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상박(下厚上薄), 임금에 연대를 담다
하후상박(下厚上薄), 임금에 연대를 담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04.06 10:51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장 담벼락 안에서 밖으로…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
[커버스토리] 울산의 내일을 보다 ➋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
‘노동자의 도시’ ‘산업수도’ 울산이 심상치 않다. 지역의 3대 주력산업 중 조선은 장기간의 침체에, 자동차는 수출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그나마 석유화학산업이 선전하고 있지만, 앞날은 또 모를 일이다.

주력산업의 부진은 지역의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골목경기는 스산하고, 인구는 감소 추세다. 지역의 소득수준도 1위 자리를 내줬다.

울산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타 지역과 공통점이 많다. 어쩌면 정부 주도 아래 ‘산업수도’로 육성되면서, 그동안 실패의 경험 없이 내달려온 울산이기 때문에 지금의 어려움이 더 크게 와 닿는지도 모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는 물론, 사회 전반의 양극화를 줄여나가는 산업 생태계 복원 없이는 지금 당장 급한 불은 끄더라도 언제고 다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과정에서 노동은, 자본은, 행정은 어떤 역할과 책임을 찾아야 하는가?

“내가 옛날에 고향에 살았었나 싶을 정도로 지금은 울산이 내 고향인거죠.”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지부장은 1977년 처음 울산을 찾았다. 실습생 자격으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첫 발을 들인 19살 부여 소년은 시간이 흘러 울산 자동차공장의 산 증인이자 현대자동차 노동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울산의 대표사업장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하부영 지부장을 만나 2018년 투쟁·교섭, 자동차산업, 울산지역에 대한 지부의 고민을 들어보았다.

▲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

임금과 연대가 만난 새로운 임금전략

이번 2018년 투쟁·교섭 방침으로 ‘하후상박 연대임금전략’을 제시했다. ‘하후상박 연대임금전략’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임금이 높은 대기업은 임금을 적게 인상하는 대신 임금이 낮은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은 임금을 더 높게 인상하는 상향평준화 임금전략이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사회 양극화와 사회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운동도 화답을 할 때가 됐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30년간 투쟁을 해왔고 2006년 산별노조로 전환했지만 산별 중앙 교섭도 못한 채 노동자들의 임금격차만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정권과 자본에 해결을 촉구하는 투쟁을 해왔다.

‘하후상박 연대임금전략’은 이런 투쟁방식을 계속 유지할 것이냐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정권과 자본에 문제해결을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공장과 중소기업 간 사회 양극화와 임금격차 문제를 노동운동이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해결과제로 삼아 10년, 20년, 30년 투쟁을 해보자는 것이다.

겉으로는 임금 투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요구는 최종적으로 재벌개혁 투쟁으로 드러날 것이다. 기업이 계열사를 동원해서 다단계 하도급을 하고 이윤을 챙기지 않나.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최저입찰제를 통한 중간착취 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이를 구체화하면 재벌개혁 과제로 나타나는 내부 과제와 일감몰아주기의 폐해도 해결되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산별노조의 목표도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에는 동의하지만 조합원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현장 조합원들의 반응은 어떤가?

드러내놓고 ‘잘못 가고 있다’, ‘반대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귀족노조 프레임과 고임금 프레임에 당해온 조합원들이기 때문에 ‘집행부가 기존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가져가려고 하는 구나’하고 지켜보고 있다.

이제까지 현대자동차지부 임원 선거와 노동운동은 누가 더 많은 임금과 실리를 챙겨줄 것인가의 반복이었다. 당연히 조합원들은 누구를 선택하는 것이 나에게 이득이고 더 높은 실리를 챙길 수 있는가가 선택의 기준이었다. 더 많은 임금과 실리를 기대하게 만들고 기대만큼의 실리가 나오지 않으면 부결이나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렇게 이 자리까지 왔고 기대보다 성과가 적었기 때문에 2017년 단체교섭 결과는 부결사태를 맞았다.

