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 두고 노정 갈등 악화일로
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 두고 노정 갈등 악화일로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3.1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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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물꼬 튼 임금체계 개편 논의서 놓쳐선 안 될 핵심은?

지난 1월 정부가 ‘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안(직무급제)’을 발표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체계를 정비해 임금의 공정성과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다.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정부가 노동자들과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임금체계를 만들었고, 그 내용 또한 저임금을 고착화며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를 확대한다는 지적이다.

공공부문의 직무급제 도입을 둘러싼 노정 갈등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보편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를 새로운 임금체계로 개편하기에 앞서 사회적으로 논의해야할 의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임금이란 무엇이고, 사회적으로 어떻게 결정돼야 하는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은 무엇을 의미하며, 직무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등이다.

정부, 5개 직종 표준임금체계 제시

정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내놓은 ‘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안(이하 표준임금체계)’의 골자는 임금체계와 직무등급체계의 표준화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핵심으로 하는 직무급제를 기반으로 한다.

그동안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소속된 기관별로 제각기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받았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제대로 논의의 물꼬조차 트기 어려웠다. 공공부문은 크게 3곳으로 나뉜다. 기획재정부가 관할하는 853개의 공공기관과 교육부 아래 17개 시도교육청, 행정안전부 산하 지방자치단체 등이다.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처우개선 논의의 본격화, 큰 폭으로의 최저임금 인상이 맞물린 현시점을 해당 문제를 개선할 적기로 보고 있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41만 6천여 명 중 상시지속업무를 하는 노동자는 31만 명이다. 이 중 휴직대체자 등을 제외한 20만5천 명이 오는 2020년까지 정규직으로 전환 될 예정이다. 정부가 말하는 정규직 전환이 대부분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인 상황에서, 향후 공공부문 무기계약직은 기존의 21만 명에 더해 4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에 대한 기관별 불공정한 임금격차를 방치하는 것은 앞으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화약고를 덮어두는 셈이다.

정부는 공공부문에 표준임금체계를 도입해 정규직 전환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고, 국정과제로 제시했던 공정임금을 구축하겠다는 입장이다. 적용 대상은 청소·경비·시설관리·조리·사무보조 총 5개 직종이다. 대표적인 저숙련, 저임금 노동으로 분류되는 직군으로, 20만 5천 명의 정규직 전환자 중 다수인 약 13만 명(63.3%)이 여기에 포함된다.

5개 직종은 총 11개 직무로 세분화 했다. 직무는 노동자가 하는 전체 일을 뜻한다. ▲지식·기술 ▲난이도 ▲책임성 ▲자격 ▲작업환경 등 5가지 기준에 따라 직무의 기본 등급을 1~5등급으로 나눴다. 청소의 경우 일반청소(1등급)와 전문청소(2등급)로, 시설관리는 일반시설(2등급), 종합시설(3등급), 전문시설(4등급)로 구분하는 식이다.

정부는 표준임금체계를 추진하는 기본방향으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취지 반영’과 ‘직무 중심의 지속가능한 합리적 임금체계 마련’을 비롯해 ‘전환직종 저임금 노동자들의 처우개선’과 ‘중장기적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 방향 부합’, ‘국민 부담 최소화’ 등이라고 밝혔다.

노동계, 표준임금체계 절차·내용 모두 문제

양대 노총은 정부의 표준임금체계에 반대한다. 설계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으며, 기준임금을 낮게 책정해 정규직과의 임금격차 해소는커녕 오히려 비정규직의 저임금을 고착화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절차상, 내용상 모두 하자가 있다는 평가다.

표준임금체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기준임금은 올해 최저임금의 월 환산액인 157만 3,770원이다. 근속연수 대신 숙련도가 쌓이는 소요연수를 15년간 6단계로 나눠 승급단계를 마련하고 있지만, 이 또한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1~2등급에 해당하는 청소와 경비 직무의 경우, 15년을 넘게 일해서 가장 높은 6단계인 승급에 도달해도 기본급은 200만 원이 안 된다. 1등급 직무의 6단계 기본급은 181만 3,640원, 2등급 직무의 6단계 기본급은 194만 5,540원이다. 승급 단계별 인상액은 각각 3만 원 5만 원 수준이다.

낮은 기준임금으로 인해 표준임금체계 도입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논란을 정부도 파악하고 있다. ▲직무의 기존 임금이 표준임금체계보다 높은 경우와 ▲같은 직종의 직무등급 간 기존 임금수준의 차이가 커 표준임금체계로 포괄할 수 없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다만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별도의 방침만 제시할 뿐이다. 전자의 경우 처우가 낮아지지 않게 이전 임금 수준을 보장하되 차별적 임금인상률을 적용해 단계적으로 표준임금체계 수준을 맞추도록 하고, 후자의 상황에서는 기존의 임금수준을 고려해 직종별로 직무등급을 1~2단계 추가해 운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우문숙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정부의 표준임금체계는 직무급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직무급제를 설계하기 위해선 직무에 대한 사회적인 기준과 노동 강도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한 충분한 조사가 이뤄져야하지만, 노동자들과 논의조차 없었다”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애초 취지가 무색하게 설계 체계 자체를 저임금으로 했다. 공무원과 기본급에서부터 엄청난 차이가 난다. 오래 일할수록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는 더 커진다. 공무원과 똑같은 임금체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공무원의 80% 수준은 돼야 한다. 무기계약직에게 생활조차 어려운 저임금을 영구적으로 고착화하는 임금체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을 하려했다면 공공기관 노동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 표준임금체계를 만들었어야 옳다”며 “왜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의 임금만 동결하나”고 반문했다.

