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을 향해 ‘돼지’들이 달려간다
2007년을 향해 ‘돼지’들이 달려간다
  • 안세진 기자
  • 승인 2007.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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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생부터 83년생까지, 돼지띠 노사 관계자에게 듣는 새해 이야기

올해는 정해년. 바로 돼지띠의 해이다. 12지신 가운데 돼지만큼 극단적으로 평가가 나뉜 동물도 드물 것이다. ‘돼지’란 더럽고 욕심이 많다는 뜻으로 쓰이는 반면, 식복과 다산의 상징성으로 인해 재물 운을 뜻하기도 하니 말이다. 이러한 극과 극을 달리는 평가는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재 한국의 노사관계와 닮아 있다고 하면 너무 억지스런 이야기가 될까.


다가오는 2007년, 노사관계 담당자들로 일하고 있는 각계의 돼지띠들이 바라보는 노사관계의 어제와 내일도 서로의 상반된 입장만큼 그렇게 극과 극으로 나뉘어 있을까?  2007년 각계에서 노사관계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돼지띠들을 만나 지나온 과거와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과거, 희비의 교차로
노사관계의 개선을 위해서 일하는 대부분의 돼지띠들에게, 과거란 유난히 남들보다 어렵고 힘든 기억이 간직되어 있는 시간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 자신만의 직업이기에 가지게 되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픔들. 그들에게 과거의 기억은 무엇일까?


“노사관계 전문가를 꿈꾸죠”

겨울 날씨답지 않게 따뜻한 지난 21일 오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사무실에서 만난 김태룡 법규실장(71년생). 그는 자신에게 과거란 일종의 무력감에서 나오는 아쉬움이라고 했다.


“단순히 서류작성과 같은 업무적 차원에서 해직자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은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공인노무사 자격증을 공부하게 됐죠. 공부를 시작한 지는 두 달 밖에 안됐지만,  올해 안에 따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공인노무사 자격이 없었기에, 단순히 자문 차원에서의 지원과 참관인 자격만으로 해고자에 대한 노동위원회의 결정을 지켜보던 그는 아쉬웠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그 순간에 ‘내가 법적 대리권이 있다면 이렇게 대응을 해주었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 기억들. 김태룡 법규실장에게 과거란 그런 것이었다. 이제 과거의 무력감을 털고 법적 대리권을 획득하기 위해 생전 처음으로 학원을 다닌다며, 그는 너털웃음을 짓는다.


“가족과 함께할 여유 가졌으면”

금호타이어 노무계획과 김태성 과장(71년생)에게 과거란 일에 치여 항상 뒷전이었던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다. 업무를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평균 귀가시간 10시. 들어오면 쓰러지기에 바쁜 고단한 삶 속에서도, 부인과 두 딸이 있어 행복하다는 그는 자신이 가족들에게 그만큼 베풀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고 했다.


“집사람과 결혼 이후에 한 번도 여행을 같이 가지 못했어요. 항상 업무에 치이다 보니까. 올해는 우리 집사람과 꼭 한 번 여행을 가보는 게 소망이죠.” 평소에 같이 시간을 보내주지 못했던 두 딸과 함께 TV를 시청하는 소박한 바람이 이루어질 만큼 여유 있는 날이 온다면, “아마도 그건 이미 딸들이 출가를 하고 나간 뒤일지도 모르겠다”며 그는 가벼운 한숨을 내쉰다. 그 짧은 한숨이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모든 가장들이 지닌 삶의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인 듯 하다.


“변화의 계기가 된 과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과거란 후회와 아쉬움의 기억으로 남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과거가 누구에게나 항상 아픔의 기억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에게 과거는,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인생의 여정이 제시된 시간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23일 오전, 민주노총 홍보실에서 만난 ‘노동운동 3년 차’인 이혜정 씨(83년생)에게 과거란 그런 것이었다. 대부분의 젊은 세대처럼, 한때 그녀는 타인의 문제에는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해직의 아픔을 겪은 후,  다른 사람의 아픔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러한 감정은 한미 FTA 반대 시위에서 학생과 농민과 노동자가 하나의 뜻 아래 함께 모인 모습을 본 이후 더욱 구체화되었다고  한다.


당시 시위대의 모습을 보면서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이후 사람을 향한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이 길로 걷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과거란 감동의 순간으로, 앞으로 이타적 삶을 살아가게 될 힘을 제공해 주는 원동력이자 변화의 계기가 되었던 시간으로 남아 있었다. 


미래, ‘적’과의 공존을 꿈꾸며
2006년 말 노사관계 로드맵과 비정규직 법안의 통과, 2007년 한미 FTA 협상 예정과 같은 굵직굵직한 문제들이 놓여 있어 앞으로 노사관계는 결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어는 누구도 체념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노사관계의 개선을 위해 힘쓰고 있는 돼지띠들. 그들은 노사관계의 미래에 대해 어떤 것을 걱정하고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2007년은 여전히 불투명”
기아자동차 노사협력팀 곽희신 대리(71년생)에게, 2007년 한국 노사관계의 전망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온 대답은 ‘불투명’이었다.
“한국의 노사관계에 있어 2007년에 가장 큰 문제가 될 부분은 이번에 통과된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관계 로드맵이겠죠. 이 두 가지에 대해서 우리나라의 노사는 서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충분한 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사관계 로드맵의 주요 쟁점이었던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의 3년 유예는 “앞으로 3년이 한국 노사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도기적 시기가 됨을 의미한다”고 곽 대리는 전망했다.

