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산업수도 명맥 이어갈까
울산, 산업수도 명맥 이어갈까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4.06 10:3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 대통령 글로벌 미래 산업수도 공약
[커버스토리] 울산의 내일을 보다 ➊
‘노동자의 도시’ ‘산업수도’ 울산이 심상치 않다. 지역의 3대 주력산업 중 조선은 장기간의 침체에, 자동차는 수출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그나마 석유화학산업이 선전하고 있지만, 앞날은 또 모를 일이다.

주력산업의 부진은 지역의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골목경기는 스산하고, 인구는 감소 추세다. 지역의 소득수준도 1위 자리를 내줬다.

울산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타 지역과 공통점이 많다. 어쩌면 정부 주도 아래 ‘산업수도’로 육성되면서, 그동안 실패의 경험 없이 내달려온 울산이기 때문에 지금의 어려움이 더 크게 와 닿는지도 모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는 물론, 사회 전반의 양극화를 줄여나가는 산업 생태계 복원 없이는 지금 당장 급한 불은 끄더라도 언제고 다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과정에서 노동은, 자본은, 행정은 어떤 역할과 책임을 찾아야 하는가?

울산은 지금 위기다. 지역의 3대 주력산업 중 하나인 조선업은 장기간의 침체로 최악인 상황이다. 자동차산업도 수출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그나마 세계적인 수요가 많아 활황기인 석유화학산업이 지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양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대선 시기에 울산을 ‘미래형 글로벌 산업수도’로 만들겠다며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도시 ▲쾌적하고 살기 좋은 도시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 3개 분야 8대 과제를 공약한 바 있다. 같은 해 10월 울산시도 도시의 향후 20년 발전 전략을 담은 ‘울산비전2040’을 발표했다. 한국의 산업수도로 불려온 울산은 앞으로도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

정부 주도로 건설된 최초의 공업도시

울산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업단지가 조성된 곳이다.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실시되면서 농경지 비중이 절반을 넘게 차지해 허허벌판이었던 울산에 울산·미포산업단지가 건설됐다. 1970년대 중반 중화학 공업의 중심이 되는 비철금속 등이 생산되는 온산공장이 세워지면서 본격 성장 궤도에 올랐고, 국가적인 중화학 공업단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산업이 발전하기 위한 가장 기본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다. 울산 공업단지에도 정유공장이 가장 먼저 준공됐다. 바로 국내 최초의 정유회사인 대한석유공사였다. 이후 정부 중화학 육성 정책에 맞춰 제철·조선·자동차 공장이 잇따라 들어섰다.

1974년 시작된 울산의 조선 산업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조선업이 호황기였던 1970년대 중반 울산에서는 진수식이 끊이지 않았다. 1980년대 접어들면서 전 세계 10%에 해당하는 선박을 울산의 조선소에서 생산하면서 울산은 세계 1위 조선업 도시로 명성을 날렸다. 울산의 조선업이 곧 한국의 조선업을 대표했다.

국가경제 발전을 이끈 중심 역할을 한 대한석유공사는 1980년대 SK그룹에 인수됐다. 이후 유공으로, SK에너지로 이름을 바꾼 뒤 지금은 SK이노베이션·SK에너지·SK종합화학·SK루브리컨츠 등으로 재편됐다. 현재 울산공업단지에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SK이노베이션, S-OIL 등 대기업 주요 공장들이 자리 잡고 있다.

울산이 공업단지로 지정되고 산업수도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는 지리적 이점이 컸다. 울산은 항만과 가깝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탓에 외국에서 대부분의 자원을 수입하고 물건을 생산해 다시 수출하는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중화학공업은 대내외 의존도가 높다. 수출입에 유리한 항만은 공업단지를 조성할 때 중요한 고려지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울산 바다는 수심이 깊고 조수간만의 차가 적다. 자연환경적으로도 항만을 개발하는 데 유리했다. 태화강에서 공업용수를 확보하기도 쉬웠다. 포항이 근처에 있어 연관 산업의 발전을 꾀할 수도 있었고, 인근 지역에서 노동자들의 유입도 용이했다. 당시 저렴했던 지가도 한 요인이었다.

조선업 위기로 직격탄 맞은 울산

울산은 수출주도형 도시다. 수출이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이른다. 울산의 3대 핵심 산업이 조선·자동차·석유화학 관련 산업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3대 주력산업이 인접한 곳에서 함께 발전하면서 경제적인 집적효과가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자동차산업이 IMF 위기를 겪을 땐 조선업이, 조선업이 어려움에 직면했을 땐 석유화학산업이 지역경제의 버팀목이 돼 상쇄효과를 냈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울산만의 산업구조로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3대 주력산업 모두 미국의 보호무역과 금리인상 등 대외변수에 취약하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지역경제에서 3대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각 산업들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지역경제는 직격탄을 맞는다. 조선업이 위기국면에 처한 지금 울산도 함께 휘청거리고 있다.

국내 조선업의 위기는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시작됐다. 발주 물량이 감소했고, 유가는 하락했다. 중국의 시장잠식과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로 조선업은 지금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수주잔량의 감소에 따른 일감 부족으로 올해 상반기까지 5,000명의 유휴 인력을 두기로 했다. 현대중공업과 협력업체들은 명예퇴직을 실시해 인력을 줄이는 한편 조기퇴근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조선 협력업체들의 경영위기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울산상공회의소는 조선업의 침체로 인해 2015년 이후 울산에서 27,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추산한다.