특히 “그동안 정부는 공공부문에 정규직으로 고용해야할 상시지속업무직군을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로 대체해왔다.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바로 잡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시대가 변하면서 양질의 공공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언제까지 노동자들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고용할 것인가. 공공예산을 전시행정 등에 허투루 쓰지 말고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임금을 지급해야한다”고 전했다.

한국노총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도 “정부가 임금체계의 당사자인 노동자들과의 협의 없이 연구용역을 통해 일방적으로 임금체계를 강행하고 있다”며 표준임금체계 철회와 노동자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월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실무 TF 확대 회의(이하 공공부문TF회의)’에서 표준임금체계 도입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노정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차례로 보이콧을 선언했다. 같은 달 30일 이후 중단된 공공부문TF회의는 한 달이 넘도록 재개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 공공노사정책과는 “현재 숙의기간을 두고 있다. 향후 노정협의를 이어 나갈 방침”이라고 전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공공부문TF회의는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 추진 과정에서 나오는 현안과 쟁점을 정부와 노동계, 전문가 3자가 함께 논의하기 위해 만든 회의체다.

연공급제 가고 직무급제 시대 열릴까

임금체계는 기본급을 결정하는 기준에 따라 구분된다. 직무급은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의 특징과 관계없이 직무의 가치에 따라 기본급을 결정하는 임금체계다. 어떤 직무의 기본급이 100만 원이라면 나이, 성별, 고용형태, 학력, 출생, 근속연수와 무관하게 누구나 월 100만 원을 받는다. 이런 측면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가장 가까운 임금체계라고 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문제를 줄이는 방안으로 직무급을 논의했다. 이와 달리 다른 나라의 경우 직무급과 관련된 핵심이슈는 남녀임금격차였다. 남성업종과 여성업종은 기본적으로 동일직무가 될 수 없다. 보모와 기술자의 노동이 동일하진 않다. 그러나 직무에 대한 공통적인 요소를 정하고 그 평가 점수가 같으면 ‘동일가치노동’이라고 본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개념이 발전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으로 확대된 것이다.

한국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많은 학자들은 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 도입과 같은 직무급제 논의가 시급한 현안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보편적이고 당연하게 여겨진 임금체계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인상되는 연공서열형 호봉제다.

김혜진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임금체계는 그 자체로 옳고 그름이 있을 수 없다. 임금체계가 사용되는 사회배경 속에서 봐야한다”면서 “연공급제는 좋은 인력을 끌어들여 근속하게 하는 것이 인사관리의 핵심이었던 80년대 중반 국가의 고도성장기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30년이 흘러 상황이 변화한 상황에선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양극화된 노동시장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노동계가 직무급제 논의를 꺼리는 경향에 대한 분석도 내놓았다. “외국의 경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논의를 가장 강력하게 요구한 단위는 노동조합이었다”며 “한국의 경우 노조 주류인 대기업 생산직 노조들은 이미 연공제적 임금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노조의 이념과 맞닿아 있는 직무급제를 반대하진 않지만, 논의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이전 정부에서 직무급제를 도입하겠다고 하면서 실제로 성과급제에 방점을 찍었다. 정권이 보인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인해 직무급에 대한 생산적인 사회적 논의가 부각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직무급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입장에는 노동계도 이견은 없다. 이상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어떤 직무급제인가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직무급제는 유럽식과 미국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유럽은 동일임금 동일노동 원칙의 적용 범위를 넓게 잡고 그에 따른 직무에 대한 평가를 노조의 의견을 중요하게 반영하면서 한다. 반면 미국은 시장가치만으로 직무를 잘게 쪼개 직무급제를 설계 한다”며 “후자의 경우 노조의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의 직무급제 연구는 미국식에 치우쳐 있는 실정이다. 기본 직무 분석에서부터 노조의 참여를 보장하는 절차가 전제돼야 한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직무급제가 양극화된 노동시장의 임금격차를 줄여나갈 한 방안이 될 수 있다며, 정부의 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 도입이 민간 영역에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5개 업종을 시작으로 공공부문 전반에 직무급제 기조의 임금체계가 도입되면 민간의 같은 직무 영역에 분명히 영향을 줄 것이다. 현재 청년들이 공공부문과 대기업 일자리라를 선호한다는 측면에서 대기업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를 둘러싼 논란은 ‘임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쟁점으로도 옮아갔다. 근로기준법은 임금에 대해 ‘근로의 대가’라고 설명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임금은 보다 정확하게 ‘노동력 재생산비용’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는 사람 자체가 아닌 노동력에 대한 계약을 통해 특정 장소와 시간에서만 노동력을 활용해 생산에 나선다”며 “따라서 임금은 생산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지급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가 내놓은 직무급제가 성과급과 마찬가지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또 다른 신분제를 만들 것”이라고 우려하며 생활보장 원칙을 강조한 대안적 임금체계를 제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