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업을 끌어올릴 인프라 구축이 중요
조선산업을 끌어올릴 인프라 구축이 중요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04.0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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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보다 우려가 커진 “조선산업 혁신성장방안”
[커버스토리] 울산의 내일을 보다 ➌ 박근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장

‘노동자의 도시’ ‘산업수도’ 울산이 심상치 않다. 지역의 3대 주력산업 중 조선은 장기간의 침체에, 자동차는 수출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그나마 석유화학산업이 선전하고 있지만, 앞날은 또 모를 일이다.

주력산업의 부진은 지역의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골목경기는 스산하고, 인구는 감소 추세다. 지역의 소득수준도 1위 자리를 내줬다.

울산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타 지역과 공통점이 많다. 어쩌면 정부 주도 아래 ‘산업수도’로 육성되면서, 그동안 실패의 경험 없이 내달려온 울산이기 때문에 지금의 어려움이 더 크게 와 닿는지도 모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는 물론, 사회 전반의 양극화를 줄여나가는 산업 생태계 복원 없이는 지금 당장 급한 불은 끄더라도 언제고 다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과정에서 노동은, 자본은, 행정은 어떤 역할과 책임을 찾아야 하는가?

‘일감부족, 구조조정, 고용불안…’

여전히 조선산업을 뒤따르는 꼬리표들이다. 빅3 중 하나인 현대중공업이라고 해서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2015년 1월 기준으로 26,158명이었던 정규직 노동자는 2018년 동월 기준 19,189명으로 감소했다.

박근태 현대중공업지부장은 구조조정이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말한다. 한풀 꺽인 줄 알았던 조선산업 한파가 역시 진행중이라는 이야기다. 울산 3대 산업 중 하나인 조선을 책임지고 있는 현대중공업에서 박근태 지부장을 만났다.

현재 현대중공업 안에서 발생하는 유효인력에 대해서 휴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휴직자 규모는 어떻게 되나?

계속 인원이 들어왔다 나갔다하면서 정확한 집계를 할 수는 없지만 지금 해양, 조선 합쳐서 600~700명 정도의 인원이 휴업 중이다. 조선 부문은 2018년 하반기에 선박 건조량이 늘어나면서 교육휴직자 수가 줄어드는 반면 해양은 현재 남아있는 공사가 끝나면 휴직자 수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휴업이 언제 끝날지는 정확히 예단할 수 없지만 올해까지라고 보고 있다. 내년에는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한다.

구조조정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것으로 봐야할까?

진행형으로 본다. 단체협약을 통해 최대한 고용을 보장한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실제로 회사가 고용안정협약서를 작성하지는 않았다. 이런 점을 볼 때 지부는 회사가 여전히 구조조정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입장이다.

이전까지의 구조조정은 채권단의 압력으로 진행되어 왔지만 지금은 유상증자도 성공했고 사실상 채권단의 압력은 없지만 정부가 조선산업에 대한 전향적인 살리기 정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회사가 선제적 구조조정을 카드로 꺼낼 수 있다. 그 카드는 정규직 노동자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환해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는 방식으로 가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지난달 조선업 특집을 다루면서 ‘그래도 현대중공업은 우리보다 사정이 낫지 않냐’는 타 사업장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 자체가 침체기에 빠져있기 때문에 현대중공업만의 고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정부 정책이 ‘스스로 살아 남아라’는 메시지가 강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지부에서는 구조조정도 정부가 묵인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비판도 한다. 실제 현대중공업을 대우조선처럼 직접 지원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산업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다.

연구자들이 분석한 한중일 조선산업 비교 자료를 살펴보면 중국은 정부의 지원 아래 지속적인 성장을 해왔고 일본은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우회적인 지원방식을 통해 자국 선박 중심으로 유지해왔다. 반면 한국은 자력갱생으로 산업을 유지해왔다. 중국은 정부의 지원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정부의 지원 없이는 버티지 못한다. 반대로 한국은 정부의 지원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 또는 금융 정책이 있다면 현대중공업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다른 빅3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조선 산업 육성정책이 있다면 원활한 수주, 고용의 유지 등이 가능한데 실제 그런 부분이 차단되어 있다. 조선 산업이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세계 물동량이 부족하고 일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조선산업을 자본의 논리에 맡겨 버리면 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고용 창출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있는 고용도 유지를 못하고 있다.

▲ 박근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장

지난달 두 중형조선소의 운명이 결정됐다. 성동조선해양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고 STX조선해양은 또다시 고강도 구조조정에 직면하게 됐다. 동종업계 두 중형조선소에 대한 정부의 결정, 현대중공업지부에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잘못됐다. 조선산업은 우리나라 기반산업이다. 그 기반산업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라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정부가 산업을 지키면서 국민을 보호할 책임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보였다고 본다.

