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스크린도어, 순기능에도 애물단지 신세?
지하철 스크린도어, 순기능에도 애물단지 신세?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8.03.1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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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잦은 고장에 발목 잡힌 역무원들의 한숨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안전문(스크린도어) 사고의 책임자들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2월 22일 서울중앙지법은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체 유진메트로컴 대표와 관리자에게 각각 벌금 2천만 원과 1천만 원을 선고했다. 강남역 스크린도어 사고는 지난 2015년 8월 내선순환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 점검을 하던 유진메트로컴 소속 직원이 진입하던 열차에 치여 숨진 사건이다. 1년 뒤인 2016년 5월 또 다른 외주업체 소속 직원이 구의역에서 같은 이유로 사망했다. 이후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는 직영화 됐고 안전수칙이 강화됐다.

승강장 스크린도어, 투신사고 예방에 효과

1월 21일 오후 50대 남성이 수도권 전철 1호선 신길역 급행열차 승강장에 추락했다. 이 남성은 신길역에서 하차 후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 막 출발한 열차로 빨려 들어갔다. 남성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나흘 뒤 25일에는 60대 여성이 노량진역 급행열차 승강장에 투신했다. 기관사는 비상제동을 걸었고 열차가 멈췄다. 그러자 승강장과 열차 틈 사이로 여성이 기어 올라왔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12월에는 수도권 전철 4호선 중앙역에서 80대 남성이 달려오는 열차에 뛰어들어 숨졌다.

열차 투신사고가 잇따르면서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서울지하철 1호선(서울역~청량리)과 2~8호선의 모든 역사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다. 현재 안전 문제로 철거 후 재시공에 들어간 5호선 김포공항역을 빼면 서울교통공사 관할 역사의 스크린도어 설치율은 100%다. 반면 코레일이 관리하는 수도권 광역전철 구간에는 아직도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많다. 만약 승강장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었다면 승객의 투신을 막을 수 있었다.

국토부는 지난해 말까지 모든 광역철도 역사에 승강장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2015년 광역철도 139개 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설치에 들어갔다. 하지만 당초 계획과 달리 1호선 상당수의 역 승강장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지 않다. 다행히 최근 수도권전철 4호선 안산선 구간에는 전 역사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가동 중이다.

선로 투신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스크린도어 설치가 필수적이다. 서울지하철의 경우 스크린도어 설치 이후 승객이 선로로 추락 또는 투신해 숨지는 사고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철도 투신사고는 아직 스크린도어 설치가 100% 되지 않은 코레일 운영구간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승강장 스크린도어는 이외에도 열차가 진입할 때의 바람을 막아주고 지하역의 공기 질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스크린도어는 순기능이 많다.

부실시공 탓에 낮은 품질로 몸살

그러나 스크린도어는 잦은 말썽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열차가 도착한 후 출입문이 열려도 스크린도어는 꿈쩍도 안 한다거나 반대로 열차가 출발하려고 하는데 스크린도어가 닫히지 않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그때마다 스크린도어를 고치는 외주업체 직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구의역 사고 이후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4호선에서는 2014년 1만 7,543건, 2015년 1만 7,872건의 스크린도어 고장 및 장애가 발생했다. 5~8호선에서는 2014년 4,019건, 2015년 3,942건이 발생했다. 스크린도어 1개소, 다시 말해 출입문 하나에서 연간 몇 회의 고장·장애가 발생하는지 살펴보면, 1~4호선은 1.87회, 5~8호선은 0.39회인 것으로 나타났다. 1~4호선이 5~8호선에 비해 5배 가까이 많다.

스크린도어 고장 및 장애가 1~4호선에 집중된 사실은 다른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서울시 국감에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바에 의하면 2016년 1~4호선의 스크린도어 고장 및 장애 건수는 무려 2만 2,433건이었다. 반면 같은 해 5~8호선의 스크린도어 고장·장애 건수는 3,447건이었다. 서울지하철 2호선에서만 세 건의 스크린도어 작업자 사망사고가 난 사실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작업자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골칫거리로 전락하면서 부실시공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스크린도어 설치 사업은 2004년 계획이 수립돼 2007년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당시 서울시는 일부 역사는 민자로 추진하고, 나머지는 시 예산을 투입했다. 서울메트로는 유진메트로컴을 민간사업자로 선정했다. 유진메트로컴은 서울지하철 1~4호선 24개 역의 시공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스크린도어 광고 사업권을 보장받았다.

문제는 예산사업이었다. 서울메트로는 2006년과 2007년 49개 역의 시공 업체를 최저가 낙찰 방식으로 선정했다. 최저가 낙찰로 선정된 3개 업체 중 재정 여력이 없던 ‘S’산업과 ‘P’테크 등 2개 업체는 사업 도중 부도를 맞았다. 민자사업자인 유진메트로컴이 역사 한 곳당 42억 원의 비용을 들인 반면, 이들 업체의 낙찰가는 역당 9억 원에서 23억 원 수준에 그쳤다. 시공비용을 줄이느라 스크린도어의 원활한 작동에 필요한 일부 장치 및 설비 공사가 누락됐고, 저가의 부품이 사용됐다.