 

또한 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마냥 상승하여 근로의욕을 감퇴시키는 집값도 노사관계에 있어서 복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가끔 노동계의 친한 친구들과 만나 토론을 하며, 서로의 문제점에 대해 스스럼없이 지적한다는 그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노와 사가 서로 상생하기 위해서 열린 자세를 갖는 것임을 강조했다.


“서로를 인정할 수 있어야”
민주노총의 이수미 총무부장(71년생)도 2007년 가장 크게 걸림돌로 적용될 수 있는 사항으로 노사관계로드맵과 비정규직법안을 들었다.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이 노사관계로드맵의 조항에 대해서 알고 있긴 하지만, 피부로 느끼고 있지는 못한 듯 해요. 이제 막 통과된 법안이니까요. 앞으로 노사관계 로드맵 법안이 피부로 느끼게 될 때가 걱정이에요.”

 

이수미 부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용자 측의 태도였다. 경제성의 리만을 지나치게 따지면서 비정규직을 일회용품처럼 생각해 협상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따끔한 지적과 함께, 결국 노사관계의 기초가 되어야 할 점은 노동자를 인정하려는 태도라고 강조했다.


“신뢰가 출발점이죠”
한국노총 산하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현우생 총무국장(59년생)도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 염려하고 있었다.
“2년 뒤에는 정규직으로 고용한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측면에 있어서 그것이 가능할 지 우려돼요.”


그리고 노사관계로드맵에서 유예되었던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같은 사항은 가급적이면 노사자율로 남길 바라는 소망도 내비쳤다.
“전임자임금 지급이 안 되면, 군소조직들은 살아남기 힘들어요. 물론 그래서 산별노조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이건 정부가 개입하기보단 노사자율로 남겨두었으면 합니다.”


현 국장 역시 노사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자기주장을 고집하기 보단 원만한 합의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적대감과 대립감만이 팽배해 있는 사업장은 오래 가기가 어려워요. 사측이 앞장서서 투명하고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면, 그게 바로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초석이 될 겁니다.”


그리고, 세상에 바라는 것들
노사관계 담당자들도 결과적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존해 나가야 함에 의견이 일치되고 있었다. 다만 서로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그리 원활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아직 갈등과 불신이 남아있는 듯 했지만, 모두가 서로에 대해 인정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 점점 성숙질거라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노사관계의 구체적 현안과 같은 문제들도 물론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사관계에 관한 구체적인 문제들만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문제점들을 파악하는 일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노사관계에 담당자들이 바라보는 현실 사회 문제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기를”
한국노총 산하 전국연합노동조합연맹 정진권 정책국장(59년생)에게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자연과 함께 하는 생활이었다. 
“12살 무렵에 아이들과 썰매를 타다가,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양말이 홀딱 젖었지요. 그래서 그거 말리기 위해 불을 폈었어요. 그렇게 양말을 말리다 홀딱 태워먹었죠. 그래도 그 불에 들쥐도 잡아서 먹고 그러고 놀았어요.”


놀이터가 따로 없었기에 들판에서 뛰어 놀면서 자랐다는 그는, 요즘 아이들의 놀이문화에 우려를 표한다.
요즘 아이들이 집에서 인터넷 게임만 하면서 자라는 것에 큰 우려를 표하는 정진권 국장. 그가 이렇게 인터넷에 중독된 아이들의 놀이문화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는 것은, 이로 인해 점점 이기적으로 자라며 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배려감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정 국장의 이야기처럼 사람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사회성에 대한 교육으로 배려심과 이해심을 가르칠 필요가 있는데, 현대 사회는 그런 기회를 처음부터 봉쇄된 셈이다.


“노동문제는 인간문제”
1970년부터 노동운동에 앞장섰던 민주노총의 박순희 지도위원(47년생)은, 노동문제에 냉소적인 국민의 시각전환을 촉구했다.
“노동문제는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예요. 노동자가 없는 가정이 있습니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노동문제를 노동자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또한 그녀는 평화의 의미를 설명하며, 노동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와 관심을 부탁했다.
“평화는 한문으로 平和잖아요. 평평하다는 ‘平’, 그리고 和자는 벼 禾에 입 口, 입에 들어가는 쌀이 공평해야지 찾아올 수 있는 게 평화란 말이죠.”
박 지도위원은 평화의 기본이 바로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모두가 당연히 함께 고민해야만 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임을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며
서로 다른 기관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들은 2007년 현재를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이자, 아내였고, 동시에 노동계의 원로이자, 새롭게 일을 시작한 신세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방법에 있어서는 비록 차이를 보이고 있었지만 노사관계의 개선을 위해 일을 하며, 사람을 지향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과 만나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 대립이 아닌 화해를 꿈꾸고, 절망이 아닌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 모두가 어려울 것이라 예상하는 2007년에도 희망을 둘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