현장 조합원을 대상으로 조사 해보니 현대자동차에서 연봉 1억 2천을 받는 사람이 5% 정도 되는데, 자신은 1억 가까이 받아도 그 5%와 비교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조합원들이 많더라. 5%에 들지 못한 나머지 95%가 출근길을 지옥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출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높은 임금을 받아주는 것이 노조의 역할인 것인 양 우리가 조합원들을 잘못된 길로 데려온 것이다. 조합원 부자 만들기 운동으로 끌고 온 활동가들의 잘못이지 조합원들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잘못 이끌고 왔다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

물론 30년 동안 굳어져온 공장 담벼락 안의 실리추구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30년의 잘못된 운동은 내 임기에서 끝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부장에 당선되면서 기존 현대자동차지부의 기득권에 안주하는 낡은 체제와 시스템은 사망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새로운 체제와 질서로 가는 과정에 ‘반대와 부결’이라는 혼란과 무질서가 있더라도 방향을 5도라도 틀어 놓겠다고 밝혔다.

조합원 전체 인식의 변화와 함께 사회연대전략을 추진하는 건 아니지만 지도부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실천투쟁으로 접목시키면 서서히 변화하고 세상의 정의를 세우는 노동조합으로 자리잡아 갈 것을 기대한다. 임기 2년 동안 완성은 불가능 하지만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제시할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노동조합 운동을 하며 ‘운동은 투쟁, 즉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부장의 노력과는 별개로 현대차노조를 바라보는 언론이나 시민들의 프레임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도 든다.

하후상박 연대임금전략조차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인상을 전면에 내세우며 이를 지렛대 삼아 자기들 이익만 챙길 것이라는 비판도 예상하고 있다.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대공장 고임금론과 노동귀족론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고 임금격차는 눈에 보이는 사실이며 삶의 문제이기에 대공장 노동조합에게 둘러쳐진 프레임을 극복하기는 어렵다.

우리 노동조합들은 정권과 자본 그리고 보수언론의 결탁에 의한 왜곡된 프레임이라는 비판만 가지고 국민들의 반대심리와 임금격차에 대한 중소기업과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원망이 해소되지 않는다. 정권과 자본 그리고 보수언론이라는 삼각편대의 합동공격은 강고하기에 단방에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다고 포기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무언가 다른 시도와 변화를,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노력도 해보지 않았다는 반성을 했다. ‘하후상박 연대인금전략’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공장과 중소기업 노동자 간 임금격차의 원인과 본질을 밝혀내는 투쟁을 할 것이다. 재벌의 다단계 하도급 과정에서 일감몰아주기와 내부거래의 폐해를 밝혀내고 중간착취인 통행세 8~15%를 금지시키면 재벌의 문어발식 계열사 동원의 유혹도 사라지고 2차, 3차, 4차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원청의 납품단가 인상 없이도 즉각 20~30%의 임금인상 재원이 생긴다. 현재 국회에서 진행하는 건설노동자들의 중간착취 근절을 위한 ‘임금직불제’ 입법 논의를 살펴보면 금속노조의 투쟁이 어디로 갈 것인지 알 수 있다.

언론과 시민들도 금속노조와 현대자동차의 투쟁이 구체적인 성과로 드러날 때 기존의 왜곡된 노동귀족, 고임금론의 프레임에 속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우리도 1~2년 투쟁으로 성과를 내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앞으로 30년 투쟁을 해보자는 것이다. 한국의 천민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사회 불평등의 정점에는 재벌이 있고, 재벌의 경영방식도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현재는 아니더라도 왜곡된 프레임은 언젠가 진실이 밝혀지면 깨질 것이다.

전기자동차는 쓰나미 같은 재앙 될 수도

최근 자동차산업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현대자동차에서는 전년 동월 대비 판매율이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에 따른 현장의 변화와 지부장의 고민이 있다면?