울산형 빈곤문제 적극 대응 필요

특히 현대중공업이 위치해 있는 울산 동구의 상황은 심각하다.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된 조선업종은 중앙정부의 부분적인 지원을 받지만, 조선소를 중심으로 상권을 형성하고 있던 소상공인 등 조선업종을 제외한 지역 구성원들은 타격을 고스란히 받는다. 이로 인해 동구의 인구는 20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지역경제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된 것이다.

이에 지난달 22일 울산시 동구는 고용노동부에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고용노동부의 실태조사를 거쳐 지역의 고용위기가 인정되면, 해당 지역은 최소 1년간 고용유지를 위한 특별지원과 일자리 관련 사업비 우선지원을 포함한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받게 된다.

조선업 경기가 올 하반기부터는 차츰 좋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가운데 당면한 지역의 위기상황을 어떻게든 견뎌내기 위한 대응책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 산업이 건조측면에서는 내년까지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지만, 수주측면에서는 연내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울산시 동구는 앞선 지난 2016년에도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요청했지만 실패했다. 당시에는 울산시 차원의 10대 지원 대책에 동구를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도록 해 중앙부처의 지원을 촉구하는 방식이었다.

앞으로 울산에서는 조선 산업 구조조정에 따라 실직한 이들을 포함해 실업 위기에 놓인 하청업체 노동자들과 주요산업의 인력 감축으로 수입이 감소한 영세자영업자 등으로 인한 잠재 빈곤층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위한 긴급복지지원제도나 실업부조와 같은 지원책 마련에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지역의 고용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실질적인 고용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울산의 산업 기반과 노하우는 국가적 자산

울산이 현재의 경제 위기를 겪기 전에 보다 현명하게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이 같은 물음에 이성균 울산대 교수는 “현재를 탓하기 위한 결과론적이고 무책임한 말”이라고 일축한다.

그러면서 조선업 관련 기업들이 조선경기가 부침을 겪는 과정에서 배를 만드는 경쟁력에 집중했으면 좋았겠지만, 해양플랜트를 고부가 가치 사업이라고 판단하고 투자한 것에 대해 비난할 순 없다고 덧붙였다. “기업들도 나름대로 더 잘하기 위해 고민하고 욕심을 냈던 지점이 있다”며 “위기에 직면한 현상황에선 질책보다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에 집중해야한다”는 것이다.

이어 이성균 교수는 “지역을 떠나서 울산에 오랫동안 쌓인 산업 인프라와 노하우는 굉장한 국가적 자산이자 자부심을 가질 만 한 것”이라며 “도시가 몰락하거나 울산 공업단지 내 모든 공장이 해외로 전부 다 이전하지 않는 한, 일시적으로 위기를 겪어도 그 명맥은 이어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 교수의 설명은 자연스럽게 국가가 산업별 정책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울산이 성장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지금 오히려 산업수도 울산의 가치를 재조명해봐야 할 때라는 말이다. 그는 산업별 경쟁력 확보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몫이라면서도, 기존의 주력산업의 활성화시키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산업과 적극적으로 연계해 접목시켜 나가야 한다며 산업에 대한 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진혁 울산상공회의소 팀장은 “과거 국가가 주도해 산업단지를 만들고 기업이 운영을 해 나갔다면, 이제는 기업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며 “울산의 많은 협력업체들은 모기업이 힘들어지면 함께 위기를 겪는데, 그 전에 다양한 업종으로의 확대를 시도하고 활로를 모색해야한다. 조선산업의 경우 4차 산업과 접목할 수 있는 스마트십(Smart Ship) 분야를, 자동차산업의 경우 울산의 전략 산업이기도 한 수소자동차 분야를 강화해 가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산업수도 울산의 쇠락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성균 교수는 “현장 르포 기사든 분석기사든 외부인이 지역을 둘러보고 통계 수치를 인용해 ‘돈 많이 벌던 산업도시가 어렵다. 이 와중에 노조는 파업하고 자기 잇속만 챙긴다’는 식의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다”며 “지역의 실체를 짚지 못한다. 수치아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고 우려한다. 그러면서 울산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산업 자산들의 가치와 이를 쌓아올린 생산직 노동자들의 노고를 제대로 존중해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울산의 대기업 정규직 생산노동자들은 대부분 수십 년 동안 생산 공장에서 일 해왔기 때문에 회사를 떠나면 살길이 막막하다. 창업을 하기도 쉽지않고 그렇다고 직접 설비를 투자해 새로운 공장을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하는 동안 최대한 임금을 확보해야 노후를 살수 있다고 여긴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아울러 “울산 대기업과 노조들은 사회공헌기금을 만들어 지역의 경제에 이바지하고 선순환적인 구조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건설적인 시도를 확대해나가고 있다”며 “현재 노조와 기업이 매칭해 기금을 만드는 방식에 시 차원에서도 동참해, 울산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을 위해 사용할 효과적인 방법도 논의해가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