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간호사 자살 한 달 후…
신규간호사 자살 한 달 후…
  • 윤찬웅 기자
  • 승인 2018.03.2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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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 내 인권 유린 실태 심각...보건의료노조 '4아웃 운동' 전개 계획
”핵심은 인력 문제…종합 대책 필요”
ⓒ 윤찬웅 기자 chanoi@laborplus.co.kr

“근무 시작 시간보다 훨씬 일찍 출근해서 쉬지도 못하고 식사도 못하고 욕설, 반말 등 폭언 들으며 태움도 당하며 직무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한다… 침대 철창까지 닦으면서 내 업무와 무관한 상부와 의사 지시까지 행한다. 내 업무가 제시간에 끝나지 못해 시간외 근무를 하지만 수당도 받지 못한다. 병동에 물품이 없어지면 사비를 내서 사야한다.”

의료기관내 종사자들의 인권 유린 실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20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은 ‘의료기관 갑질 및 인권유린 실태조사’ 결과를 통해 의료기관 내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따른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휴가 및 근무 강제 배정 등 노동권 침해 경험, 부당업무 강요나 폭언, 태움 등 기본적 인권 침해를 비롯해 직무 스트레스를 심각하게 경험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전체적으로 간호사 직종의 노동 조건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드러나 지난 2월 서울아산병원 신규 간호사 자살 사건에 따른 의료기관 내 노동권에 대한 우려는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저도 간호사지만 이러한 실태 조사 결과는 너무나 충격적”이라며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편안하고 안전히 일했을 때 환자들도 안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 소속 54개 병원 1만 1662명이 참가한 이번 조사에서 보건의료노조는 열악한 노동조건, 근로기준법 위반, 태움 등 병원 내 인권 유린 실태를 ‘10대 갑질’로 분류하고 각 항목별 문항을 통해 인권 침해 사례를 분류했다고 밝혔다. 시간외 수당 미지급 사례는 전체 응답자 중 59.7%인 6,964명이 경험한 바 있다고 답했으며 그 외에도 업무 관련 교육 워크숍 등 업무 연장 행사 참여에도 46.8%의 응답자가 보상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각종 회의 및 시간외 근무에 수당 신청 자체를 금지당했다는 답변도 26.3%에 달했다.

근무표 변경이나 휴일 및 휴가 강제 배정 사례도 만만치 않았다. 원하지 않는 휴일근무나 특근근무를 강요하는가 하면 휴가를 강제로 배정하고 특히 환자가 적다는 이유로 근무시간이 변경되는 등 ‘응급 오프’를 배정받았다는 사례가 간호사 응답자 중 51.3%에 달했다.

휴게시간 및 식사시간 보장도 열악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1일 8시간 기준 4시간 마다 30분의 휴게시간을 법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나 이를 100% 보장받는 경우는 15.8%에 불과했고 응답자의 43.3%는 휴게시간을 전혀 보장받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전체 응답자 가운데 72.8%가 식사시간을 일부만 보장받거아 전혀 보장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의료기관 노동자의 감정 노동과 직무 스트레스 역시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56.2%의 응답자가 욕설, 반말, 험담 등 폭언을 경험했으며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태움’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31.2%로 나타났다. 복합적인 업무 과중으로 직무 스트레스 경험했다는 응답이 74%로 나타났으며 특히 간호사가 응답자 중 83.3%로 가장 직무 스트레스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최근 일어난 병원 사건들의 실제 내용은 하나 같이 노동인권과 인력문제, 열악한 근무조건과 환경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며 “단순 개별 사례 처벌을 통해서 해결되지 않고 보다 근본적인 노동인권 문제에 대한 정부차원의 종합적 대책 수립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연달아 발생한 의료계의 사건들에 핵심에 인력 부족 문제를 통한 의료서비스의 질적 후퇴가 있다는 게 정 실장의 지적.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병원은 공공성을 추구해야 하는데 수익추구를 중심으로 한 무한경쟁 체계가 되어 문제가 발생한다”며 “사실 인력이 의료서비스의 핵심인데 시설, 장비, 병상 경쟁이 치열해 그에 대한 투자는 엄청하고 인력은 단순 비용으로만 접근한다”고 비판했다. 의료계의 경쟁적 몸집 불리기에 결국 소외되고 피해를 보는 것이 병원 내 인력 문제라는 것.

보건의료노조는 의료기관 내 인권유린 근절을 2018년 주된 과제로 두고 한해 동안 ‘환자안전병원 노동존중일터만들기 4아웃 운동’을 전면 진행할 계획이다. 4아웃 운동은 ▲‘태움’ 등 노동인권 유린 근절 ▲‘공짜노동’ 근절을 위해 노동 시간 및 보상 개선 ▲‘속임인증’ 철폐를 위한 의료기관평가인증 기간 후 적정인력 유지 ▲‘비정규직’ 철폐 등이 주된 내용.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제정에도 인력충원, 노동강도 완화, 야간・교대근무제 개선, 업무분담 명확화, 간호사 표준임금제도 마련,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수 기준 마련 등을 포함할 수 있도록 적극 투쟁에 나설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