자동차산업은 앞으로도 계속 하향추세일 것이다. 특히 현대자동차는 지금도 미국시장과 중국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국내에서 생산하는 해외수출물량도 감소하고 있다. 뒤늦게 신차와 친환경자동차를 투입하고 있지만 기존만큼 판매량이 늘어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최선은 회사가 국내 공장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국내공장에서는 신차투입이 어려워 노조를 회피하며 해외공장에서 선(先) 생산을 시도하는데, 리콜 등의 대량품질문제가 터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노동조합도 국내공장의 적기생산과 품질향상에 고민이 깊다. 하지만 조합원들에게 이를 꺼내놓기 어려운 현장 분위기이다. 조합원들은 고용문제가 눈앞에 닥쳐야 수용하겠지만 지금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고용안정에 대해 지부가 대처해야 할 방향성은 제시할 생각이다.

고용안정과 관련해 이번 1/4분기 노사협의회 요구안건 중 고용안정위원회 구성을 요구안 중 하나로 제시하지 않았나?

이번 한국지엠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현대자동차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4~5년 후 쓰나미처럼 재앙이 밀려 올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미국시장과 중국시장의 고전으로 수출물량이 대폭 감소했고 울산공장도 수출물량이 감소하며 특근이 감소했다. 그만큼 노동자들의 임금도 줄어들었다.

이미 현대자동차 안에서도 고용불안은 시작됐다. 전주 트럭공장과 4공장 스타렉스 공장은 물량이 부족하여 공피치(라인에 제품 없이 빈 벨트로 흘러가는 것)와 휴가로 생산조정을 하고 있다. 예전처럼 수출이 대폭 들어나거나 신차효과로 많이 팔리던 시대는 지나갔고 전기자동차와 4차 산업혁명으로 고용이 대폭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조합원들은 물량을 확보하여 특근을 늘려달라는 요구를 해오고 있다. 즉, 임금에만 관심이 높다. 집행부로서는 불과 4~5년 뒤에 닥칠 고용문제를 중장기적으로 대비하겠다는 생각에 물량대책위원회가 아니라 고용안정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의도가 있다. 집행부는 고용안정을 위한 시동을 걸고 싶은데 현장의 요구는 고용안정위원회를 통해 물량을 확보해달라고 하니 괴리감이 있다.

전기자동차를 이야기하셨는데, 많은 전문가들이 전기자동차를 향후 자동차산업의 핵심 트렌드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한 지부장의 생각은 어떤가?

최근 세계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전기자동차가 대안으로 급부상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전기자동차를 미래의 전망이자 대안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굉장히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전기자동차는 기존 내연기관의 핵심기술인 엔진과 변속기 대신 모터와 배터리를 사용해야 한다. 문제는 기존의 엔진과 변속기가 현재 매출의 30~4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전기자동차를 도입하면 모터와 배터리는 현대자동차 자체 기술이 없기 때문에 밖에서 가져와야 한다. 그동안 큰돈을 투자해서 만든 내연기관 기술을 이제는 밖에서 가져오는 것이다. 기존 완성차 수익모델로는 전기자동차가 살아남기 힘들어 진다.

그럼 회사는 어떻게 나올까? 수익성 보전을 위해 현재 인력의 70%를 줄이는 전기자동차 전용 라인을 설치할 것이다. 전기자동차 전용라인을 도입하면서 현재 인력의 70%를 줄여야 한다고 나오면 노동조합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몰릴 것이다. 회사가 ‘인력 70%를 줄이고 전기차를 받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해외에 공장을 짓겠다’ 이렇게 나올 테니 말이다. 노동조합 입장에서 전기자동차는 미래전망이 아니고 악마의 기술이자 쓰나미 같은 재앙인 것이다.

다만 거부할 수 없는 기술적 진보이고 대세인 것은 맞다. 지금의 노동자들은 혁명적 변화를 수용할 준비나 태세가 갖추어지지 않았다. 회사와 전기자동차 시대 구조조정 방지와 고용안정 방향 등은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았지만 시작하려고 한다. 금속노조와 함께 정부의 자동차산업 업종협의체 등을 구성하여 정부차원의 대책 마련도 요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