 이후 비슷한 사고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산재 은폐는 명백한 범법행위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처리할 경우 피해를 보는 구조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월 2시간 산업안전교육을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한 사업장 내의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위험에 노출되는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산업안전교육을 원청이 일괄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럴 경우 하도급업체의 독립성을 훼손해 불법파견의 소지가 발생한다. 법적인 의무규정으로 분기별로 실시하도록 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도 상시노동자 100인 이상 사업장에게만 적용된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안전 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 씨는 “하청노동자에게 건강하게 일할 권리는 신기루”라며 “결국 비정규직이 없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불합리한 구조는 바꿀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업국민조사위 활동 2개월 연장

이런 가운데 지난달 28일 종료될 예정이었던 조선업국민조사위 활동이 2개월 연장됐다. 활동을 시작한 첫 달인 11월에는 내부 운영 규정 등을 마련했고, 12월이 돼서야 면담과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조사내용을 분석하고 위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 보고서를 내기엔 4개월은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박종식 조선업국민조사위 대변인은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안전보건공단의 사고조사위원회가 기술적인 차원 또는 작업장 내 유해요인을 찾는 조사를 한다. 조선업국민조사위는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에 관련된 근본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원·하도급 구조와 고용형태, 사회환경 등 전반적인 부분까지 폭넓게 검토한다는 점에서 다르다”며 “오는 3월 최종보고서 작성을 시작해 4월에는 발표한다는 계획”이라고 전했다.

조선업국민조사위에는 민간전문가, 조선업 종사경력자, 노사단체 추천전문가 등 총 17명의 위원이 참여하고 있다. 위원들은 위원회가 구성된 자체를 성과로 보면서도, 아쉬운 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시간의 문제다. 활동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지만 외국의 경우 산재사고 조사 1~2년 가까이 소요되는데 비해 기본 활동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비상임 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하기 어려운 점도 언급됐다. 둘째 국민참여형 조사위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조사의 강제력이 없다는 우려다. 실제로 조선업국민조사위의 모든 조사는 대상자들의 선의와 협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심지어 관계 기관 등에서도 개인프라이버시, 수사 중인 사안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 자료 공개를 꺼린다는 토로도 나온다.

국민참여형 조사위의 법적 근거 마련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도 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처럼 근간이 되는 특별법을 제정하려면 그 자체로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며, 법을 만든다면 구성하는 위원들의 자격을 까다롭게 정해야하기 때문이다. 법적 근거를 둬 국민참여형 조사위가 강제권한을 갖게 될 경우 사업장이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등의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추후 제대로 된 조사를 하기 위해 일정정도 강제성을 보장하는 보완책 마련은 필요해 보인다.

아직 조사가 한창 진행 중인 단계지만, 원·하청 구조가 조선업 산재사고 발생과 처리 과정에서의 문제가 반복되는 주요 원인이라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이와 함께 산재사고에 대해 관계부처가 확보하고 있는 정보를 지금보다 전면적이고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데 대부분의 위원들이 동의했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산재사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이라며 “이를 위해서 사고 수사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기본이고, 수사 중인 내용도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위원들과 논의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원들의 의견이 종합적으로 정리된 보고서가 나오진 않았지만, 이미 이견이 도출된 개선방안도 있다. 사업장 안전관리에 대한 원청의 책임 강화와 처벌이 대표적이다. 이김춘택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선하청조직사업부장은 “사업장의 안전관리에 대한 원청의 역할과 동시에 책임, 즉 처벌을 강화해야하다”고 주장한다. 경영계 위원은 “원청의 책임만 강화 할 것이 아니라 권한을 줘야한다”며 “현재 원청과 하청이 사업장 안전문제를 어떻게 협력해서 개선해 나갈지에 대한 명확한 법 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조선업은 제조업과 건설업의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각 산업의 위험요인이 더해진 상황에서 큰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조선업국민조사위 결과를 토대로 관계부처 간 협의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선업 산재사고를 위해서 정부, 사업주, 노동자 3주체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국민참여형 조사위는 ‘대형인명사고나 사회적 파장이 큰 산재 사고가 발생할 경우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국민들이 충분히 납득할 때까지 사고원인을 투명하고 철저하게 조사한다’는 취지로 대통령이 제시했다. 국민조사위 1호 조선업국민조사위가 그간 반복돼온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의 산재사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얼마나 기여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