두 중형조선소에 대한 결정을 보면 결국 인건비를 줄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STX조선해양 상황을 보면 700여 명의 생산직 노동자 중 75%를 구조조정하라는 것이 채권단의 요구다. 75%를 정리하면 200명 미만의 생산직 노동자들이 남는다. 이는 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수많은 인원을 정리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겠다는 것 아닌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한쪽에서는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다른 한쪽에서는 정규직 비정규직화를 이야기하는 모순된 정책이 나오는 것이다.

조선업계에서는 정부가 올해 1/4분기 중에 발표한다고 했던 ‘조선산업 혁신성장방안’이 두 중형조선소의 2차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정부의 결정을 보면 앞으로 정부에서 발표할 ‘조선산업 혁신성장방안’에 대해서 기대보다는 우려가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국회 조선산업 토론회’를 준비했었다. 우원식 원내 대표를 포함한 정부,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토론회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미뤄지면서 지금까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 토론회를 개최하려고 했던 이유도 조선산업에 대한 우리의 요구안이 반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 결국 토론회가 개최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형조선소에 대한 대책이 나왔는데 굉장히 암담하다. 중형조선소에 대한 결정이 발표될 정책에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4월 4일 조선업종노조연대에서 총력 상경투쟁을 계획한 것도 이에 따른 대응 방안이다. ‘조선산업 혁신성장방안’도 1/4분기 안에 나온다고 했지만 4월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정책과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면 기업이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하는데 현 상황에서 기업이 자생하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출혈을 요구하는 것이다. 고정비를 줄여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지금 노동자들을 조선소 밖으로 내보내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정규직 노동자를 줄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늘리게 되면 악순환이 시작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면 노동자의 기술력이 하향평준화되면서 숙련도가 떨어지게 된다. 노동자의 숙련도가 떨어지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 문제를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겪었다. 낮은 임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일을 누가 하려고 하겠나.

87년 이전 현대중공업이 노동조합이 없던 시절에는 ‘3년만 일하고 돈 벌면 장사해야지’라는 생각을 가진, 조선소를 떠돌며 숙련도를 쌓지 않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안정적인 임금이 보장되고 임금이 오르니 그만둘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조건들이 사라지면 노동자들이 기술을 축적하려고 할까? 기업의 노동유연화 정책은 유연해진만큼 노동자들의 기술력을 담보하지 못한다.

2016년, 2017년 2년치의 임단협을 타결하고 이제 또다시 2018년 임단협을 준비해야 한다. 올해는 어떤 요구안을 가지고 있나?

조합원들의 요구는 기본급 상향이다. 지난 2년 동안 임금을 동결해왔고 지부 입장에서도 임금동결로 인한 부족분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올해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조선은 조금씩 수주가 되고 있는데 해양은 여전히 일감이 없는 상태고 엔진, 플랜트 쪽도 마찬가지다.

노동자 임금은 결국 먹고 사는 문제로 이어진다. 올해가 힘들면 내년이, 내년이 힘들면 내후년이, 정년퇴직할 때까지 영향을 미친다. 어떻게든 기본급 인상을 해야하는데 어려우니 우회적인 많은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최근 임단협에 반영할 수 있는 조합원 실태조사를 마쳤다. 아직은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는 시점은 아니다.

노사 모두 구조조정을 처음 겪다보니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장치가 없었다. 지금은 상황이 어렵지만 성과가 나타난다면 이번 임기에 노사가 함께 고용안정기금을 만들어 이후를 대비할 수 있는 구조적 장치를 마련하고 싶다. 이번 임기 숙원 사업 중 하나다.

울산 안에서 현대중공업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산업적 위치는 어느 정도라고 할 수 있나?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3대 산업 중 하나이다. 3대 산업 중에서도 중후장대 산업이자 노동자가 많이 투입되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경제적인 위치로 보면 현대중공업이 내는 세금과 현대중공업 안에 있는 노동자들의 소비 등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적지 않은 규모다.

최근 조선산업이 침체되면서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 동구 지역 경제도 같이 위기를 맞았다. 동구에 위치한 음식점, 시장 등을 가보면 상인들이 다들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지부 명찰을 달고 가게에 들어가면 상인들이 언제쯤 경기가 풀릴지 물어본다. 올해는 일감이 없어서 하반기까지는 어렵다고 이야기하면 지금까지 어려웠는데 아직도 어렵냐며 한숨을 쉬는 분들이 많다. 심지어 단체교섭 타결이 안됐을 때는 제발 좀 타결해서 시장경제 좀 살려달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만큼 울산 동구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