스크린도어와 역무원, 애증의 관계

불량 스크린도어는 서울지하철에 근무하는 직원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는 직원들은 하루에도 수십 건씩 접수되는 고장·장애에 대처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나마 3건의 작업자 사망사고 이후 안전 기준이 강화돼 2인 1조로 엄격하게 작업이 이루어지는 등 변화가 있었다. 또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가 직영으로 전환되고 작업자들이 서울교통공사 정규직화 되면서 처우도 개선됐다.

오히려 불만을 제기하는 쪽은 역무원들이다. 스크린도어에 문제가 생기면 조치가 완료될 때까지 해당 출입문을 통제해야 하는데, 일상 업무에 지장을 받는다는 것이다. 역무원들의 평소 업무는 역사 내 시설 이상 유무 확인과 초동조치 및 보고, 운송수입금 관리, 대고객서비스, 안전사고 모니터링 및 예방 등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역사를 통째로 책임져야 해 자잘하게 손이 많이 간다고 전해진다.

스크린도어에 이상이 생겼을 때 역무원들은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열차 승무원이 스크린도어 이상을 확인하면 즉시 승강장으로 향해 상태를 파악한다. 이를 담당 부서에 통보하면 작업자가 현장으로 출동해 곧바로 조치가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한다. 스크린도어가 닫히지 않은 상황에서 기관사가 임의로 열차를 출발시킬 수 없다. 승객들이 해당 출입문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고, 출발 신호를 줘야만 열차가 출발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5호선 김포공항역에서 승객이 스크린도어에 끼였는데도 기관사가 이를 확인하지 못해 열차를 출발시켰다가 결국 승객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그 후로 서울교통공사는 스크린도어 안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문제는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 경우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경우 그날 열차 운행이 종료된 이후에야 작업이 이루어진다. 열차 운행이 종료될 때까지 역무원들은 자리를 지키고 서 있어야 한다. 역무원들은 이를 ‘뻗치기’라고 불렀다. 2호선에 근무하는 한 역무원은 “조치가 늦어지면 업무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다른 역무원은 “내·외선 모두 문이 열린 상태에서 1명이 휴가를 가 4명만 근무하고 있었는데, (장애가)장기화 됐다면 더 골치 아팠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특히 승강장이 지상에 있는 역에서는 고충이 배가 된다. 이번 겨울처럼 한파가 연일 지속되면 스크린도어 고장도 더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한창 맹추위가 이어지던 무렵 한 역에서 여러 개의 스크린도어가 문제를 일으켜 역무원들이 고초를 겪기도 했다. 서울지하철노조 역무지부 등에 따르면 1월 24일 새벽 2호선 강변역 내선순환 승강장의 스크린도어 3곳과 외선순환 승강장의 스크린도어 2곳에서 당직자에 의해 장애가 확인됐다. 그날 오전 11시경 조치가 완료되었으나 또 다시 이상이 생겼다. 해당 스크린도어는 정상 동작와 이상 동작을 반복하다 결국 하루 만인 25일 오전 11시 20분이 돼서야 상황이 마무리됐다. 서울지하철노조 역무지부 관계자는 “(스크린도어가)눈이 좀 온다고 안 되고 추워서 안 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제대로 된 부품을 써야 하고 별도의 안전요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특단의 조치’, 당분간 파행 운영 불가피할 듯

스크린도어 부실시공의 심각성은 수차례 일어난 사고를 통해 서울시에서도 잘 알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까지 서울지하철 1~9호선의 스크린도어 센서를 전면 교체하기로 했다. 가장 고장 빈도가 높은 부품이 센서이기 때문이다. 현재 2만여 개에 달하는 스크린도어의 센서를 외부 환경의 영향을 덜 받는 레이저 센서로 교체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는 부실시공으로 심각한 결함을 보인 9개 역사의 스크린도어를 재시공한다. 그 대상은 김포공항·우장산·왕십리·군자·광화문(5호선), 그리고 방배·신림·성수·을지로3가(2호선) 등이다. 서울시는 우선적으로 1월부터 김포공항역 스크린도어를 철거 후 새로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른 역에서도 주요 부품을 교체하고 구조물을 정비하는 등의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예비비라도 반영해서 스크린도어를 철저히 고치겠다”라며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한편 서울시가 스크린도어의 부실시공을 인정하고 전면 개·보수에 들어갔으나 최종적으로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는 역무원들의 불만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뉴딜 일자리’를 통해 400여 명을 스크린도어 안전요원으로 배치하였으나, 단순 업무는 뉴딜 일자리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올해부터 안전요원이 배치되지 않고 있다.

역사 내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은 역무원의 중요한 업무다. 하지만 스크린도어의 부실시공 때문에 이들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면 다른 업무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도 있다. 역무원은 승객들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과정의 처음과 끝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스크린도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서울시의 노력이 퇴색되지 않으려면 보다 세심한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